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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 Nov 15. 2019

내가 그린 기린 그림

서스럭, 거리는 풀잎에 이마를 대인다

멀리서 풀잎이 누워서 온다

온몸이 바람에 놓인다

아무도 없다

나를 고대하는 눈동자도 내 손을 기다리는 늙은이도


귀를 접어 바람을 듣는다

서늘해진 이마가 땅을 맞대고 있다

덜그럭, 거리는 다리에 안식이 찾아온다




하루 종일 기린 생각을 했다. 내가 그린 기린 그림을 그리려고.

하루에 겨우 한 가지를 한다. 근데 하나만 하고 사는 게 참 좋다. 가끔 조급해져서 서둘러 보지만 마음과 달리 몸이 느려져서 조급해봤자다. 서둘러해야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다. 예전에는 나도 혼자 48시간을 사느냐고 할 정도로 많은 일을 해댔다. 책도 빨리 읽고 동도 빨리 했다. 신나게 일도 했다.

이제는 기린 하나 그려놓고 나니 해가 진다. 이런 것도 재미지구나. 책도 어찌나 천천히 읽는지, 한 권을 들고 며칠씩 붙들고 있다.

천천히 읽고 천천히 그리기. 이렇게 살아도 아무 일 없다. 하하, 웃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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