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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 Nov 15. 2019

웃음

웃는 아이. 사랑스러워 어쩔 줄 모르는 아빠. 우연히 발견한 사진인데 저장해놓고 마음의 평화가 필요할 때마다 종종 꺼내보다가 그림으로 그려봤다.


아이는 뭘 입어도 예쁘지만 러닝 입은 모습이 젤로 예쁘다. 흰 러닝 말이다.


아이는 다 예쁘지만 역시 남의 새끼가 이쁘다. 바라만 보면 되니까. 내 새끼가 이뻐 보이려면 내가 기운이 있을 때다. 아니면 아이가 자고 있던가.


제대혈을 먹은 적이 있다. 아이를 낳으면서 제대혈을 보관한 사람들은 많겠지만 자신의 제대혈을 직접 먹어본 사람은 드물 것이다. 워낙 약골이라 한의사인 동생이 권해준 것인데, 처음에 그 말을 듣고 윽, 하고 거부부터 했다. 그런데 동물들은 새끼 낳으면서 그 분비물을 모두 핥아먹잖아, 그게 얼마나 회복에 좋은 건데, 라는 말에 용기를 냈다. 그걸 용납해주는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을 골라야 했고, 남편이 들어와 직접 컵에 담아주도록 설득해야 하는 것도 어려운 과정이었다. 정작 내가 한 것은 눈감고 코 막고 마시는 것뿐이었지만 말이다.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아이 낳은 지 열흘만에 날아다녔다. 내 팔뚝에 윤기가 반짝반짝 나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처음에는 무슨 이상이 생긴 줄 알았다. 아침에 피곤한 기색 없이 벌떡 일어나게 되면서 남들은 평생 이런 컨디션이었구나 싶어 서글프기까지 했었고.


힘이 남아돌아 아이를 업고 뛰어다녔다. 황소 같은 기운이 솟으니 아이가 마냥 꺄르륵 꺄르륵 웃도록 놀아주었다. 놀러 온 둘째 언니한테 내가 천사를 낳았나 봐,라고 말했다가 사람 취급 못 받았지만. (당시만 해도 내 새끼 예쁜 건 남편 하고만 공유하는 거라는 이치를 몰랐다.)  

아쉽게도 그 기운은 1년 만에 동이 나버렸다. 돌 전에 이미 미끄럼틀에서 뛰어내릴 정도로 활동량이 많았던 아이의 웃음은 나를 울게 만들었다. 아기들은 낮에 너무 웃으면 밤에 우는 법이니까. 지 ×보존의 법칙이라고.


지금, 아이는 나보다 더 큰 몸집으로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뭐가 우스운지 히죽거리며 웃는다. 속없이 따라 웃다가. 치... 심술이 났다. 안 되겠다. 나도 비장의 무기를 꺼내 들어야지.

너, 이제 용돈은, 엄마한테 재밌는 얘기를 해주면 줄 거야. 웃음 하나에 만원!


아이는, 갑자기? 왜? 하며 어리둥절한다.


그냥! 갑자기! 알았지?


그런 게 어딨냐고, 학교에서 무슨 웃을 거리가 있냐고 구시렁대는 아이를 보며 놀부 마누라 웃음을 날려줬다.


바보... 네 웃는 사진 하나면 충분한걸. 그것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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