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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 Dec 05. 2019

주홍글씨

초등 때, 유달리 까부는 아이가 있었다. 담임선생님이 그 아이를 계속 야단쳤다. 처음에는 야단을 그 애가 떠들고 까불면 야단쳤는데, 나중에는 아무 때고 그 아이를 불러댔다. 구박하고 때리고 발로 찼다. 

나중에는 우리가 떠들어도 그 애를 때렸다. 그 애가 맞으면 우리가 조용해질 수밖에 없었다. 보는 내내 움찔움찔할 정도로 그 애를 때렸으니까. 

그애도 야단을 맞고나면 잠시 얌전해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행동과 맞는 것과는 아무 연관관계가 없다는 걸 알게 되었는지, 선생님이 아무리 화가 나있어도 상관없이 웃고 떠들었다. 맞으면서도 웃었다. 웃으면 더 맞았는데도 그랬다.      


왜 그렇게 자꾸 웃었을까. 왜 그렇게 장난을 쳤을까. 왜 그렇게 숙제를 안 해왔을까.      

그때는 그렇게 그 아이 탓을 했다. 보는 게 괴로웠으니까. 괴로운 장면을 자꾸 보게 하는 그 아이를 미웠다. 그 아이가 맞을 짓을 한다고 생각했다. 담임을 화나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체벌이 과하도록 만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도 그들의 폭력을 정당화하고 방관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몇 십 년이 훌쩍 지난 어느 날, 같은 반이었던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때의 일을 기억하냐고, 그 일을 기억하는 누군가와 이야기 나누고 싶다고 했다. 만나고 싶지 않았다. 무거운 마음으로 약속 장소에 나갔다.     

친구는 의례적인 인사도 없이, 얼마 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았다는 말부터 했다. 어느 날, 차에 시동을 걸고 있는데 앞차 아래 고양이가 보이더란다. 고양이는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더니 무언가를 발견했는지 쏜살같이 달리기 시작했고 하필 그 순간 출발한 옆 차에 치어 버렸다. 그 모든 걸 봐버린 친구는 너무 놀랐겠지. 하루 종일 울었단다. 그런데 놀라고 슬퍼서 운다고 하기에는 너무 오래, 깊은 슬픔이어서 이상했단다. 

그 일로 몇 달을 시달리다가 상담을 하게 되었다. 슬픔의 근원은 자책이었단다. 자신이 잘못한 게 없다는 이성적인 판단이 아무 소용없는 자책. 도대체 왜 이럴까. 무언가 외상 후 스트레스인데, 어디서 시작된 걸까 쫓기 시작했고, 도달한 것이 바로 그 아이였다.      


친구는 잊은 줄 알았다고, 그 뒤로 한 번도 그 아이를 떠올려본 적 없었다고 했다. 친구는 내게 물었다.      

너는 어땠어? 그 아이 기억해?      

그 아이를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누군가를 그토록 미워해 본 적이 없는데. 그 아이가 맞는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아이를 죽도록 미워하는 것뿐이었는데.      

하지만 기억이라는 것은 신기하게도 내내 있는 것이면서도 한 번도 없는 것이기도 했다. 뚜렷하게 떠올려지지 않았던 그것이 친구의 이야기를 통해 점점 명확해졌다.      

그 아이를 미워했던 나의 무력감, 무력한 우리 앞에서의 폭력, 방조에 대한 부끄러움은 그 뒤 로도 알 수 없는 분노와 피해에 대한 연민을 반복하게 했다.   

         

가끔, 그 아이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 아이는 어쩌면 그때 일을 잊었을지 모른다. 잊을 수 있어서 잊은 게 아니라 잊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이므로 잊었을 것이다. 

살면서 이유를 알 수 없는 무력감에 빠져 허우적거린 순간들이 있어도 그때를 떠올리지 못했을 것이다. 친구와 나처럼. 또 어쩌면 인생이 온통 무력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긴 시간 동안 비인간적인 억압과 폭력을 받았으니까.     

그 아이에게 말해주고 싶다. 너를 지켜보기만 했던 우리들도 벌을 받아 아직까지 고통당하고 있다고. 우리의 고통이, 그리고 많이 늦었지만 이제라도 자각했다는 사실이 너에게 아주 작은 위안이라도 되었으면 좋겠다고.        

아이야... 흰머리 희끗희끗할 아이야. 너를 기억할게. 가슴에 새겨진 주홍글씨처럼 선명하게 기억해내고 말할게. 단호히 말하고 소리칠게. 당신들의 폭력은 당사자도, 보는 이들도 피눈물이 나게 끔찍했다고, 멈추라고 소리칠게. 그리고 너를 위해 울게.      

너는 까맣게 잊으렴. 잊고 진짜로 웃으렴. 



<강원국의 글쓰기>에서 글의 정체성이 무엇인가를 묻는 걸 보고 이 이야기가 떠올랐다. 내 원죄들. 그게 내 정체성이겠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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