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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가 클수록 실망도 크다

by 샤토디

어느 누구나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을 못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개구리처럼 물에서도 유유히 돌아다니고 육지에서는 자기 몸의 수십 배를 껑충 뛰는 사람들 눈에는 이제 갓 알에서 깨어난 올챙이들처럼 하나를 알려줘도 하나도 제대로 할까 말까 생각이 드는 사람들이 눈에 차지 않을 것이다.


인내심을 가지고 뒷다리가 나와서 방향 회전이 가능하고, 앞다리가 나와서 육지를 걸어 다닐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이미 개구리가 된 사람들은 올챙이 뒷다리의 싹이 보이기도 전에 상대의 부족함을 지적하고 한숨을 푹푹 쉬어댄다. 그것밖에 안되냐고.


그런데 그게 남 이야기가 아니고 내 이야기다. 나는 상대가 현재의 나와 같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정말 그렇냐고 물어보면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그랬음이 분명하다. 나는 상대에게 너무 많은 기대를 하고 있었다.


나의 기대는 초등학생에게 미적분을 가르쳐 주고 당장 수능 문제를 풀어보라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상대가 미진하다면 겉으로는 따뜻했어도 속으로는 온갖 인신공격도 서슴지 않았다. 왜 나에게 이런 대상이 붙었을까라며 운명론적으로 해석했다. 전생에 내가 잘못을 저질렀나?


분노가 머리끝까지 기어 올라갔음에도 주걱으로 밥을 눌러 담듯 꾹꾹 내리고, 양쪽 입근육에 힘을 주어 괜찮다고 상대를 격려하다 보면 우울해지기까지 했다. 비련이란 말은 나같이 덩치가 큰 사람에겐 잘 어울리진 않는다. 그럼 어떤 말이 좋을까? 비참? 비애? 슬럼프? 다운? 광기?


그런데 분노의 시작점을 향해 하나둘씩 더듬어 가다 보니 그 원초에 가까운 이유는 상대에 대한 한 없는 기대 때문이었다. 기대가 크니 실망도 컸다. 모두가 날 괴롭히는 사람으로만 보였다. 천하의 나쁜 놈들이 내 주변에만 바글바글했는 했는데 내가 사람들을 천하의 나쁜 놈으로 만들고 있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사람들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기 시작했다. 속으로 '너는 이제부터 하나도 모르는 바보야'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내 주변 사람들이 언제부턴가 훨씬 훌륭하고 멋진 사람들로 변해 있었다.


사람들은 '너한테 기대 하나도 안 해'라는 말을 들으면 약간 서운해하는 감이 있다. 나는 여기에 한마디를 덧 붙인다. 내가 너에게 기대를 가지면 너를 미워하게 될 것 같다고. 다만 네가 내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그땐 한없이 기대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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