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우연히 지인을 만났을 때 으레 나누는 인사말이 있다.
"다음에 꼭 보자"
어릴 땐 이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그래서 다음 언제?라고 나는 물었다. 돌이켜보면 상대는 적잖이 당황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언제? 어디서?라고 꼬치꼬치 캐묻다 보면 상대가 가지고 있는 나에 대한 친밀도에 따라 '그래 이 참에 한 번 보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아 이 거머리 같은... 한두 시간 보고 헤어져야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며, '내가 너랑 왜 만나냐?' 라며 어렵지만 한번 시간을 비워보겠다는 말과 함께 영영 연락을 끊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어리석은 건지 순진한 건지 서른이 넘어서도 다음에 꼭 보자는 말의 함의를 잘 알지 못했다. 우리는 분명 웃으면서 손을 맞잡고 크게 흔들며 헤어졌는데. 정말 꼭 보자는 의미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이것은 그저 관계가 멀어져 가는 사이에서 헤어질 때 나누는 적당한 인사말이었다. 다음에 꼭 보자는 말이 이렇게 어려운 말일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초급 영어회화의 가장 첫 페이지에 나오는 'See you later'는 고급 영어회화 스킬 편에서나 다뤄야 하는 말 아닌가 싶다.
나이가 들 수록 다음에 꼭 보자는 말을 나누고 다음에 꼭 보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 아마 상대도 그게 편했을 것이고 나도 일과 후 드러눕기 바쁜데 어지간히 반갑지 않은 사람과의 일정을 내 일상에 끼워넣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마음의 부채가 약간 생기기 마련이지만 그래도 별수 없지 뭐. 라며 30초 정도의 조우가 우리 사이에서 마련할 수 있는 적당한 시간인 것 같다며 자기 합리화를 하곤 한다.
처음에는 조금 마음에 걸렸다. 이거 거짓말인데. 나 속으론 널 보고 싶진 않은데. 그런데 나중에는 그러한 나의 본심을 숨기고 아주 환한 미소를 보이며 "야 다음에 진짜 꼭 꼭 보자." 라며 능숙하게 거짓말을 하는 나를 발견했다. 그냥 넌 나와 그 정도의 관계야 라는 사회적 표현을 기가 막히게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See you later'는 이런 뜻이구나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조금 더 나이가 많아지고, 조금 더 철이 든다면 연락처를 뒤적여 통화버튼을 누르는 것이 자연스러워질까. 나에게 조금 여유가 생긴다면 예전처럼 다음에 꼭 보자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