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목동

by 천둥

군대 다녀와서 복학한 아이 말이 학교에서 절대평가를 하기로 했단다. 아이는 시시해졌다고 표현했다. 치고 올라가는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아이 앞에서 무심한 표정을 하느라 힘들었다.

큰아이는 어릴 때부터 그랬다. 매주 시험을 보고 클래스를 높여가는 학원에 넣어달라고 했다. 주변에선 성취욕이 높은 아이를 둬서 좋겠다고 했다. 보통은 엄마가 아이의 성취욕구를 자극하고 아이가 따라주지 않는다고 발을 동동거리는데 우리는 반대였다. 아이는 성취하기를 즐기고 나는 그런 아이의 김을 빼려고 애를 썼다. 자신과의 싸움이 아니라 오로지 남을 꺾고 올라가는 데 혈안이 되는 게 싫었다. 경쟁사회를 비판해왔던 엄마의 마음을 몰라줘서 속상했다. 남을 꺾고 싶은 욕구가 왜 생기게 되었는지, 남의 눈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게 아닌지, 또는 내가 남모르게 아이를 몰아세우는 건 아닌지 끊임없이 나를 돌아보게 했다. 세상이 경쟁사회인데 의지가 있는 아들의 기를 꺾는다며, 엄마가 부적응자라는 소리도 들었다.

어쨌든 엄마가 원한다고 해서 자식의 성향을 바꿀 수는 없었다. 차라리 마음껏 경쟁해보는 기회를 주는 게 좋지 않겠냐는 조언에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아이는 중학교에 갈 나이였다. 아이는 마을에 있는 작은 학교 말고 큰 학교에 가고 싶다고 했다. 그 말인즉슨 본격적인 입시교육을 받고 싶다는 것이다. 그래, 한번 해보자, 마음을 먹었다. 마침 친구네 집이 목동에 있었고, 목동이야말로 본격적인 입시교육을 체험하기에 딱 좋은 동네였으므로 그곳으로 이사를 가기로 했다. 그런데 갑자기 이사를 하려고 보니 나와 있는 집이 없었다. 겨울 방학이 시작된 때였다. 아이는 빨리 학원에 가서 선행학습을 해야 한다고 보챘다. 하지만 선행을 전혀 하지 않은 지금의 상태로는 일반 학원도 받아주는 데가 없을 것이다. 급한 대로 친구 집에 잠시 머물면서 학원을 알아봤다.

아무리 성향이 달라도 살던 방식을 쉽게 버리진 못한다. 학원 순례를 하면서 아이는 결국 큰 학원을 선택하지 않았다. 아파트 단지를 조금 벗어나 구석진 곳에 있는 작은 학원에 등록을 했다. 세계사로 영어를 배우는 곳이었다. 홀린 듯이 그곳에 들어갔던 기억이 난다. 홀렸다는 표현이 딱 맞는 것이 집에 돌아와 아이와 둘이 마주 보고 왜 이렇게 됐지? 하면서 어이없어했기 때문이다.

근데 이전에 다닌 학원도 비슷했다. 아이는 친구가 다니는 수학 학원에 가고 싶다고 했다. 굉장히 숙제가 많고 어려운 문제를 많이 풀기로 유명하다는 곳이었다. 상담을 하러 갔다가 아이 마음이 바뀌었다. 결국 아이가 선택한 학원은 주 3회 3시간씩 혼자 앉아서 문제를 푸는 곳이었다. 선생님은 아이가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잘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힌트만 줘서 다시 스스로 풀 수 있도록 지켜봐 주었다. 버스로 다니려면 세 번을 갈아타야 하는 먼 곳이었다. 아이는 그 선생님이 너무 마음에 든다며 기어이 그곳으로 다녔다. 선생님은 저래야 하는 거야, 라는 평을 해가며.


세계사로 배우는 영어학원에서 아이는 재미를 느꼈다. 더 이상 큰 학원 타령하지 않았으니까. 목동으로 이사를 했느냐고? 아니, 결국 못했다. 집을 구하기 힘들기도 했지만 우리가 살던 그 마을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었다.

친구 집에 머물다 주말에 잠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우리 마을로 들어서는 기다란 다리가 있다. 그 다리를 건너면서 아이와 나는 동시에 와, 우리 마을이다! 환호성을 질렀다. 무언가 해방된 기분, 내가 살 곳은 여기라는 안정감, 환대와 편안함 등이 우리 발목을 잡았다. 그때 그 순간만큼은 분명 그랬다.

결국 우리는 이곳에 좀 더 살기로 마음먹었다. 모르겠다. 나만의 기억인지, 아이와의 합의였는지. 중학교를 다녀보고 정 그래도 큰 학교로 가고 싶으면 고등학교 때 기숙학교를 가든지 유학을 가든지 하라고 했다.


아이가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는 기회는 자주 오는 게 아니다. 멈칫거리는 순간 정해진다. 그 순간에만 유의미한 상황이 있다.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시점 말이다. 그런 점에서 아이가 뜻을 펼치도록 도와주지 못한 점이 아쉽고 미안하다.

하지만 누가 알겠는가. 아이가 그곳으로 갔더라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수 있다. 여전히 지금처럼 상대평가를 원할지, 또는 절대평가여서 다행이라고 말하는 아이가 되어있을지. 상대평가를 시시하다고 말하는 아이를 보며 내가 불안해할지, 또는 절대평가를 다행이라고 말하는 아이를 보며 나약해졌다고 느낄지도.

다만, 이건 안다. 엄마의 일이라는 게 아이를 보며 매번 불안해하는 것이고, 또 엄마의 일이라는 게 그 불안을 가라앉히기 위해 애쓰는 자리란 것을.



사진출처 https://pixabay.com/photos/runners-male-sport-run-athlete-3730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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