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없이 아이 키우기

by 천둥

둘째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날, 우리 부부는 벅찬 가슴으로 졸업식장에 갔다. 글자를 못 익혀서 알림장을 못 써오던 아이가 고등학교를 무사히 졸업하다니. 엄마를 그렇게도 학교에 불려가게 하더니만 저렇게 아무 일 없이 커주었다고 우리 부부는 그날 저녁 자축하며 기뻐했다.

기독교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예수는 어느 순간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아이였던 예수가 갑자기 사람들에게 설교를 하고 있더라는 것이다. 말이 안 되는 상황에 닥쳤을 때 마리아는 그것을 순순히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너무 거창한 비유일지는 몰라도 내게 아이는 그런 존재였다. 누구나 놀랄 만한 상황이 닥쳐도 나는 그것이 당연한 결과인 것처럼,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 대처할 수 있었다. 왜 그런지 나도 모르겠다. 이 아이는 나를 그렇게 하게 했다.


체험학습을 내고 미국에 다녀온 후 희한하게도 아이는 누구보다 조직에 잘 적응하는 아이가 되었다. 공부를 잘하지는 않았으나 모범적으로 생활했고 스스로 학급 임원이 되겠다고 해서 다른 의미로 나를 놀라게 했다. 아이가 탈피를 하고 변신을 한 것 같았다. 에피소드 하나. 한 아이가 우유를 엎질렀다. 선생님이 야단을 쳤는데, 우리 아이가 에이, 닦으면 되지요, 하면서 벌떡 일어나 걸레로 닦더란다. 우유는 냄새가 고약해서 선생님도 싫어하는 일인데 아무렇지 않게 닦아주고 그 아이에게 괜찮다고까지 말해서 놀랐다는 말을 선생님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아이는 수업 외에는 방과후도 학원도 과외도 절대 하지 않았다. 억지로 공부를 시킬 수는 없었지만 시험에 대한 예의는 지키게 했다. 시험 전날이면 앉혀놓고 교과서를 꼼꼼히 읽게 했다. 시험이 끝나면 시험지를 보고 어떤 것이 틀렸는지 확인했다. 교과서에 나온 걸 틀리면 다시 한 번 확실히 이해시키는 시간을 가졌지만, 응용문제나 비비 꼬아 만들어진 문제는 틀리거나 몰라도 괜찮다고 했다. 초등시절은 그렇게 시험 전날 하루의 노력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중등은 반복적인 연습이 겸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영어나 수학은 일정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데 아이는 전혀 그럴 마음이 없었다. 방법을 찾던 중 삼성 캠프라는 걸 찾아냈다. 때맞춰 신청해서 방학 한 달간 삼성 캠프에 갔다. 다행히 거기서 영어에 대한 기본을 다져왔다.

수학은 어떡하나 걱정을 하는데 마침 지역아동센터가 생겼다. 교육열이 높은 선생님께 코가 꿰어 겨우 수포자를 면했다. 지역아동센터는 주로 돌봄 위주이고, 주대상은 초등이다. 그런데 이곳 선생님은 아이들의 학습능력 향상을 자신의 사명으로 삼았다. 초등에서 중등으로 올라간 아이들을 조금만 더 돌보겠다는 마음으로 1년만, 1년만 하다가 중3까지 가르쳤다. 아이는 친구 따라 저녁밥 얻어먹는 재미로 다니기 시작했는데, 친구들이 영 수학 머리가 없었는지 그나마 알아듣는 우리 아이에게 엄청 칭찬을 쏟아 부었다. 너는 조금만 하면 정말 잘할 텐데, 뭐 그런 말들... 아이는 조금씩 다른 친구들을 가르쳐주었고 덕분에 자신도 조금 더 공부하게 되었다고 한다.


아이는 어려서부터 축구를 좋아했다. 매일 축구를 하느라 깁스를 안 한 날이 별로 없었다. 깁스 풀고 일주일 만에 다시 깁스한 적도 있다. 사람들은 깁스를 왜 그리 오래 하냐고 자주 물었다. 사람들아, 깁스를 오래 하는 게 아니고 깁스 풀자마자 또 다쳐서 다시 깁스를 한 거라네.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진지하게 축구를 하고 싶다고 했다. 어느 날 우리 부부를 불러 앉히더니 스페인으로 보내달라는 것이다. 축구 유학을 시킬 능력은 없었다. 하지만 그 걱정을 하기 이전에 아이가 정말 축구를 잘하는지, 얼마나 좋아하고 의지가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우선 학교 축구부에서 활동을 해보자고 했다. 아이가 다니던 학교에는 축구부가 없어서 인근의 축구부를 알아봤다. 고맙게도 감독님이 한 달간 다녀보고 그래도 하고 싶으면 전학을 오라고 하셨다. 사실 그 학교까지 방과 후에 다니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었다. 버스로 가기에는 너무 시간이 많이 걸렸다. 당시에는 나도 일을 하고 있어 픽업해주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그때, 마을 축구부를 운영하던 한 아저씨가 대신해주겠다고 나섰다. 본인이 어려서 너무 축구를 하고 싶었는데 사정이 안 되었다고, 못다 한 한을 재능 있는 아이들을 지원하는 것으로 풀고 싶다는 것이다. 어찌나 고마운지. 한 달간 그분은 아이 픽업을 해주었고, 운동이 끝나고 허기진 아이의 배까지 채워주셨다. 나중에 아이는 그때 잘 먹어서 키가 큰 것 같다고 했으니 그분께 이중으로 감사할 일이다. 하지만 축구는 안 하기로 했다. 다른 친구들을 밀어내야 그 자리에 자신이 들어설 수 있다는 걸 알고 충격을 먹은 것이다. 재밌으려고 하는 축구인데 그렇게 하면 재미가 없다고 했다.


여기까지만 해도 정말 식비 말고는 아이에게 들인 비용이 없다. 과외나 학원 등을 보내줄 형편이 못되어 걱정이었는데, 그때그때 귀인이 나타나 해결해주었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그런데 아이는 고등학교까지 국립고에 갔다. 기숙사비에 급식까지 무료인 학교다. 내가 낸 비용은 우유값과 축구반과 농구반 방과후 수업비뿐이었다. 아이는 그렇게 주변의 도움과 국가 세금 덕으로 컸다.

이제 아이는 독립을 앞두고 있다. 다시 아이가 어떻게 변하게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다만 어떤 변화도 아이의 것이라면 온전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그리고, 엄마라는 사람은 신기하게도 아이의 좋은 것만 기억한다는 것. 그걸 말하고 싶어서 이 글을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릴 때 울며 보채던 시절은 다 잊고 방실방실 웃었던 순간만 기억하듯이, 커가면서 놀라게 했던 수많은 일들은 다 잊고 내 앞에 우뚝 선 존재만 기억하게 된다. 돌이켜보면 아슬아슬한 때도 있었지만 스스로 길을 찾아가는 아이의 모든 순간이 감사하고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덧. 졸업식에 다녀온 아이가 롤링페이퍼를 자꾸만 들여다보았다. 쓸데없이 걱정이 앞서는 내가 물었다. 마음이 불편한 글이라도 있냐고. 아이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아니. 너무 좋아서.

아이는 선선하게 잘 살고 있다. 나나 잘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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