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두번째 유년시절

나를 키워준 육아 이야기를 시작하며

by 천둥


키가 훌쩍 커버리는 시기가 있다. 6학년 겨울 방학이 끝나고 개학날 아침 옷을 입는데 소매가 쑥 올라가고 바지도 깡총하니 짧아져 있었다. 급하게 언니들 옷을 빌려 입고 신발을 신었는데 뒤꿈치가 안 들어갔다. 방학 동안 집에서 내복으로만 살았던 때였다. 그즈음 나는 엄마만 보면 따라다니며 배고파, 배고파를 외쳤다. 요즘 말로 돌밥(돌아서면 밥 때)을 차려내던 엄마는 돌아서면 배고파를 외치는 내게 뒤돌지 말고 뒤로 살살 다니라고 했다. 엄마의 어록으로 대대손손 남길 말이다.

키만 컸지 속은 하나도 여물지 않은 내가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진짜 어른이 되어갔다. 육아를 하면서 유년 시절을 제대로 누렸다. 내가 크는 동안 생활비를 벌어준 남편에게 감사한다. 애들 키우느라 돈 벌 기회가 없었다고 큰소리치지만 내게 그건 사실이 아니다. 내게는 재화화 하는 능력 자체가 없다. 아이들 키우면서 항상 일을 벌였는데 전부 돈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덕분에 살림은 쫌 했다. 오해 마시라. 살림이란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집안일이 아니라 가족이 밖에서 빼앗긴 에너지를 되살려주는 일이니까.


두 번째 유년시절을 내 아이들과 보내면서 키 크는 꿈, 절벽에서 떨어지는 꿈을 수없이 꾸었다. 꿈속에서만 이어지는 집과 세계를 따라 헤매고 다녔다. 총을 맞고 물속으로 빠지기도 하고 어딘지 모르는 어두운 동굴 속에서 쉬지 않고 뛰기도 했다. 그러다 눈 떠보면 집, 내 집, 내 아이들이 곁에서 잠들어 있었다. 마음이 놓였다.

온 가족이 다 같이 지각을 했던 날이 있다. 알람을 맞추어놨으나 아무도 못 들었다. 깨어보니 9시. 급하게 학교에 연락하고 죄송하다고 사죄를 했다. 우리 엄마는 애 넷을 키우면서 단 한 번도 그런 실수를 하지 않으셨는데 나는 왜 이 모양일까. 나는 엄마로서 준비가 덜 되었었나 보다. 나이 40이 넘어서도 그런 한탄을 했다.

아이들이 21살, 25살이 되었다. 돌밥은 아직도 반복되고 한심한 짓도 여전하다. 달라진 게 있다면 자꾸 예전을 돌아본다는 것이다. 그거 기억나? 그때 왜 그랬을까? 진짜 웃겼지 그날...


그렇게 예전을 이야기하다보면 점점 선명해진다. 아이들이 나를 키웠구나. 육아한다고 걸어온 모든 길이 나를 위한 선택이었구나. 앞으로의 시간도 나의 세 번째 유년시절이 되겠구나. 여전히 자신을 위해서만 살고 있구나.

조금씩 나아졌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유년시절은 덜 외로웠고, 덜 아파했고, 덜 괴로워했다. 세 번째 유년시절에는 웃는 법을 배워야지. 많이 웃고 많이 웃기고 더 많이 철없어져야지.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