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엔, 오이지

by 천둥


오이지야말로 여름의 맛이다. 씹히는 순간 꼬들함이 살아 꿈틀거린다. 쌀밥이든 보리밥이든 잡곡밥이든, 또는 라면이든 국수든 스파게티든 어디에나 어울린다.

그래서 여름에는 오이지 하나면 끝이다. 니 맛도 내 맛도 아니라던 할머니 입맛도 살아오고 컴퓨터 게임과 함께 피자나 치킨을 외치며 MSG에 절은 아이들도 일단 한번 잡솨 봐, 먹는 순간 다시 찾는 것이 바로 오이지다.

꼭꼭 짜서 빨갛게 고춧가루 조금 넣고 쵬기름 한 방울 떨어뜨려 바락바락 무친 오이지는 밥도둑이고 오이지 도둑이다. 한 번에 오이 다섯 개씩 썰어 무쳐도 순식간에 없어진다. 잘 먹어서 좋기는 하지만 동시에 애써 꼭꼭 짜야 하는(물기 없이 꼭꼭 짜야 한다. 오이지는 식감이니까) 수고로움을 떠올리면 조금 허무한 것도 사실이다. 더구나 살림하는 입장에서는 오이지 통이 쑥쑥 줄어들 때마다 오이지무침은 좀 삼가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에 비해, 오이지 숭덩숭덩 썰고 편 마늘 몇 개, 고추 몇 개와 얼음 동동 띄운 오이지 냉채는 반찬을 만드는 사람에게도 효자요, 땀을 식게 하는 데도 효자다. 드는 품에 비해 맛도 기가 막히다. 나처럼 찬 것 못 먹는 사람도 뜨거운 밥 한술에 국물 한 숟갈 입에 떠 넣으면 시원하니 입에 착 달라붙는다. 국물에 간이 다 빠져나와 심심해진 오이지 한 개 입 안에 넣으면 아무 욕심 없는 들판 위 바람 한 점 문 것 같다.


사실 나는 어려서 오이지를 먹고 자라지 않았다. 오이는 고추장에 찍어 먹는 것이었다. 텃밭에서 막 따온 오이를 칼등으로 쓱쓱 문질러 고추장에 찍어 먹는 맛. 그게 오이지, 라는 부모님의 철학에 순순히 동의했다. 결혼하고 나서 오이지 맛을 처음 봤을 때도 오이를 굳이 요리해 먹어야 하나 의아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오이가 가진 또 다른 깊은 맛을 알게 되었고 그 맛을 모르고 사는 것은 오이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주장하게 되었다.

김장보다 오이지 독립을 더 먼저 했다. 시어머님께 얻어먹는 게 양에 차지 않았다. 에라 모르겠다, 직접 해보자. 검색을 해보니 이건 뭐 믿을 수 없이 간단해서 황당할 정도였다. 오이지 담기가 이렇게 쉬운 줄 알았으면 더 빨리 독립할 걸, 왜 여태 직접 해보려고 하지 않았나 후회가 되었다. 오이지가 아니었다면 김장 독립도 어려웠을 것이다.


6월이 되면 언제 오이를 살까 호시탐탐 살핀다. 겨울에 김장 준비할 때보다 더 설레는 시간이다.

오이지 하기에 딱 좋은 약간 꼬부라지고 살짝 비틀어진 오이를 찾아 헤맨다. 수경재배로 하는 매끈한 오이는 절대 곤란하다. 해를 품은 오이여야 한다. 오이지 오이는 봄의 따가운 해를 받아 쑥쑥 자라고 봄 가뭄으로 쪼그라든 것이 좋다.

조선오이면 금상첨화다. 금산에서 농사짓는 친구가 조선오이를 맛보라고 준 적이 있다. 샐러드용인데, 없어서 못 판다고 했다. 뭘 또 그렇게까지 허풍을 떠나 했는데 한입 베어 문 순간, 오이가 아니라 참외를 먹는 건가, 아니 메론? 믿을 수가 없었다. 좋은 건 혼자 담아두지 못하고 온 동네 소문을 내야 직성이 풀리는 나는 여기저기 들고 다니며 조선오이 맛을 보였다. 손님들을 데리고 금산 오이 밭에 가서 몽땅 떨어오기까지 일주일이면 충분했다. 조선오이는 샐러드뿐 아니라 오이지, 오이소박이 등 아무거나 해도 무조건 맛있다. 역시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조금 비싸다는 단 하나의 단점만 빼면(단 하나라기에는 너무 크지만). 토종종자를 지켜내지 못한 대가가 뼈아프다.


오이지를 담글 때면 매번 고민한다. 전통 방식으로 소금물에 절일까, 식초 설탕 소금의 삼투압이라는 과학적인 방식으로 담글까. 전통 방식으로 하면 깔끔하게 깊은 맛이 난다. 과학적 방식은 맛의 오묘함이 장점이다. 그때그때 끌리는 대로 담그다 보면 결국 두 가지를 다 하게 된다.

예전에는 오이지 담글 때 상태 좋은 오이를 몇 개 빼서 피클도 같이 담갔다. 피클 몇 통을 냉장고 한쪽에 두면 마음이 든든했다. 그런데 어느 해부터인가 피자나 스파게티를 먹을 때도 피클보다 오이지를 더 찾게 되었다. 피클이 가진 상큼한 맛도 좋지만 오이지가 가진 묵직한 맛으로 눌러주는 게 느끼함을 해결하는 데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오이는 찬 성질을 가졌다. 보리밥처럼 더운 여름에 먹는 것이 좋다. 맛이 있다고 오이지를 가을에 이어 겨울에도 먹으면 몸이 찬 사람들에게는 물론이고 뜨거운 사람도 좋을 것이 없다. 무엇보다 여름을 기다리는 재미가 줄어든다. 오이지가 맛있다고 한창 먹어댈 때면 빨리 한 접 더 사다가 오이지를 담그자고 설레발을 치지만 여름이 끝나 가면 오이지도 끝나야 한다. 살짝 부족한 대로 아쉽게 오이지를 보내줘야 한다. 내년에는 꼭 두 접을 사야지, 다짐해보지만 막상 때가 되면 한 접만 담그고 아쉬워하는 것을 반복한다. 아쉬움도 재미다.

오이지의 아쉬움을 뭘로 달래냐고? 그때는 늙은 오이, 노각무침이 있다. 때 이른 노각이 마트에 등장하기도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8월은 되어야 제맛이 난다. 기다려라. 노각무침.

지금은 오독오독, 오이지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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