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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안녕이 내 눈앞에

by 샤토디

출근 전 날 국장님한테 연락이 왔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너무 급하게 약국을 다른 분께 넘겼다고 한다. 미리 말씀드리지 못하게 되어서 미안하다고 하셨다. 운동하는 중에 띵 하고 머리를 얻어맞은 느낌이 들어 제자리에 서서 몇 마디 덕담을 주고받았다. 일은 그대로 하셔도 된다셨지만 루피가 없는 고잉메리호라니. 나도 이쯤에서 그만두는 게 맞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출근날 일한 공간을 둘러보며 기억을 아로새겼다. 좋은 싫든 정든 공간인데 떠나기로 결심한 마당이라 한편에선 울컥하는 마음도 들었다. 구피가족들은 새로운 주인맞이에 기뻐하는 건지 원래 주인과의 이별을 슬퍼하는 건지 요란하게 어항 속을 돌아다녔다. 뿌옇게 변해버린 어항물을 보니 일주일 동안 아무도 봐주지 않을 만큼 긴박하게 시간이 흘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구피들아. 루피는 이제 없어.


손님들이 한 분 한 분 오실 때마다 그전에 없던 친절을 박박 긁어서 보여드렸다. 봐요 저도 하면 할 수 있다니까요? 흡족해하시는 손님들을 보며 보람차기도 했지만 그래도 가슴이 가슴이 또 먹먹해졌다.


약장에서 인수인계를 위해 약을 세고 계신 국장님은 우리가 영원히 헤어지는 것도 아니고 또 만나야지. 하며 아쉬워하는 나를 되려 달래셨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고 헤어지더라도 또 만나는 것이 인생지사라 했던가. 그래서 슬퍼하거나 아쉬워할 순 있어도 그게 끝이라고 생각하진 말라고 했다.


시작과 끝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고통이다. 새로 시작함에 앞서 미지의 세상과 마주하는 것에 대한 불안, 고독감. 종국에는 시작점에서 쌓아 올린 내 시간의 흔적들을 하나둘씩 곱씹어가며 뜯어내야 하는 아픔. 시작과 끝을 반복할수록 고통이 무뎌진다지만 시간 사이사이에 젊은 시절들의 장면들이 책갈피처럼 꽂혀 있다. 진짜 책갈피면 뽑아버려서 내 시간 위에서는 아무것도 없었던 일로 만들 수 있겠으나, 기억이 되어버린 책갈피는 점점 견고해져서 들추려고 할 때마다 아린 느낌이 든다.


시작과 끝은 항상 고통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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