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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 Nov 15. 2019

초록

미안, 초록...

거실 창 가득한 초록.


아침마다 우리 부부는 창밖을 내다보며 뿌듯해한다. 매일 다시 채워지는 마술상자처럼 매일 또 다른 초록으로 가득 차는 풍경이라니, 정말 굉장하다.

어느 날, 나무 전지 작업을 하겠다는 안내가 있었다. 나무 아래 주차한 차에 새똥이며 나뭇가지가 떨어져서 불편하다는 것이다.

어찌할까. 손 놓고 있다가 저 나무가 휑뎅그레 다 잘리고 나면 가만히 있었던 나를 마구 저주할 것 같았다. 고민 끝에 관리사무실로 편지를 보냈다. 오로지 저 나무를 보고 이사 온 사람도 있으니 제발 예쁘게 해 달라고. 다행히 그러마고 흔쾌히 답을 주셨다.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출근하던 남편이 전화를 해서 빨리 나와보라는 것이다. 나무를 자르고 있는데 완전히 기둥만 남기고 다 잘라낸다는 것이다. 놀라서 뛰어나가 보니 나무 하나가 벌거숭이가 되어 서있었다.

흥분하며 싸우고 있는 남편을 막아서고, 이게 언제 자라서 잎을 피우냐니까 3개월쯤 걸린단다. 그때가 5월인데, 그럼 8월까지 얼마나 덥겠냐고, 왜 하필 지금 잘라서 그늘을 다 없애는 거냐고 물었다. 지나가던 주민들이 이게 무슨 짓이냐며, 지열을 막아주는 고마움을 모르는 인간들이라며  우리를 거들었다. 관리실 사람들은 어쩔 줄 몰라하며 우왕좌왕하더니 결국 철회, 가을에 하기로 했다.


다시 들어와 내다보는 내 집 앞 풍경. 아, 이걸 잃을뻔했다니.. 너무나 소중해서 다시 한번 그림으로 남긴다.





그리고, 오늘...

나무를 잘랐다. 도저히 볼 수가 없다...

인간의 무지막지함에 낯을 들 수 없는, 부끄러운 날이다.

하지만, 이것도 그들은 그들의 일을 한 것일까.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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