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전문서점이 있는 곳으로 이사를 하고 그림책을 많이 읽어주었다고 하면, 아이가 책을 좋아하다니 부럽다고 하고 이어서 공부도 잘하죠? 묻는다.
인풋이 곧 아웃풋이 된다면 아이 키우는 게 얼마나 쉽겠나. 절대 그리 간단치 않은 걸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우리 모두가 알면서 애써 외면한다. 어떻게든 인풋을 하려고 기를 쓴다.
다행히 큰아이는 여섯 살에 혼자 글을 깨치고 일찍부터 글밥이 많은 책을 봤다. 심지어 어린 시절 읽었던 책 덕분에 고등학교 때 세계사나 지리를 별로 공부하지 않고도 버틸 수 있었다는 말을 스스로 한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책을 읽지 않는다. 공부하지 않고 버티는 데 도움이 된 것뿐이다. 이렇게 말하는 게 몹시 슬프지만 현실이 그러하다.
그래도 그동안 아이랑 그림책을 같이 읽으면서 저녁마다 아이를 끼고 산 시간들이 좋았다. 남들은 ‘경단녀’라고 하지만 나는 그걸 선택했고, 내 성정에는 그게 맞았다. 살림하고 육아하는 게 맞았다는 게 아니라 사회생활하지 않는 게 맞았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아이를 기둥 삼아, 종교 삼아 내 삶을 살 수 있어 좋았다.
똑같이 책을 읽어주었지만 작은아이는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도 글을 읽지 못했다. 이른 년생이었고 딱히 한글을 가르치려 애쓰지 않기는 했다. 그래도 너무 뭘 몰랐다. 준비물을 제대로 안 챙겨 온다는 담임선생님의 호령에, 칠판에 쓰여있는 걸 그대로 그려오라고 했더니 아이 왈, 칠판이 뭔데?라고 되물었다. 그 말을 듣고도 아이가 학교 갈 준비가 안 되어 있다는 걸 인정하기보다 학교에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해주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만 했다. 정말 어미가 문제다.
학교 간지 며칠 만에 시험을 봤는데 집에 돌아온 아이가 밑줄 친 ㄴ이 뭐야? ‘느’ 아니야?라고 해서 같이 있던 동네 아줌마들이 박장대소하고 웃었다. 천재 아닌가! 며칠 후, 엄마, 나 110점이래! 신나서 자랑하는 걸 보니 100점이 좋은 건 알았나 보다. 국어 50점, 수학 60점. 합해서 110점.
겨우 글자를 깨친 후에도 아이는 책을 혼자 읽지 않았다. 책 읽어주는 시간은 좋아해서 초등 4학년까지 책을 읽어주었다. 5권짜리 두꺼운 역사 이야기책도 읽어주었는데, 몇 개월이 걸렸을 거다. 그런데 아이는 전혀 기억을 못 한다. 그래도 조금은 남아있겠지, 옛날 얘기처럼 이라도 기억하겠지 했는데 전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읽었고, 읽어주었다는 생색을 냈고, 함께 읽으면서 아이 엉덩이를 두들겨주었으니, 그거면 됐다.
학생상담자원봉사를 한 적이 있다. 교육청에서 하는 봉사활동인데 학부모들에게 상담 자원봉사를 할 기회를 주면서 상담에 대한 공부도 시켜준다. 한 강사가 우리들에게 물었다. 왜 여러분은 귀한 주말에 시간을 내서 이 공부를 하시나요? 여기저기서 학부모 본연의 대답을 했다. 아이들 잘 키우려고요.
그 강사는 따끔하게 말했다. 아이를 잘 키우려면 이런 거 하지 말고 그냥 집에서 뒹글 뒹굴 노세요. 오전에 부족한 잠이나 자고 아이 오면 같이 맛있는 거 해 먹고 엉덩이 두들겨주는 거, 그게 아이들 정서에 더 도움이 됩니다.
그 말이 두고두고 생각이 났다. 생각할수록 기분 나쁜데 틀린 말이 아니다. 똑똑한 엄마보다 정서적으로 안정된 엄마가 훨씬 좋은 엄마라는 거, 엄마가 지나치게 똑똑하면 아이는 엄마를 뛰어넘을 수 없다는 좌절을 먼저 겪는다는 거. 그럼에도 그 강의실을 박차고 집으로 돌아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도 여전히 아이에게 오, 그래?라고 답해주는 걸 깜빡 잊고 야, 그게 말이야, 하면서 내가 아는 걸 들먹거린다.
다시 책을 읽는다. <데미안>을 읽고 <자기 앞의 생>을 읽는다. 어렸을 때 읽은 책이지만 남들이 좋은 책이라니 읽었을 뿐이다. 줄거리나 기억하면 다행이다. 책을 좋아했지만, 도망갈 곳이 되어 주어서 좋았던 것 같다. 책을 읽고 있으면 엄마는 내가 공부하는 줄 알았으니까. 정작 그곳 세상으로 들어가지는 못했다. 책을 읽는다는 건 이곳을 벗어나 그곳 세상에서 살아보는 것인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오히려 내 안에 더 큰 옹벽을 쌓았는지도 모른다.
나는 여전히 내 세상에서 산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세상을 이해하려고도, 받아들이려고도 하지 않는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저 사람이 왜 저러냐고 자꾸 묻는다. 내 입장과 내 세계만을 고집한다. 그런 고집은 지금 와서 생긴 게 아니라, 어렸을 때 제대로 깨치지 못한 탓이리라.
이것을 아이 덕에 알았다. 아이는 책을 읽지 않아도 다른 세상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면서. 책을 읽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마음을 열고 넘나 드느냐가 중요하다. 어떻게 하면 마음을 열고 넘나들 수 있을까? 결국 책이다. 다시 제대로 읽어야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믿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