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를 가르치지 않고 학교에 보낸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모험이다. 작은아이는 빠른 연생이다. 느리게 키우기로 작정했던 엄마가 갑자기 마음이 바뀌어서 일찍 보낸 것이다. 형이 있는 아이들은 아무래도 첫째에게 배운 게 많아서 일찍 가도 괜찮을 거라는 그럴듯한 이유를 내세웠지만, 사실은 혹시라도 아이가 영악해져서 친구들을 괴롭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어떤 선택의 길 앞에 섰을 때 두려움 때문인지 진정한 사랑의 마음인지 항상 진중하게 들여다봐야 했는데 결국 두려움에 졌다. 아차, 하는 순간 두려움으로 판단력이 흐려지면 길을 잃어버린다.
입학식 날, 아이는 얼어붙었다. 그 모습을 보고도 잘 몰랐다. 줄 서서 교실로 들어가는 아이가 어깨를 움츠리고 있었다. 왜 저럴까, 쟤한테 저런 모습도 있네, 심상하게 넘겼다. 워낙 밝은 아이였으니까.
담임선생님은 글자를 가르쳐주는 과정 없이 냅다 달려 받아쓰기를 하고 시험을 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는 쉬는 시간을 틈타서 뛰어놀았다. 뒷산에 올라가 수업 종소리도 못 듣고 놀다 잡혀왔다. 다른 친구들까지 우리 아이를 따라 산으로 가버리면서 담임은 엄마를 호출했다.
몇 번의 호출 끝에 나는 아이에게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두 주간 체험학습 신청을 했다. 매일 놀러 나갔다. 자전거도 타고 강에도 가고 산에도 갔다. 그동안 한글 공부를 시켜야 한다는 생각은 안 했다. 이제 어지간히 알림장은 적어오니까.
그렇게 14일이 지나가던 즈음, 미국에 사는 언니가 미국으로 놀러 오라고 며칠째 연락을 해왔다. 미국이 옆집도 아니고 놀러 가기는, 생각하고 웃어넘겼는데 아이들 어릴 때 와야지 더 크면 학교 빼먹고 오기 힘들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와, 하는 언니 말에 홀랑 넘어가버렸다.
그래, 적응도 못하는 학교에 매이지 말고 미국에 다녀오자. 결심만 하면 그 뒤는 굉장히 쉽다. 아이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갔다.
이도우 작가님에 의하면, 여행 스타일을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점과 선이 있다. 동선에 따라 여기저기 구경하는 선, 가만히 한 곳에서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점. 나는 두 번째에 속했다. 미국까지 와서 집에만 있냐는 언니의 성화에도 남들이 간다는 유명한 곳에 가지 않다. 그곳은 작은 시골마을이었다. 나는 도착하자마자 중고 자전거를 세 대 샀다. 자전거를 타고 셋이서 온 동네를 누비고 다녔다. 다행히 버스 노선도 아주 잘되어 있어서 조금 먼 공원에도 다녔다. 배낭에 식빵과 물을 넣고 다니면서 배고프면 우리도 먹고 공원에 있는 오리랑 비버에게 던져주기도 했다. 집으로 오는 길에 커다란 마트에 들렀다. 둘째가 좋아하는 돌돌 말린 껌과 첫째가 좋아하는 파란 젤리를 하나씩 사 가지고 돌아왔다. 세상에 부러울 게 없었다. 주말이면 인근 농장에 갔다. 복숭아와 사과를 따서 박스에 한가득 담아도 10달러도 안되었다. 일주일 내내 실컷 먹었다.
언니 말에 의하면 미국은 교육의 의무가 있어 여행비자로 왔더라도 학교에 들어가기는 아주 쉽단다. 다만 공립에 다니면 기록이 남게 되고 혹시라도 나중에 문제가 될 수 있으니 사립에 보내라고 했다. 언니가 교회를 통해 작은 사립학교를 소개해주었다. 두 아이가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학교가 힘들어서 미국에 갔는데 또 학교라니? 그럴 줄 알았는데 의외로 아이들은 너무 좋아했다. 큰아이 걱정은 전혀 안 했다. 영어는 못하지만 그래도 눈치껏 따라갈 것이라 믿었다. 작은아이가 걱정이었다. 힘들어하면 바로 그만둘 생각이었다. 완전 기우였다. 작은아이는 헬로와 쏘리, 두 마디밖에 못하지만 완벽 적응해서 친구들과도 잘 놀고 선생님 말씀도 잘 들었다.
아이가 힘들어한 것은 다른 데 있었다. 치즈를 전혀 먹지 못해서 점심시간이 고역이었다. 그곳의 점심식단은 기본적으로 치즈향이 가득했다. 아이는 빵만 먹거나 과자만 먹었다. 그래도 학교에 가기 싫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아니, 너무 즐겁게 갔다.
왜 그랬을까. 왜 한국에서는 선생님 말씀 안 듣고 산으로 들로 도망가 버렸는데 미국에서는 전혀 문제없이 친구들과 잘 놀고 수업 중에도 집중했을까. 한 가지 짐작되는 것은 수학이 굉장히 쉬워서 아이가 칭찬을 많이 받았다는 것이다. 단 한 가지만이라도 관심을 받고 격려를 받으면 아이는 마음을 열고 집단에 소속되기를 바란다.
지금도 그때 그 친구들이 생일에 초대해줘서 놀러 갔던 일을 이야기한다. 초대한 사람이 초대받아 온 친구들에게 선물을 주었던 그들의 문화를 기억해내고 받았던 기쁨을 떠올린다.
큰아이는 조금 답답해했다. 영어를 알면 훨씬 많은 것을 할 수 있을 텐데 그러지 못해서. 지리나 역사, 과학 수업은 눈치껏 따라가고 집에 와서 이모부에게 책으로 배우면 됐다. 하지만 책을 읽고 가서 에세이 써야 하는 국어수업은 아무것도 하지 못해 아쉬워했다. 그래도 아무도 큰아이를 따돌리거나 무시하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기다려주었다.
조카 말에 의하면 그곳은 인종차별이 법으로 규제되니까 몹시도 교묘하게 괴롭히거나 따돌린다고 한다. 아마 우리 아이들이 눈치채지 못했던 거지 없는 건 아니었을 거라고 했다. 그럴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 아이들은 좋은 기억만 가득 채웠다. 언제고 다시 가고 싶은 곳으로 남아있다. 그곳에서 에너지를 충분히 충전했는지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 아이들은 학교에 잘 적응했고 즐겁게 다녔다.
돌아오자마자 작은아이는 전학을 하고 싶다고 했다. 10명이 채 안 되는 작은 학급인 학교에서 한 세 학급이 있는 학교로. 아이는 어른의 눈이 닿지 않는 '틈'이 필요했던 것 같다. 한 명 한 명 관심 있게 들여다보는 교육이 필요한 아이가 있고 느슨하고 성글게 적당히 무심한 교육이 필요한 아이도 있는 거다. 엄마가 아무리 좋은 학교라고 작은 학교를 찾아 보내주어도 아이에게 맞지 않으면 그만이다. 스스로 알아서 조금 덜 좋아도 자신에게 맞는 학교로 찾아가 준 아이가 고맙다.
글자를 모른 채 학교에 가는 건 모험이지만 여전히 글자를 가르쳐서 학교에 보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모험은 조금 위험하기는 해도 신나는 일로 가득하다. 모험은 무해한 상상을 통해 진심에 가닿는다. 모험은 순식간에 나로 살게 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