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그게 나

by 천둥


그날, 아이에게는 기회가 되지 못했지만 내게는 기회가 되었다. 그러니까 목동으로 이사를 가려다 말고 다시 살던 곳에 주저앉던 그날, 우리 마을로 들어서는 기다란 다리를 건너며 환호성을 지르던 그 순간, 나는 이제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해버리기로 결심했다. 마치 큰 사고를 겪고 죽음의 문턱에 다녀온 사람이 진정 이생에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깨닫는 것처럼 말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마을에서 하고 싶은 것들을 해보는 건데, 하며 아쉬워했던 일들을 진짜로 해버리기로 마음먹었다.


하고 싶었던 일이 뭐냐면, 부산의 인디고서원처럼 청소년에게 책으로 오아시스를 만들어주는 일이다. 인디고서원을 운영하는 허아람 님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서점에서 청소년들과 인문학 서적을 함께 읽고 실천하는 활동을 한다. 청소년들이 직접 세계적인 인문학자와 인터뷰도 하고, 제3세계 국가에 도서관 짓기 모금활동을 지속적으로 하는 등 인문학적 소양을 일상에서 발현하며 사는 분이다. 시기적으로 논술이 대입 평가방식으로 도입되면서 크게 인기를 끌기도 했지만 허아람 님은 부모가 함께 책을 읽고 실천해야 자녀도 가입할 수 있도록 규정을 만들었다. 인문학의 요람이 입시학원으로 변질되지 않게 한 것이다.

나도 그런 일을 하고 싶었다. 허아람 님만큼 잘할 수는 없겠지만 따라 배우는 수준은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남편이 적극 만류를 했다. 남편은 내게 물었다. 이 지역을 위한 일을 하고 싶어? 아니면 그저 당신의 꿈을 이루고 싶은 거야? 당연히 나는 이 지역을 위한 일을 하고 싶다고 대답했다. 우리 마을에도 정세청세(인디고 서원에서 시작한 청소년 인문 토론회로 전국에 있는 청소년들이 스스로 만들어서 진행한다) 같은 문화가 생기기를 간절히 바랐고, 내가 그 초석을 다지고 싶었다.

남편은 우선 수요가 너무 적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 지역 청소년 수로는 인디고서원이 운영되기 힘들 것이고, 다른 지역 청소년들이 오기 시작하면 결국 다른 지역에서 원정 오는 곳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고 했다. 그럴듯했다. 기본수요가 적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우리 지역에 적당치 않았다.


하지만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그때는 나를 위한 일보다 마을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다르다. 그 일은 그때가 아니면 하지 못할 일이었다. 어차피 하고 싶은 거 다해보자는 마음이었으니 그냥 내 꿈이라도 이뤄볼걸 하는 아쉬움이 있다. 또, 지금은 마을의 토대가 달라졌다. 다른 지역 청소년들과 어울리면서 우리 마을에도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아니었다.

인디고서원을 하지는 못했지만, 다른 일들을 왕성하게 시작했다. 그동안 나는 조금 의기소침하고 조금 수동적이고 조금 남들 뒤에 서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아무것도 해낼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알았다. 내가 하자고 나서고 내가 밀고 나가고 내가 떠맡겠다고 해야 내 의견에 동조하는 이들이 한두 명이라도 생길 것이다. 3의 법칙(같은 행동을 하는 3명이 모이면 주변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되고 또 그 행동에 동참하게 되는 것)에 따라 3명만 생기면 다른 사람들도 손을 내밀 것이고 일이 되도록 밀어줄 것임을 믿었다.


내게는 트라우마가 하나 있는데, 상황에 떠밀려서 회장을 맡았던 적이 있다. 대학 때 어리바리 서 있다가 회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 거 있잖나. 아무도 없는 동아리실에 나 혼자 열심히 가면 어느 순간 내가 동아리를 맡아야 하는 거. 처음 모이는 사람들끼리 연락처 나누자고 메모지 돌리는 사람이 리더가 되는 거. 내가 그러고 있다는 것을 남들은 다 아는데 나만 눈치를 못 채고 있었다. 그럼 누가 해? 네가 해야지,라고 말하는 순간 그렇구나 깨달았다. 얼마나 바보 같았는지. 평생 줄반장도 못해봤던지라 그런 일은 내 몫이 아니라고만 생각했던 것이다.

불행히도 그런 사람이 회장이 되면 그 동아리는 죽 쑤는 거다. 동아리만 죽을 쑨 게 아니라 내 인생도 죽을 쒔다. 졸업 후에도 그쪽 방향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자리가 사람을 만들기는 개뿔, 준비된 사람만이 그 자리를 누릴 수 있다. 두 명만 있어도 얼굴이 붉어지는 소심증 때문만은 아니었다. 작은 일 하나라도 곱씹고 곱씹어서 준비해야 하는 성격인데 아무런 마음의 준비가 없었던 탓이 컸다. 그 무엇보다 왜 나만 그 상황을 눈치 채지 못했을까, 왜 혼자 배신감을 느끼나, 자조하느라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 뒤로 나는 새처럼 살리라, 새처럼 사방을 보며 내가 선 자리를 자각하며 살리라, 다짐을 했었다. 새처럼 날아오르지는 않고 내가 지금 어디 서있나 두리번거리고만 있었다.


신기하게도, 하고 싶다는 욕망은 10년 넘게 가지고 있던 트라우마마저 잊게 했다. 지칠 때마다 그날을 떠올렸다. 다리를 건너면서 우리 마을이다, 소리 질렀던 그날. 또 그 다리를 건널 때면 매번 그날의 감각이 고스란히 떠올라 가슴이 벅찼다. 할 수 있을 때 뭐든지 해야지, 하고 싶으면 머뭇거리지 말고 그냥 해버려야지,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한 일이니까 신나게 앞장서야지, 다짐했다.

만일 그때 우리가 목동으로 이사를 갔다면 어땠을까. 아이는 선행학습에 매진하고 나는 뒷바라지하느라 정신없었을까. 모르긴 해도 목동에서도 나는 비슷한 일을 했을 것이다. 아이가 선행학습을 하는 학원보다 세계사 영어를 배우는 학원을 선택했듯이 목동에서 가서 못내 하고 싶은 일을 잊지 못하고 도전했을 것이다.

이럴까 저럴까 따지고 고민할 시간에 눈앞에 있는 그것을 해라. 어차피 49대 51. 어떤 길을 가도 결과는 거기서 거기다.”

다 괜찮다. 내 안의 변화가 중요하다. 어느 길에 서 있어도 그게 나다.

아, 우리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를 해야지. 아이들은 엄마가 마을에서 벌이는 교육활동에 별 관심이 없었다. 엄마는 엄마가 하고 싶은 일을, 아이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하고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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