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챙이 시절

by 천둥

살아오면서 절대 잊지 말자, 싶었던 시기가 있다. 내가 크면 꼭 이 시절의 사람들은 돌보겠다고 다짐하기도 했었는데.

중3 사춘기가 절정이던 시절, 그리고 아기 낳고 1년간 독박 육아 시절이다.


중학교 때는 많이 외로웠다. 절대 잊지 말자고 생각했지만 다 잊었다. 외로웠다는 사실만 기억하지, 어떤 감정이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어른이 되면 이 시기의 외로움에 대한 글을 써서 청소년들을 위로하고 싶었다. 지금 생각하면 청소년 소설을 구상했던 것 같은데 내가 크기도 전에 청소년 소설이 나오기 시작했다. 만약 내가 청소년이었을 때 그 소설들을 읽었다면 위로가 되었을지는 모르겠다. 사실은 <데미안>이나 <수레바퀴 아래서> 같은 소설들이 청소년 소설이라고 명명되지 않았을 뿐이지, 청소년 소설이기도 하니까. 어쨌든 그 어떤 것도 사춘기의 외로움을 달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때는 존재적 고독을 확인하는 시기니까.

눈 오던 날, 혼자 걸었다. 가로수가 길게 뻗어있던, 아무도 없어 뽀얀 눈이 그대로 쌓이기만 했던 길이었다.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도구도 하나 없었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말없는 시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 길을 걸으면서 다짐했다. 오늘을 잊지 말자고.


그리고, 독박 육아. 이 문제는 개인이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더 많은 지원이 있어야 할 문제여서 지금 생각해도 화가 나는 부분이기는 하다.

아이가 6개월쯤 되었을 때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잠시 목욕탕을 간 적이 있다. 그날의 홀가분함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사람이 자연인이 되어 살면 이런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걸까. 인간은 왜 항상 이런 자유를 누리면 안 되는가,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나만 바라보는 아이가 버거워 잠시 바깥구경이라도 할라치면 날씨가 도와주지 않았다. 더우면 더워서, 추우면 추워서, 바람 불면 바람 불어서 안 되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러다가 우연히 백화점 놀이방에 가게 되었다. 또 한 번의 해방감. 아이가 나 말고도 볼 사람이 있다는 게, (다른 사람이 아이를 돌본다는 게 아니라, 아이가 나 말고 볼 대상이 생겼다는 게 말이다.)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백화점의 공기가 아이에게 좋을 리 없었겠지만 그때는 그런 것도 모르던 철부지 엄마였다. 그저 이런 공간이 있다는 사실을 왜 이제야 알았나, 하는 나의 정보 부족만 탓했다.

아이가 세 살 무렵, 놀이터에 가면 집으로 다시 데리고 가기가 너무 힘들었다. 아이도 이미 아는 것이다. 들어가 봤자 엄마랑 둘이 멀거니 있어야 한다는 것을. 그러니 자꾸만 더 놀려고 하고, 나는 이제 들어가 저녁을 지어야 하니, 아이랑 매일 실랑이를 했다. 어느 날 상가에서 김밥을 사 먹었는데, 그게 또 그렇게 해방감을 주었다. 굳이 저녁을 짓겠다고 아이랑 싸우지 말고 그냥 김밥 사 먹으면 되는 거였어. 쓰다 보니 독박 육아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너무 융통성이 없었던 것 같다.


어쨌든 두 시기가 훌쩍 다 지난 지금, 그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겠다던 나의 결심을 전혀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 혼자 걷고 있는 중학생들이나 유모차를 밀고 있는 아기 엄마들을 보면, 매번 이 마음을 떠올리기는 한다. 그리고 혼자 상상해보기도 한다. 아이들이 잠자는 시간 부부가 잠시 영화라도 보고 올 수 있도록, 자는 아이들 곁을 지키는 일 정도는 해줄 수 있는데... 엄마들이 책모임 같은 거 갈 때 두어 시간 돌봐줄 수도 있은데... 아님, 모임 하는 곁방에 놀이방을 운영하도록 하고 나 같은 이들을 지원가로 배치하면... 작은 지역 내에서 시도해볼 만한 시간제 돌보미...


하지만 생각만 할 뿐이다. 지금 내 삶의 적막이 너무 좋아서. 다시 복작거리고 싶지 않아서. 이렇게 올챙이 시절 모르는 꼰대가 되어가는 건가...


음... 어제 알았는데, 어린 아기들을 돌봐주는 돌보미가 지원되고 있다고 한다. 늦었지만 참 다행스럽다. 그러고 보면 사회가 조금씩 나아가고 있기는 한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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