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근무하는 곳은 경기도의 한 약국이다. 신도시라 그런지 젊은 부부들이 많고, 아이들도 방문객의 절반을 차지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아이들은 보통 부모와 같이 방문한다. 약국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처방전을 접수할 때, 앉아서 기다릴 때, 약 설명을 들을 때, 계산할 때, 약국을 나설 때 등 어린이와 부모의 행동이 눈에 보이기 마련이다.
먼저 환자가 약국에 들어서면 나는 배에 힘을 주고 인사를 건넨다. 그리고 아이와 부모의 반응을 살핀다. 부모만 인사하거나, 부모와 어린이 둘 다 인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아이만 인사하는 경우, 둘 다 인사를 안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나는 둘 다 인사하거나, 둘 다 인사를 하지 않는 가족인 경우 더 유심히 관찰하곤 한다. 부모와 아이의 행동이 똑같으니까.
약간의 편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약국에 들어섰을 때의 가족들의 행동을 보면 그 뒤의 행동들이 얼추 그려진다. 나의 인사에 부모와 아이가 모두 인사하는 경우, 약국에서 기다리거나 약 설명을 들을 때, 약국을 나설 때에도 모두 다른 사람의 존재를 인식한다. 준아 약국에선 조용히 해야 해. 선생님 말씀 잘 들어야 해. 인사해야지 안녕히 계세요. 부모님의 행동이 아이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반면 내가 인사를 하든 말든 처방전을 툭 던져놓고 가는 부모들도 있다. 그리고 대기석에 풀썩 앉는다. 아이를 끌고 병원을 다니는데 얼마나 피곤하랴.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그런 피곤함과 짜증이 나한테까지 느껴질 땐 아이가 조금 가엾게 느껴진다. 아이도 엄마의 눈치를 살피고 나도 더 이상 친절한 태도를 계속 유지하기가 힘들어진다. 약을 확 낚아채고 아이의 팔도 확 낚아채 약국을 나서는 부모를 보면 아이가 아이를 키우는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는 하나하나 설명하기에 너무도 사소한, 혹은 중대한 저마다의 사정이 있을 것이고 그렇기에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기 전에는 함부로 이야기하지 말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건 결과론적인 이야기다. 상대방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기 전까진 우리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할 필요나 의무는 없다. 상대방의 무례하고 저돌적인 행동에 그럴만한 사정을 상정하고 이해하기엔 사람들 대부분은 그만한 여유가 없다.
말이 빙 돌았지만 상황에 의한 무례가 아니라면 그 부모의 태도는 아이에게 고스란히 전달될 것이다. 아이들의 우주는 그들의 부모니까. 초롱초롱한 눈, 뽀얀 피부, 낯선 어른 앞에서 쭈뼛쭈뼛하는 순수함과 귀여움. 아이들이 결국엔 그 아이 같은 성정을 키워나갈지, 아니면 끈적한 색채로 빛바랠지는 부모의 행동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아이들은 명백히 부모를 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