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모임이라고 하지 않고 학급 학부모회라고 명명하는 이유가 있다. 모임이라고 하면 진짜 친목모임으로 흐를 수 있다. 학급 학부모회라는 정식 명칭은 학교 내 시스템 안에 구축되어 있는 하나의 조직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명칭은 위상을 말해주기도 한다.
반대표를 맡은 학부모들은 대체로 두 가지 유형이다. 학부모 총회에 나가서 하필 그 순간에 담임선생님과 눈길이 마주쳐서 할 수 없이 맡게 된 경우, 공명심도 있고 내 아이를 위해서 뭐라도 하고 싶은 마음에 일부러 담임선생님과 눈길을 마주한 경우.
전자의 경우 반대표가 되었으니 반모임을 한번 해볼까 고민하지 않는다. 담임선생님이 별말이 없으면 그냥 반대표라는 이름을 달고 있되, 별일 없이 한 해가 지나가기만을 바란다. 후자의 경우는 담임선생님이 언제 불러줄까 기다리게 된다.
반모임을 결심하기까지 많은 생각이 오간다. 주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적어도 첫 모임은 반대표가 점심 식사비를 내는 것이 모양새가 좋다고 하는데 정말 그런가, 장소는 어디로 해야 할까,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아무 일도 없는데 모임을 굳이 해야 할까, 모이면 엄마들은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마구 하게 될 텐데 그러다 내게 무슨 말을 담임선생님에게 전달하라고 하면 어쩌나.
경험 있는 이들이 전하는 말에 의하면 불행히도 학급에 어떤 문제가 있다손쳐도 절대 나서지 말라고 한다. 어차피 나서는 엄마는 따로 있으니 걱정 말라고, 반대표랍시고 나서면 골치 아픈 일에 휘말리게 되니 조심하라고 한다. 그래서 학급학부모회가 자리를 잡으면 반대표들은 오히려 편하다. 회의내용과 전달할 사항이 정해져 있으니까.
직접민주주의가 자리 잡은 학부모회의 모습은 조금 다르다. 직접민주주의라고 하면 조금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겠지만, 우리는 이미 직접민주주의를 경험하고 있는 시대이다. 가만히 있으라는 권위주의를 끝내고 내 목소리를 담아 내가 원하는 세상을 이루겠다는 의지로 행동하고 거대한 권력을 이겨낸 가슴 벅찬 경험이 있다. 이에 직접 참여했건 그렇지 않건 우리가 그런 역사를 가졌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인류의 인식은 퇴보하지 않는다. 나선형으로 변화 발전하다 보면 가끔 의외의 결과를 나오기는 하나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담론이 형성되고 정책이 바뀌고 법률이 바뀌고 기어이 문화가 바뀐다.
그러니 우선 반모임이라는 이름부터 정확히 불러보자. 우리는 학급 단위에서 교육에 대한 공론을 이끌어내는 조직이다. 회의도 격식을 갖추어 학교에서 하는 것이 좋다. 그렇다고 딱딱한 회의자리를 만들라는 것은 아니다. 누가 와도 편하게 진입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와야 마땅할 자리이고, 환대받는 자리라고 느끼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환대
환대가 가장 중요하다. 지금까지 학부모회의에는 가도 그만, 안 가도 그만이거나, 나서는 사람만 가는 자리라고 인식되어 왔기 때문에, 그런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라도 환대가 필요하다. 또한 이 자리는 어떤 결론이나 역할, 책임 같은 것들보다는 마음을 나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확인시켜주기 위해서라도 서로를 환대하도록 하자.
아이들도 학년이 바뀌어 학급이 바뀌면 서먹하고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런데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 없이 수업만으로 학급이 운영되고 있다. 가끔 학기초에 친목의 시간을 마련하게 하는 학교도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한두 번 하고 나면 끝이다. 그것도 담임 주도로 역할 분담을 정한다든지 급훈, 서로의 약속을 정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요즘 혁신학교에서는 조금 다르다. 더욱 친밀하게 서클을 하기도 하고 마니또 등을 통해 1년 동안 관계 형성을 위한 노력을 지속하기도 한다.
학부모들도 한 마을에 살기는 하지만 서로 모르고 지내왔거나 눈인사 정도만 하던 이들이 만나, 가장 걱정하고 가장 많이 생각하고 항상 기도하는 자녀의 문제를 나누는 사이가 되려면, 내 이야기를 해도 된다는 안전감이 필요하다. 신뢰가 쌓여야 한다는 것이다. 서로에 기대어 걱정을 좀 덜고 더 나은 교육을 모색할 수 있겠다는 믿음 말이다.
얼마 전 꿈의 학교 컨설팅을 하게 되었다. 꿈의 학교를 주도적으로 만든 아이들을 꿈짱, 행정적인 면을 도와주는 어른을 꿈지기라고 하는데, 꿈지기의 만족도가 아주 높았다. 자녀나 또래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을 스스로 하도록 지원하면서 교육 안에서 자신의 효능감을 느끼게 된다. 공적인 자아를 실현하게 되면 그 공동체에 대한 신뢰감도 높아지는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학급 학부모회의는 이런 것이다. 학급에 어떤 아이가 말썽을 부리는지 모니터링하거나 교사가 하는 수업에 대한 분석을 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 아니다. 우리 학급을 어떻게 더 단단하게 만드는지, 그러니까 서로에 대한 신뢰가 어떤 교육적 효과를 가져오는지 실험하는 것이 우리의 몫이다. 문제를 말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비난의 방식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점을 확실히 하고 모임을 시작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학부모회 약속이나 수칙이 있으면 도움이 많이 된다. 예를 들어, 더불어 성장하는 학부모회, 배움과 나눔이 있는 학부모회가 되겠다고 한다면, 우리의 과정이 이에 맞는지, 우리의 결론이 이에 합당하는지 돌아볼 수 있는 지침이 될 수 있다.
첫 회의에서는 서로를 알아가는 서클을 하면 좋겠다. 학급 학부모회에 왔다가 말 한마디 못하고 돌아가면 굳이 다시 참여해야 하나 회의스럽다. 주목받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이라도 자신을 소개할 수 있는 정도의 기회가 모두에게 있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잘하지 못해서 속상한 것이지, 기회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니까.
학교나 운영에 관한 전달 내용은 뒤에 이야기하고, 서로를 알아가고 신뢰를 쌓아갈 만한 이야기를 먼저 나누자. 관심이 필요한 아이에 관한 구체적인 이야기는 가급적 첫 회의에서는 피하는 것이 좋다. 대표와 임원진들이 미리 판단하는 과정을 거치도록 한다. 꼭 필요해서 이야기하게 된다면 비난이나 책임을 묻는 방식이 되지 않도록 이야기의 흐름을 신경 써서 이끌어야 한다.
처음부터 갑론을박하게 되면 모임에 대한 피로도가 너무 높아진다. 더구나 첫 모임이므로 서로 삶의 맥락을 모르는 상황일 것이다. 이럴 때 판단을 요구하게 되면 평소 자신이 가졌던 기준으로만 판단하거나 이미 알고 있었던 사람들의 관계성 내에서 정해진 결론으로 끝날 수 있다. 최대한 판단을 미루고 교육적 관점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 힘든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이 있었더라도, 서로를 알아가는 것이 즐겁고 행복하다는 느낌이 들게 마무리해야 한다. 마지막에 소감 나누는 시간을 가지면 좋은 것을 말하게 되는 우리네 습성이 있다. 자기 생각과는 조금 달랐다고 해도 그런 소감을 듣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그런 점이 있었다고 받아들이게 된다. 그런 점을 활용하자는 것이다. 그래야 또 오고 싶어진다.
마지막으로 전달 내용이 있다면 배경을 잘 설명하자. 결론만 말하다 보면 질문과 반대의견이 쏟아질 수 있다. 반대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배경을 몰라서 하는 질문과 반대에 대해 설명하다 보면 뭔가 설득한다는 기분이 들게 마련이다. 서로 기분 좋을 수가 없다. 애초에 배경을 잘 설명하면서 결론을 전달하면 오해될 일도 없고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반대나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 의견이 나올 경우에는 가급적 즉답하지 말고, 좀 더 알아보고 이야기해주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