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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 Aug 25. 2022

꽃, 꽃, 꽃

아파트에서 즐기는 사계


처서가 지나자 열대야가 없어지고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고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노, 노.

23일 처서가 아니라 가을은 15일에 시작되었다. 물론 본격적으로 가을이야, 라는 기분이 들게 된 것은 처서일지 몰라도 여름이란 놈이 기세가 딱 꺾인 날은 15일이다.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냐고? 근거 같은 건 없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인생을 겪으며 내린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다.

매일 밤 걷는다. 낮이 너무 뜨거워 항상 밤에 걷는데, 민소매 입은 팔뚝이 선득해서 문득 떠올려보면 그날이 15일이다. 입추가 지났으니 그런 거지 싶다가도 올해 입추였던 7일 밤에도 덥고 8일에도 덥고 9일에도 덥다가 왜 15일에 팔뚝이 선득하냐고. 매년 신기하다 신기하다, 하면서 경험치가 쌓여서 하는 소리니 너무 신경 쓰지는 마시라. 어쨌든 그날부터 끝나지 않을 듯 들끓던 더위가, 징그럽게도 쨍하던 태양이 서서히 고개를 숙이는 것을 느낀다.


팔뚝을 쓸어내리며 본격적으로 화단의 꽃을 구경한다. 훤한 낮에는 보지 못하고 밤에 봐야 해서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그것도 나름 매력 있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봉숭아꽃이다. 풍성하게 꽃을 피우는 시기여서 그렇기도 하지만 혹여 봉숭아 꽃물을 들이지 못하고 지나갈까 봐 마음을 졸이며 쳐다본다. 내가 봉숭아 꽃물을 들이는 건 아니지만 그 누군가가 봉숭아 꽃물을 들이려고 마음먹었는데 때를 놓칠까 봐 얼른 따가라고 말해주고 싶어 안달을 한다. 주변을 둘러보며 누군가, 특히 어린아이가 없나 두리번거린다. 하릴없이 남편 손에라도 봉숭아 물을 들여줄까, 생각하면서 손톱에 곱게 물들인 장면을 떠올려본다. 꽃을 보면 누구나 웃음을 띠지만 봉숭아꽃을 보는 사람들은 공통된 하나의 장면을 떠올리며 웃는 것이다.

가만있자, 봉숭아 꽃물을 들이는 것 우리나라만의 풍습일까 아니면 다른 나라에서도 흔히 하는 일일까. 만일 우리나라만의 풍습이라면 외국사람들이 굉장히 재밌어할 민속체험이 될 듯하다. 혹시나 해서 검색창에 검색해보니 외국인 며느리들에게 봉숭아 물들이는 체험을 하는 기사가 뜬다. 외국에는 없나 보다! 괜히 우쭐해지는 기분이다.


우쭐해진 김에 몇 가지 팁을 말하자면, 흰꽃이 더 붉게 물든다. 흰꽃은 붉은 물이 안 드는 줄 알고 진분홍을 골라 따는 사람들이 있는데, 흰꽃이든 분홍 꽃이든 진분홍 꽃이든 주홍 꽃이든 다 주홍 물이 든다. 그런데 흰꽃이 더 붉게 물든다. 그리고 잎사귀를 섞으면 더 곱게 든다. 얼룩덜룩해지지 않고 곱게 말이다. 첫눈 오는 날까지 손톱에 봉숭아 꽃물이 남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는 말 때문에 가능한 늦게 물들이려면 꽃잎이 다 떨어진 늦은 가을에 남은 잎사귀만으로 한번 더 물들이면 된다. 뭐 다 아는 팁일지도 모르지만.


봉숭아꽃 옆에는 항상 분꽃이 있다. 아니, 분꽃 옆에 봉숭아꽃이 있다고 해야 맞겠다. 왜냐면 대부분 분꽃을 화단 가득 무더기로 심고 그 옆에 서운치 않게 봉숭아꽃을 몇 그루 심곤 하니까. 아마 분꽃을 많이 심는 것은 백일홍만큼이나 오래 꽃을 피우기 때문인 것 같다. 봉숭아 꽃물들이기를 아는 사람이라면 분꽃이 왜 분꽃 인지도 알 것이다. 까만 분꽃 씨앗을 가르면 그 안에 하얀 분이 나온다. 그 하얀 분을 얼굴에 찍어 바르고 봉숭아꽃을 따서 빻으며 소꿉놀이를 하기 때문에 봉숭아꽃 옆에는 당연히 분꽃도 있는 거다. 그 옛날 봉숭아 꽃물 들이는 방법을 알아낸 것도 신기하지만 분꽃의 하얀 분을 진짜 분으로 사용하지도 않았으면서 분꽃이라 이름 지은 누군가가 너무 사랑스럽지 않은가. 꽃보다 씨에 주목한 꽃이라니. 분꽃은 저녁이면 꽃송이를 오므리는데 그때 까만 씨앗이 오종종 놓여있는 걸 보면 땡그란 깜장이 그렇게 예쁠 수 없다.


꽃 이름이 사랑스럽기로 말하자면 상사화만 한 게 있을까. 꽃이 필 때는 잎이 없고 잎이 무성할 때는 꽃이 피지 않아 서로 볼 수 없어 상사화라니, 처연하고도 아름다운 이름이로다(왠지 고어체를 써야 할 듯하다).

민소매 팔뚝이 서늘한 밤에 문득 화사한 꽃이 달빛에 비치면 그게 바로 상사화다. 봄에 끝이 동글동글한 상사화 잎이 호로록 모여있는 걸 보면 그 장소를 잘 기억해두려고 애쓴다. 그래 놓고 여름이 지나면 가물가물해지는데 환하게 꽃이 핀 걸 발견하는 순간, 맞다 여기였지 반기게 된다. 어차피 잊어버릴 거지만, 그래도 꽃이 워낙 환해서 눈에 띄지 않을 수 없는데도 봄에 상사화 잎을 기억해두려고 애쓰는 건 꽃이 보지 못할 잎을 내가 기억해주고 싶어서다. 너 전에 요러조러한 잎이었는데 어느새 이렇게 환한 꽃이 되었네, 말을 건네주고 싶은 거다. 또 다음 해 봄에 잎을 보면 작년에 너 참으로 환했는데 반갑구나, 다시 떠올려주고 싶어서다. 언젠가 한 번은 꽃대가 올라올 때 알아봐 주리라. 누군가는 상사화를 사랑의 안타까움으로 해석하겠지만 나는 존재적 외로움에 대한 깊은 서러움으로 해석된다. 한 번도 만나지 못하는 내 안의 나, 라니 서럽지 않은가.



괜히 울적한 마음을 달래주는 건 해바라기다. 그 이름처럼 여름내 실컷 해를 바라보며 기어이 품어낸 씨앗과 이제 충분했다며 고개를 떨군 모가지와 나풀나풀 흐드러진 노란 잎. 한여름 열망하는 해바라기보다 한풀 꺾여 고개 숙인 해바라기가 더 좋다. 나를 편안하게 한다. 록 씨앗을 못 채웠을 지라도.

아쉬운 건 올해 해바라기 옆에 풍선초가 없다는 거다. 항상 풍선초가 해바라기를 휘감아 올랐는데, 뭔가 비슷하게 덩굴이 올라오길래 이제나저제나 기다렸더니 노란 꽃을 피우는 거다. 어? 풍선초 꽃이 하얀색이 아니네. 내가 본 그것은 꽃이라기에는 너무 작았는데 원래 이렇게 오이꽃만 한 노란 꽃을 피우나? 잠시 헷갈렸다. 아무리 기다려도 풍선이 달리지 않아 검색을 해봤더니 그건 풍선초가 아니라 여주 꽃이었다. 어쩐지 너무 풍성하게 잘 뻗어나간다 했더니. 여주 꽃에게는 미안하지만 대실망이다. 풍선초의 연두색 풍선이 부풀어 오르는 거랑 그 안에 까맣게 씨앗이 여무는 거 보는 기쁨이 컸는데. 무엇보다 까만 씨앗을 꺼내 하트를 확인하는 기쁨은 매년 보면서도 매년 기다려지는 순간인데 아쉽다. 아무래도 올해는 풍선초는 보지 못하고 여주가 열리는 모습을 지켜봐야 할 것 같다.

 

화단의 꽃을 보느라 고개를 숙이고 걷다가 문득 고개를 들면 배롱나무가 보인다. 나무에서 어떻게 저렇도록 진한 분홍꽃이 피는 건지, 놀라울 만큼 꽃분홍이다. 야광의 느낌이랄까.

배롱나무를 처음 발견한 것은 몇 년 전 하남의 한 성당에서였다. 짙푸른 나무들 사이에 홀로 화사하게 진분홍을 발사(!)하고 있었다. 그건 발사라고 해야 마땅하다. 아니면 뿜어낸다고 하든가. 봄에는 분홍 꽃들이 많지만 여름에는 분홍 꽃이 피는 나무가 거의 없다. 그것도 진분홍을.

어쨌든 그 뒤로는 수시로 배롱나무를 만났다. 차를 타고 가다가 산에 분홍이 보이면 어김없이 배롱나무다. 짙푸른 색 사이에 진분홍이라 그런지 그토록 쉽게 눈에 띄는데 그동안 모르고 산 게 이상할 정도다(이 글을 보는 당신, 당신도 이제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푸른 나무들 사이로 분홍 배롱나무를 발견하는 마법을 경험할 것이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이는 거다. 이름을 기억하는 게 중요하다. 이름이 독특한 것이 기억하는 데 도움이 된 것도 사실이다. 백일홍처럼 백일 동안 꽃이 핀다고 해서 백일홍 나무, 백일홍 나무, 부르다가 배롱나무가 되었다는데, 상사화라는 멋진 이름을 지어내던 조상들이 믿을 수 없이 성의 없이 지은 거 같아 배롱나무에게 좀 미안하기도 하다. 그래도 기억하기 좋은 이름이니 그걸로 위안을 삼으렴.   


우리 아파트 배롱나무는 놀이터 바로 앞에 있다. 밤에 걸을 때는 놀이터에 거의 사람이 없거나 있어도 어른인 경우가 많아서 아무 생각 없지만, 낮에 그곳을 지날 때면 아이들에게 배롱나무를 한번 만져보라고 말해주고 싶은 충동을 참기가 어렵다.

얘들아, 이거 봐. 배롱나무를 만지면 잎이 막 움직인다~ 신기하지? 간지럼 타는 것 같아서 간지럼 나무라고도 한대~ 얘들아.

하지만 꾹 참아야 한다. 만지면 반응을 한다는 건 그만큼 예민하다는 거니까 자꾸 만져서는 안 될 것이다. 간지럼도 원래 고통에 속한다고 하니까. 아이들은 환하게 발사되는 진분홍의 기운만으로 충분할 거다.


참. 배롱나무 꽃은 진분홍만 있는 게 아니다. 흰꽃도 있다. 얼마 전 도서관에 가는데 오래된 주택가 담장에 못 보던 하얀 꽃이 고개를 내밀었다. 저게 뭘까? 아무리 봐도 배롱나무꽃인데 흰색이라니. 가까이 가서 나무를 살펴보니 진짜 배롱나무였다. 배롱나무는 나무색이 독특하다. 껍질이 벗겨지면서 고동색과 황토색이 얼룩덜룩하게 어우러져 있다. 모과나무 색도 얼룩덜룩한 황토색이 섞여있는데 묘하게 귀태가 난다.


그 외에도 화단에는 다양한 꽃들이 있지만 옛날 사람이라 그런지 외국종들은 별로 눈에 안 들어온다. 어릴 때 마당에 보았던 꽃들만 자꾸 애정이 간다. 아차, 코스모스를 빼먹었네. 하긴 코스모스는 지금도 한창이지만 가을을 대표하는 꽃이니까 다음에 얘기해도 되겠지.

추석이다. 이번 추석은 좀 일러서 어떨지 모르지만 추석이 지나면 국화나 소국이 피기 시작할 것이다. 지금도 국화잎이 무성하게 자라면서 나를 봐줘, 외치고 있다. 조만간 꽃몽오리가 맺힐 것이다. 그러고 보면 늦게 피는 꽃이라는 말이 참 우습다. 늦다는 건 순전히 봄을 시작으로 보는 인간의 기준이 아닌가. 인간의 눈이 미치지 못해도, 인간의 잣대와 상관없이 꽃들은 마이웨이다. 내 눈이 미치지 못하고 내 잣대에 들어오지 않아도 외국종 꽃이 활짝 피어나듯이. 나를 봐주지 않는 세상이 조금 덜 다.


나 왜 꽃 얘기를 이렇게 신나게 하지? 원래 꽃 별로 안 좋아했는데. 아웅~ 진짜 나이를 먹긴 먹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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