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되게 해준 한마디
내가 엄마라니!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에서 한시도 벗어날 수 없는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을 벗어나고도 마음 한편에는 빚처럼 그 마음이 자리하고 있어서 수시로 사람이 작아지게 만들었다. 그때 들은 한마디.
“아이가 내게로 왔다.”
아이는 지구라는 별에 오면서 자신이 이곳에서 해야 할 과업을 가장 잘 수행할 수 있는 조건의 부모를 스스로 선택한다는 것이다. 세상에는 아이보다 자신이 우선인 부모들이 있다. 그런 부모를 만나 힘들어하는 이들을 보면 안타깝지만 그 부모와의 갈등이건 부조화건 인내건 또는 좌절까지도 그에게 반드시 필요해서 스스로 선택한 환경이라는 것이다.
흔한 위로의 말처럼 들릴 수도 있는 말이다. 하지만 엄마가 되고 보니 그 말은 구원의 동아줄이었다. 내 원가족과의 관계도 그다지 순탄치는 않아서 이 논리를 적용해 보았다. 자식의 입장에서 왜 이런 부모를 만났는지 원망하고 미워하던 마음을 접고 내가 선택했다고 믿어보는 것이다. 그런 부모 덕분에(탓에서 덕분으로 바뀌게 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지금의 내가 있었음을, 오로지 나 스스로 쟁취한 것임을 자랑스럽게 받아들이기에 나쁘지 않은 논리였다. 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순순히 수용하고 순응할 수 있게 되었다. 원망과 미움, 애증이 뒤섞인 감정들을 차분히 내려놓고 다음을 생각하게 해 주었다.
부모에 대한 애증은 응당 받아야 할 것을 받지 못한 사랑에 대한 갈구라면, 자식에 대한 애증은 응당 주어야 할 것을 주지 못한 미안함이다. 받지 못한 것을 포기하는 것보다 훨씬 깊은 곳을 건드린다. 내리사랑은 거의 죄의식에 가깝다.
아이가 내게로 왔다는 말은 그런 죄의식을 사해주는 구원의 말씀이 되어주었다. 가끔은 나의 게으름, 독선, 감정의 찌꺼기들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하기도 했다. 엄마가 요리에 관심이 없고 잘 못한다고 투덜거릴 때도 그게 너의 선택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강요했다. 그렇게 뻔뻔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가끔은 뻔뻔할지언정 언제나 미안한 엄마보다는 나은 거라고 스스로 위안한다. 그것이 내가 살아가기에 훨씬 편안했고 편안한 엄마의 모습이 내 아이들의 일상에 더 좋을 것이며 아이들의 평안이 내 약간의 죄의식보다 소중했다.
아토피가 심한 친구가 있다. 온몸이 벌건 상처투성이다. 불행히도 큰 아이가 아토피를 타고났다. 엄마만큼 심하다. 친구는 스무 살 넘어 아토피가 시작되었는데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였다. 당연히 친구는 죄의식을 가졌다. 자신이 임신했을 때 무엇을 잘못했던가를 한시도 쉬지 않고 돌아보았다. 크고 작은 일들을 떠올리며 그 탓을 했고 후회하는 나날을 보냈다. 가려워 잠 못 자는 아이를 부둥켜안고 울기도 많이 울었다. 하지만 아이는 엄마가 맥 놓고 있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하루하루 자라는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건 다해야 했다.
아토피는 우선 돈이 많이 들었다. 발라야 할 로션과 크림, 오일은 비쌌고 수시로 사야 했다. 좋다는 약, 좋다는 방편들은 뭐든지, 어디든지 다니면서 배우고 적용해봤다. 온갖 비타민, 병원, 한의원 등을 전전했다. 가려야 할 음식과 좋은 음식을 골라 먹이느라 일반 학교가 아닌 대안학교에 보냈고 땀 흘리고 운동하는 게 좋다니 항상 스포츠센터와 그 외 스포츠 관련한 학원에 아이를 보냈다. 그 모든 것들을 해주기 위해 친구는 자신의 몸이 악화되는 데도 불구하고 회사에 다니며 돈을 벌었다. 밤새 풍욕을 해주느라 밤을 꼴딱 새운 적도 많았고 함께 단식을 하거나 채식을 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낮과 밤이 있었을 터이다.
친구의 자식 사랑은 일반인의 사랑과 급이 달랐다. 애초에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희생을 했다. 그럼에도 친구는 항상 아이에게 미안해했다. 그 많은 것을 해주지만 아이는 항상 긁었고 잠을 자지 못했으니 제대로 크지 못했다.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면서부터 관계도 힘들어졌다. 그런 아이를 보는 친구의 눈길은 항상 촉촉하게 젖어있을 수밖에.
하지만 우리는 잊지 말자고 다짐한다. “아이가 내게로 왔다.” 아이가 아토피를 잘 이겨내기 위해 아토피 엄마를, 그것도 아토피에 대한 공부와 노력을 쉬지 않는 엄마를 찾아왔다. 성인이 된 아이는 지금도 아토피로 고생하고 있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자신의 몸을 들여다보며 성찰해온 덕분에 아이는 누구보다 친환경적이고 자기 주도적이고 세상에 대한 통찰력을 가지고 산다. 우리는 내게 온 아이가 자신이 얻고자 하는 것을 다 얻고 가도록 최선을 다해 도와줄 뿐이다. 그러니 자책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