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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 Apr 16. 2020

촛불 하나

416을 잊지 않겠습니다

옛날에 옛날에, 해가 있어도 세상이 어두웠던 때가 있었어.      

산속에 살던 할머니는 어두워진 세상이 걱정스러웠어. 할머니는 손 차양을 하고 멀리 멀리 내다보곤 했어.  


어느 날, 할머니는 마당에 커다란 솥을 내다 걸고는 큰소리로 외쳤어.  

얘들아, 모여라~~    

산 친구들이 할머니집 마당으로 모여들었지.

앞산에 사는 아기 곰이랑 아기 토끼도 쪼르르 내려와 구경중이야.      


할머니 할머니, 뭐 할건데요?

밭딸기를 잡아당기며 아기 곰이 물었어.

다같이 초를 만들자.     


초를 만들어서 뭐하게요?

당근밭을 힐끔거리며 아기 토끼가 물었어.

세상을 환하게 밝혀주려고 그러지.     


세상을 밝히는 게 뭔데요?

댓돌 아래에서 할머니 신발을 물어뜯던 아기 쥐가 물었어.

할머니는 말없이 아기 곰이랑 아기 토끼랑 아기 쥐 얼굴을 번갈아 들여다보며 웃었지.   

  

아기 곰이 침을 꼴깍 삼키며 물었어.

나도 해도 돼요?

아기 곰아. 네가 필요하단다.  

    

아기 토끼가 귀를 쫑긋 세우며 물었어.

나도 해도 돼요?

아기 토끼야, 힘을 보태주겠니?  

    

아기 쥐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어.

나도 해도 돼요?

아기 쥐야. 네가 도와주면 고맙겠구나.     

 

아기 곰은 딸기를 내려놓고, 아기 토끼는 당근밭을 외면하고, 아기 쥐는 신발을 내던지고 할머니 앞으로 뛰어왔어.

할머니가 솥에 불을 때며 말했어.

아기 곰아. 벌꿀집을 가져오너라.

아기 곰이 숲속에 들어가 벌꿀집을 통째로 떼어왔지.

할머니는 아기 곰에게 꿀을 빨아먹게 하고는 빈 꿀통을 솥 안에 풍덩 빠뜨렸어.  


아기 토끼가 물었어.

왜 꿀통을 끓여요?

할머니는 커다란 주걱으로 휘저으면서 대답했어.

맑은 촛물을 만들려고 그러지.

     

할머니가 가마솥을 기울여 찌꺼기를 건져내고는 말했어.

토끼야, 무명실을 가져오너라.

아기 토끼가 깡충깡충 뛰어가 할머니 반짇고리에서 무명실을 꺼내왔지.

할머니는 무명실을 두 줄로 꼬았어.     


아기 곰이 물었어.

왜 무명실을 꼬아요?

할머니는 실을 탱탱하게 당기며 대답했어.

올곧은 심지를 만들려고 그러지.    

  

할머니는 솥에 심지를 담갔다 빼면서 말했어.

이제 한 줄로 서서 차례차례 초를 만들자.

할머니가 심지를 담갔다 빼고, 아기 곰이 심지를 담갔다 빼고, 아기 토끼가 심지를 담갔다 빼고, 아기 쥐가 심지를 담갔다 빼고, 다시 할머니가 심지를 담갔다 빼고, 다시 아기 곰이 심지를 담갔다 빼고, 다시 아기 토끼가 심지를 담갔다 빼고, 다시 아기 쥐가 심지를 담갔다 빼고...     


아기 쥐가 물었어.  

왜 담갔다 빼고 또 담갔다 빼고 해요?

할머니는 열 번째 담갔다 빼면서 말했어.

담금질해야 굵고 단단해지지.      

모두들 담갔다 빼는 동안 굵고 단단한 초가 만들어졌어..


이야, 완성이다!

모두들 소리치며 좋아했어.    

  

그런데, 내 초는 삐뚤어졌어요.

아기 곰이 울먹이며 말했어.      

살짝 녹였다 세워주면 돼. 괜찮아.

아기 토끼가 아기 곰의 초를 손으로 조물조물 만져주었어.    

  

벌써 어두워지기 시작했네. 할머니가 등불로 초에 불을 켜주었지.       

내 불꽃은 너무 작아요.

아기 쥐가 속상해 하며 말했어.       

촛농을 따라내면 돼. 괜찮아.

아기 곰이 아기 쥐의 촛농을 따라내 주었어.     

 

아기 토끼의 코가 그을음으로 까맣게 되었어. 모두들 깔깔 웃었지.     

심지가 너무 길어서 그래. 괜찮아.  

아기 쥐가 이빨로 아기 토끼의 심지를 잘라주었어.

     

날이 완전히 깜깜해지면서 바람이 차가워졌어. 모두들 할머니 방으로 들어갔지. 하지만 바람은 점점 거세져서 촛불이 꺼질 것 같아.  

아기 곰은 창문을 닫고, 아기 토끼는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아기 쥐는 바람 구멍을 막았지만, 촛불은 꺼지고 말았지.    


안 되겠다. 마음을 모으러 가자.

할머니가 외투를 입으며 말했어.

모두들 할머니를 따라나섰지.    

  

멀리, 수많은 사람들이 초를 켜고 세상을 밝히고 있었어.

할머니는 사람들을 헤치고 들어가 한가운데 서서 초를 밝혔지.  

여전히 바람은 불어왔지만, 바람을 막고 선 수많은 사람들 덕에 촛불은 끄떡없었어.

아기 곰도, 아기 토끼도, 아기 쥐도, 할머니 옆에서 초를 밝혔지.  

    

나도 그날, 촛불 하나 들었어. 모두의 힘으로 세상은 다시 밝아졌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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