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오지 않은 나날에 대하여

피어나라 갱년기

by 천둥

보험을 들면서 보장시기를 80세로 할 것인지, 120세로 할 것인지를 놓고 보험 설계사와 한바탕 설전을 벌였다. 설계사는 당연히 120세로 해야 한다고 하고 나는 80세로 해도 좋다고 우겼다. 80살까지 사는 것도 까마득하게 귀찮았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지만 사는 게 귀찮았다. 그 귀찮은 와중에 덕질에 빠졌다. 하루 종일 공연 영상만 봤고 덕주 생각으로 머릿속이 꽉 찼다. 머릿속을 스캔하면 한쪽에 죽음 한쪽에 덕주, 딱 두 가지였을 거다.

설계사는 80세면 아직 창창한 나이라면서 그때 넘어지고 자빠져서 큰 병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 줄 아냐고 했다. 이제는 100세 시대도 아니고 120세 시대이니 120세로 하고, 치료비는 안 넣더라도 간병비는 넣으라고 했다. 나는 넘어지고 자빠져서 큰 병이 생기면 80세 아니라 지금이라도 곱게 갈 테니 걱정 말라고 했지만, 설계사는 곱게 가는 게 쉬운 줄 아냐고 안 가고 오래 누워 있을까 봐 보험에 드는 거라고 협박 아닌 협박을 했다.

결국 100세로 결정했다. 설계사의 말에 넘어가서가 아니라, 덕주가 80살 공연을 이야기해서였다. 80세까지 공연할 테니 우리 이렇게 같이 늙어가자고 말했다. 덕주가 80살이면 나는 90살이 넘을 텐데 그때까지 살아 공연을 봐야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말도 안 되게 진심으로 그런 마음이었다.



사실은 아직 죽음을 말할 나이는 아니다. 그럼에도 죽음을 떠올린다. 마음이 그렇다. ‘인생이 저무는 시기’라는 걸 직감하고 예사롭지 않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예전에도 아플 때가 있었고 지금도 자주 아프다. 아픔에 대한 강도도 비슷하다. 그럼에도 예전에 아팠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두려움이 함께 온다. 왜? 왜 더 많이 걱정하고 더 크게 두려워하고 더 자주 절망하는가? 답을 알면서도 뻔한 질문을 하고 괴로워한다. 죽음의 그림자를 느끼지만 내 앞에는 살아야 할 날들이 쨍쨍하게 펼쳐져 있다. 그 낙차가 주는 아득함이 더 우울하게 한다.

미모가 뛰어난 여자들은 늙어가는 것에 더 큰 대미지를 입는다고 한다. 다행히(?) 미모가 없어서 눈꺼풀의 주름과 처지는 뱃살에도 큰 영향을 받지 않고 그러려니 한다. 하지만 어제도 썼던 낱말이 기억나지 않아 그거 뭐지?를 되뇔 때는 정말 절망이다. 이게 뭐야?를 묻던 아기처럼 귀엽지도 않은, 주름살만 가득한 얼굴로 ‘그거 있잖아, 그거’가 대화의 절반을 차지한다. 이러다 덕주도 잊어버리는 거 아닌가 겁이 난다.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죽었으면 좋겠냐는 질문에 자다가 갔으면 좋겠다고 답한다. 어릴 때는 나도 그랬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주변의 경험 때문이다. 아는 언니의 아버지가 초등학교 때 자다가 돌아가셨는데, 그 뒤로 평생 동안 내일 눈뜨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마음가짐으로 잠자리에 든다고 했다. 잠들기 전 하던 일을 어떻게든 다 마치고 집안을 싹 치우고 관속에 들어가듯이 잔다는 것이다. 그 언니도 매일이 힘들지만 남편과 아이들이 그런 언니를 힘들어했다. 그럼에도 아침에 눈 뜨는 게 귀찮은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때 후배 해진이 암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투병했다고 하지 않고 죽어가고 있다고 하는 이유는 너무 늦게 발견해서 이미 뇌와 뼈까지 전이가 되어있었고 스스로 적극적인 투병을 하지 않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해진은 죽음과 죽음 이후를 생각하고 준비했다. 하지만 가족들은 죽음에 대한 말을 꺼내는 것조차 힘들어하고 지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죽음을 말하고 싶지만 말하지 못하는 나는 해진에게 좋은 말 상대였다. 우리는 짧은 생의 아쉬움과 슬픔과 충족감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 생에서 못다 한 숙제와 살면서 누렸던 욕망, 그 고마움과 미안함을 털어냈다. 결국 죽으면 어디로 갈까, 전생이나 영혼은 있을까, 인간은 결국 무엇이었을까를 말했다. 우리는 죽음 이후의 생각이 많이 달랐다. 당연히 삶과 영혼에 대한 생각도 달랐다. 해진은 무無로, 흙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어차피 흙이 되는 것이니, 의연히 가겠노라 했다. 그리고 그는 정말 의연하게 갔다.

해진이 가고 나만 남았을 때에야, 나는 그가 조금 더 살았어도 좋았으리라 생각하게 되었다. 그가 바라던 대로 영원히 사라지기를, 흙이 되어 잘게 부서지기를 기도해주었지만, 그보다는 아직 살아서 나와 함께 더 이야기를 나누고 더 나중을 살고 더더 나중에는 오늘을 기억하며 추억했더라면, 그랬더라면... 덕주 공연을 보고 난 다음날이면 더욱 미안하고 아쉬웠다. 나는 살아 이렇게 멋진 공연을 보는데, 이렇게 웃는 덕주를 보며 행복해하는데, 너는 왜 없니... 너는 왜 그리 훌쩍 가버렸니...



친구들과 모이면 꼭 한 번씩은 스위스 안락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각자의 신상을 말하다 보면 결국 자식 고생시키지 말고 미리 스위스 갈 보험 들어놓자, 로 끝나는 것이다. 좀 더 친한 친구끼리는 혹시 갈 때가 되어도 안 가고 버티면 베개로 잘 눌러주자는 취중약속까지 한다. 늙는다는 것은 추한 것이고, 추한 것은 치워 없애야 한다고 거리낌 없이 속내를 드러낸다.

그런 말들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친정이든 시댁이든 또는 양가 모두이든 가정마다 돌봄이 필요한 어르신들이 있고 우리는 그들의 존재가 부담스럽다. 자식에게 폐 끼치기 싫다는 말은 결국 현재 부모가 내게 폐 끼치고 있다는 말이다. 한때는 내 가정을 온전하게 유지하기 위해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지금은 내 가정의 안녕을 심히 위협하고 있다. 위협은 나의 노년기조차 치워 없애고 싶게 만든다. 어깨를 짓누르는 현실의 무게를 이해하고도 남지만, 나는 이제 며느리나 딸의 입장보다 어르신에게 감정이입이 된다. 안락사는 누구를 위한 안락인가, 갈 때란 언제란 말인가, 누가 갈 때를 정할 수 있단 말인가, 혼자 분노한다.

어느 순간부터 내 그림책(그림책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고 있다) 더미북의 주인공이 다 할머니가 되었다. 할머니의 마음으로 글을 쓰게 된다. 조금 더 살아도 되냐고 묻는 할머니, 내일 가더라도 오늘을 즐기는 할머니, 자신이 누구인지는 잊어도 웃는 것을 잊지 않는 할머니 이야기를 쓴다. 마침 요양보호사들을 위한 돌봄 안내서에 구성작가로 참여하게 되면서 어르신들은 죽음이 아니라 삶을 살고 있고, 죽음은 한순간이 아니라 천천히 삶의 과정 속에 온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 우리는 아직 그들의 삶을 도와야 한다. 아니, 나의 삶을 도와야 한다. 죽음이 잘 따라오도록.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에서 파스칼 브뤼크네르는 촌철살인의 문장으로 노년에 대해 써 내려간다. 적당한 유머와 근사한 비유가 웃음을 주고 통찰을 준다. 그런데 "남들이 먹여주고 입혀주고 씻겨주는 대로 살아가며 끝을 기다리는 노인들보다 애처로운 이는 없다"는 문장 앞에서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도 모를 저항감이 들어 책을 덮어버렸다. 스스로 할 수 없다면 살 가치가 없나, 존재만으로 의미가 있다는 말은 듣기 좋은 꽃노래였을 뿐인가.

영화 <칠곡 가시나들>의 할머니들을 보면 끝을 기다린다고 해서 애처롭지 않다. 먹이를 찾는 하이에나처럼 오늘을 설레게 해 줄 무언가를 찾아 헤맨다. 물론 그 할머니들은 아직 남들이 먹여주고 입혀주고 씻겨주는 대로 살아가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들도 끝을 기다린다. 끝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끝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는 과정을 "산다." 살아가고 있다. 그들도 남들이 먹여주는 밥을 먹으며 내일은 호박을 더 달라고 해야지 입맛을 다실 수도 있고, 남들이 입혀주는 옷을 입으며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분홍색 스웨터를 입혀주면 좋겠다 기대할 수도 있고, 남들이 씻겨주는 대로 가만히 있지만 간지러워 깔깔 웃을 수도 있을 것이다. 오늘을 웃고 내일 웃을 것을 기다릴 수도 있다. 아직 그때를 살아보지는 못했지만 갱년기의 나락 속으로 빠져들었다가 다시 올라오면서,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슬며시 낙관한다.

이제 나는 매일 삶 뒤에 숨은 죽음에게 남은 삶이 이리 많다고 자랑한다. 보험은 여전히 중대한 질병보다 실손에 무게를 두지만, 치료비가 필요 없다고 하지는 않는다. 갱년기는 죽음을 생각해보는 나이지, 죽음을 기다리는 나이가 아니다. 피어오르는 시기를 거쳐 꺼져가는 시기에 접어들었음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할 뿐이다. 피어오르는 시간만큼이나 긴 꺼져가는 시기를 살아가야 한다. 그럼에도 죽음을 짚어봐야 한다. 죽음이 삶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야 한다. 두려움을 직면하기 위해서, 그리고 달라진 몸에 적응하기 위해서.

갱년기 이후의 몸은 틀린 몸이 아니라 다른 몸이다. 갱년기 이전의 몸이 정상이고 이후의 몸은 비정상이거나 질병이 아니라 그저 달라진 몸이다. 다른 몸에 적응하는 기간이 바로 갱년기다.


우리 자연사하자, 라는 노래가 있다. 미미시스터즈가 청춘들에게 자살하지 말고 오래 살자는 메시지를 담아 부른 노래다.

살다 보면 생각지도 않은

가슴 뛰는 일이 꽤 많아

살다 보면 생각지도 않은

나 같은 이상한 애도 만나지

5분 뒤에 누굴 만날지

5년 뒤에 뭐가 일어날지

걱정하지 마 기대하지 마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야

걱정 마 어차피 잘 안 될 거야

우리 자연사하자


정말 살다 보면 삶은 난타전이다. 계속 두들겨 맞는다. 하지만 가끔 나도 잽을 날린다.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사는 게 귀찮았던 건 맞기가 싫어서였을 수도. 적당히 맞는 것을 걱정하지 않고 안 맞을 거라 기대하지도 않고 산다. 그것도 잘 안될 거지만 그런 게 사는 거니까.

해진처럼 나도 의연하게 가고 싶다. 죽음이 예상되는 질병이 오면 너무 오래 살지 않아도 되니 이런 행운이 있나, 기뻐할 것이다. 지금까지 아무 질병 없이 주변의 큰 죽음을 겪지 않고 살았으니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행운인가. 하지만 안락사 같은 거 꿈꾸지 않고 자연사할 거다. 더 많이 맞겠지만 더 많이 끌어안을 거다. 내일 가더라도 오늘은 내일을 기대하며 잠들고 싶다. 내일을 기대하되 기다리지는 않는 지혜를 갱년기가 가르쳐주었다.

갱년기는 내일을 기대하는 법을 배우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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