이따금 주말에 밥 생각은 없는데 군것질 생각만 절실할 때가 있다. 그럴 땐 배달어플을 열어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을 열어본다. 혼자 먹기에 파인트 정도면 괜찮을 것 같지만 적어도 쿼터는 시켜야 주문할 수 있다. 며칠 전에도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어 쿼터에서 메뉴를 하나씩 골라 장바구니에 담기까지 했으나 18,500원이라는 가격에 다시 한번 눈이 휘둥그레 떠지면서 배달앱을 닫았다. 그리곤 생각했다. 어차피 설탕 덩어리인 데다가 살도 잔뜩 찔 거고 돈도 많이 나갈 거고 이래저래 좋지 않다고. 신포도를 바라보는 여우 마냥.
사람들은 한번 참으면 한동안은 괜찮다곤 한다. 그러나 참기를 반복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의지력이 고갈되는가. 배스킨라빈스의 달콤함이 머릿속에 떠나질 않고 도파민 팝콘이 머릿속에서 터지기 시작하면 나도 모르게 다시금 배달어플을 열어본다. 게다가 이번 주는 3000원 쿠폰까지 주는 날이니 안 먹으면 정말 바보 멍청이이며 나는 나름 아주 멍청이는 아닌 것 같으니 이로서 시켜 먹어야 할 당위성은 충분히 갖추었다고 생각했다.
민트초코와 엄마는 외계인, 뉴욕치즈케이크와 아몬드봉봉을 담았다. 그 네 가지 맛을 항상 선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고르다 보면 높은 확률도 저 네 가지 맛이 가지런히 아이스크림통에 담겨 있다. 쓸데없이 계산기를 꺼내 31C4를 계산해 보니 31,465라는 값이 나왔다. 31가지 아이스크림 중에서 4가지 맛을 골랐을 때 나올 수 있는 경우의 수가 31,465라니. 생각보다 큰 값이 아니라서 놀라웠다. 전 세계에 퍼져있는 매장이니 나와 같은 맛을 공유할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는 뜻이다.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덧 배달어플에서 배달이 완료되었다는 알림이 떴다. 혹여나 배달원과 마주칠까 봐 그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을 억겁의 시간(그래봤자 2분)을 기다리고 문을 빼꼼히 열었다. 가지런히 놓여있는 아이스크림을 얼른 집어 거실 탁자에 풀기 시작한다. 네 가지 맛이 동그란 아이스크림통의 한 면씩을 차지하며 방긋 웃고 있는 느낌이다.
오늘은 정말 다섯 숟가락만 먹고 냉동실에 넣어두고 먹으려고 했다. 다섯 번째 숟가락을 입에 넣었을 때까지만 해도 될 것 같았다. 그런데 한 숟가락만 더.라는 말이 귀에 맴돌았다. 그래 한 숟가락 더 넣는다고 해서 세상이 무너지지도 않고 살이 더 찌지도 않는다. 좀 찔 거 같으면 운동하면 되지!라고 생각하며 한 숟가락을 입에 더 넣었다. 그런데 나는 잊고 있었다. 이미 한 주 동안 내 의지력은 이미 바닥이 나 버렸다는 것을. 어느새 바닥을 보인 아이스크림통이 한심해 보였다. 정확히는 그걸 한 번에 비워버린 내가 한심하게 보였다. 아이스크림 통 옆면에 붙은 623g이 눈에 띄었다. 그걸 다 비워낸 것이다. 정량보다 3g이 더 많은 배스킨라빈스의 쿼터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매장에서 쿼터를 주문하는 경우, 직원은 아이스크림통에 623g을 담고 "정량보다 많이 드렸습니다."라고 말을 했다. 어느 매장에 가든 직원들은 똑같이 그렇게 말을 했다. 그런데 솔직히 한 800g을 주고 그렇게 말하면 "네 감사합니다! 역시 배스킨라빈스는 인류의 구원, 인류의 빛입니다!"라고 극찬했을 터 고작 3g 더 담고 면전에서 그런 말을 들으니 약을 올리는 것도 아니고 기분이 썩 좋진 않았다. 나만 그런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3g을 더 받은 안도감보다 3g 덜 받았을까 봐 옛다 라고 던져주는 느낌의 멘트에 쩨쩨함을 느꼈던 것이다. 성난 민심이 경영진들 귀에 들어갔는지 한 순간 그 멘트가 모든 매장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정량이란 게 어느 매장을 가든 똑같은 만족감을 느끼게 하려는 배스킨라빈스의 경영방침이겠으나, 잔뜩 산처럼 담아놓고 직원이 온몸의 무게를 실어 뚜껑을 닫아주었던 그 넉넉한 시절의 배스킨라빈스가 정말 그립다. 단골이라고 하면 사장님이 한 사이즈 더 큰 아이스크림통에 옮겨 담아 주시기도 했다. (한일상가 배스킨라빈스 사장님 감사합니다.)
아무튼 쿼터를 다 비웠으니 일단은 행복하다. 한동안은 아이스크림 생각은 없을 것이다. 한 달쯤은 그렇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