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천둥 Nov 26. 2019

네 이름이 뭐니?

네 이름이 뭐니?

내 이름은 용미야.

한자어를 풀이하려고 애쓰지는 말아줘. 얼굴이 아름답다는 뜻이구나, 하면서 웃는 사람들을 마주할 때마다 너무 부끄럽고 부모님이 원망스럽거든.

그래, 내 이름은 얼굴용에 아름다울 미야. 얼굴이 아름답다는 뜻이지. 하지만 나는 얼굴이 아름답지 않아. 예쁜 얼굴이 아니라고. 예쁘지 않아서 예뻐지라고 지어준 건지는 모르지만, 암튼 아름다운 얼굴이라는 뜻의 이름이라니, 굉장히 불편해.

한자어에서 얼굴 용자는 얼굴뿐만이 아니라 그 사람의 생김새 모두를 뜻한다고 해. 아름다울 미 자도 아름답다는 뜻 외에 풍요롭고 보기에 좋다는 의미가 있대. 그러니 꼭 얼굴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는데, 그게 오히려 더 놀리는 것 같아.  

얼굴을 쳐다보게 하는 이름이라니. 차라리 뜻이 없는 이름이 낫겠어.  

그냥 사람을 구분하고 부르기 좋은 이름을 가지면 안 되나? 옹아, 나니, 밈, 이런 식으로.


네 이름이 뭐니?

내 이름은 순심이야. 내 이름을 말하면 사람들은 웃어. 영자, 미자, 순이처럼 촌스러운 이름이라고.  

부모님이 순한 마음을 가지라고 지어주신 이름이지만, 이름만 듣고도 웃는 사람들을 보면 순한 마음이 생기질 않아.

그렇게 순한 마음이 아닐 때는 조금 죄책감을 느껴. 항상 착하게만 살아야 하다니 억울해.  

이름을 부를 때마다 숨고 싶어 지는 이름을 가졌다는 건 굉장히 속상한 일이야.

나도 부를 때 예쁜 이름을 갖고 싶어. 불리기만 해도 자랑스러운 이름 말이야. 아니, 그냥 평범해도 좋아. 부르기만 해도 서너 명이 돌아볼 만큼 평범한 이름만 되어도 좋을 텐데. 혜정아, 지영아, 경미야, 이런 거.


네 이름이 뭐니?

옆에서 대신 대답해줘.

얘는 용주야. 학교 선생님이지.

이름을 말하면서 직업을 같이 말해.

그리고, 쟤는 용미야. 음... 용미...

딱히 직업이 없는 나는 그저 용미야.

그들은 서로 학교에 대해, 선생님이라는 직업에 대해 묻고 이야기를 나눠.

나도 하는 일이 있는데... 하는 일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는데.


내가 글을 쓴다고 하면, 누구나 알만한 책을 냈는지 궁금해해. 어느 학교 선생님인지, 무엇을 가르치는지 꼬치꼬치 묻듯이 말이지.

내가 그림을 그린다고 하면, 어디에 그렸는지, 얼마에 팔리는지 궁금해해.

하지만, 수학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싶어 하는지 묻지 않듯이 내게도 무슨 이야기를 쓰고 싶어 하는지, 무엇에 대해 그리는지는 묻지 않아.  


네 이름이 뭐니?

나는 천둥이라고 불러줘.

나는 엠마라고 불러줘.

왜 천둥이야? 왜 엠마야?

그냥 천둥이고 엠마야. 이름은 그냥 불리는 이름일 뿐이거든.   


그리고,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면, 뭘 좋아하는지 물어보면 돼.

백가지도 넘게 말할 수 있어.

나는, 눈이 녹을랑 말랑 하는 순간에 피는 복수초를 좋아해. 산으로 노란 복수초를 만나러 나설 때 가장 설레거든.

나는, 시계가 움직이는 걸 보는 걸 좋아해. 아무 일 없이 시간이 흘러간다는 건 너무 다행스러운 일이니까.

나는, 꺄아아아아, 화라라라랄랄, 스슷스스스, 이런 소리 내는 걸 좋아해. 뭔가 표현하기 힘들도록 좋은 일이 생겼다는 뜻이니까.


너는? 너는 뭘 좋아해?

매거진의 이전글 저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