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깎이 사춘기와 나찾기 프로젝트
올해 여름 휴정기* 첫 주 금요일 아침 9시,
우리 로펌 소송그룹장님(사기업으로 치면 00 본부장 정도 되지 않을까)과의 면담 시간,
"저, 퇴사하기로 결심했습니다. 퇴사하겠습니다."
이 말을 입 밖으로 결국 꺼내버렸다.
휴정기 : 법원은 한 해 2번, 2주씩 재판을 쉰다. 대개 여름휴가철인 7월 말부터 8월 초, 겨울 휴가철인 12월 말부터 1월 초 사이다. 휴가를 쓰기에는 극성수기지만, 송무 변호사들은 재판 일정을 고려하여 주로 휴정기에 휴가를 사용하는 편이다.
나는 매번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좋은 대학, 좋은 로스쿨, 좋은 로펌에 가기까지 나에게 과분한 것들을 얻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글쓰기를 좋아하고, 변호사는 글로 먹고사는 직업이어서 로펌 일은 생각보다 나랑 잘 맞았다. 일은 동기들 중에서 많은 편이었지만, 큰 불만은 없는 생활이었다.
하지만 내 모습이 그렇게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원하는 로펌에 입사하고 어느덧 30대가 된 나는, 일, 학업, 연애 외에는 별다른 이야기가 없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내가 여기까지 오게 한 결정적인 선택들이 모두 '주변에서 좋다고 하는 것들'에 맞춰져 있었기 때문인 건 아닐까. 로스쿨을 다니던 20대 후반부터 어렴풋이 느꼈고, 조금씩 때때로 불안했다. 나는 학부에서 다른 친구들이 각자 하나 둘 취업을 해나가는 동안 꽤 긴 진로방황을 했고, 그러던 중 예상치 못하게(?) 로스쿨 합격 통보를 받았다. 불확실한 미래보다는 적어도 길이 어느 정도 정해진 로스쿨을 선택했다.
그러다 30대가 되어 뒤늦은 사춘기가 왔다. 이 불안을 해결하기 위해서 나를 좀 알아보자고 생각했다. 그러자 나는 정작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슨 가치를 위해서 사는지', '어떤 미래를 원하는지'에 대해서 고민해보지 않은 채, 그저 남들이 보기에 좋은 것들을 남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하고 있었음을 매 순간 절실히 깨달았다.
'아, 그래서 내가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구나' 나는 '나'가 아닌 '상황을 좇으면서 살았던 걸지도. 그러니 매 상황 열심히 살았음에도, 나의 '선택'이 아닌 '운'이라고 치부해 왔던 걸지도. 나는 나를 너무 모르고 살았다. 나에 대한 정립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렇게 '나 찾기' 프로젝트는, 작년 여름부터 시작되었다. 예전부터 눈길이 갔던 연기수업을 작년에 처음으로 듣기 시작하고, 서점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희곡 읽기를 해보고, 연극 무대에 오르면서, 내가 경주마처럼 달려온 선로에서 나와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보았다. 큰 부나 명예 없이도, 좋아하는 것들 부단히 좇으면서 사는 사람들을 만났다. 나도 늦기 전에 나에 대해서 더 제대로 알고, 나의 결에 맞는 삶을 찾고 싶었다. 밤낮없이 바쁜 로펌에서, 업무 외에 '나 찾기' 프로젝트를 실행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 프로젝트는 올해 여름 '퇴사'라는 결정으로 이어졌다.
로펌 3년 차, 이번 여름 휴정기는 처음으로 오롯이 국내, 그것도 본가에서만 보냈다. 이번 휴가 기간 동안 내가 언제 퇴사를 할지 제대로 정하고, 그때까지는 열심히 회사를 다니겠다고 마음먹었다. 마음속의 퇴직일 후보는 '2월 말'(만 3년을 채운다는 이점이 있음), '9월 중순'(추석 연휴 즈음부터 남은 하반기를 쉬고 1월 1일에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음)이었다. 또한 퇴사를 한 후에는 무엇을 할지, 개업 변호사를 할지, 한다면 어떻게 수임을 할지, 앞으로 나는 어떻게 먹고살 수 있을지 생각해 보는 시간으로 삼자는 마음이었다.
이런 복잡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내가 이번 휴가는 본가로 간다고 하자 어떤 선배 변호사님은 '어느새 어엿한 중견 변호사가 되었구나, 중견 변호사는 해외 나갈 힘이 없어. 나도 그냥 국내에서 쉴 거야'라면서 동병상련?의 마음을 내비쳤다. 그게 아니라, 저는 퇴사 결정 때문이었는데요, 변호사님...
본가로 내려가는 월요일, 기차 시간이 꽤 남아서 용산역 영풍문고에 잠깐 들렀다. 일요일마다 진행하는 자기 계발 스터디에서 친구들에게 추천받은 책인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매트 헤이그)를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발견했다. 인생이 고민될 때 참고하는 책이라고 무려 7명 중에 2 명이나 추천을 해서 기억하고 있었는데, 기차 타고 내려가는 길 읽기 딱이겠구나 싶어서 샀다.
기차에 타서 첫 장을 열었을 때, 마법 같은 문장이 있었다. 이걸 읽은 순간 이미 어느 정도 내 마음의 방향은 정해져 버렸다.
부모님께 빠르면 9월 추석 정도 퇴사할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이미 올해 초부터 개업하고 싶다는 말을 하기 시작했어서 놀라지는 않으셨다. '네가 원하는 대로 해라'라고 하면서도 2월 말까지는 다니길 은근히 바라는 눈치였다. 그런데 부모님이 '2월 말은 어떠냐'는 말을 꺼내자, 내 안에 갑자기 불꽃이 튀면서 하루라도 어릴 때 도전하는 게 맞지 않냐고 구구절절 어느새 부모님을 설득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나는 예전처럼 회사 일에 몰입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미 새로운 일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나의 이런 모습이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이미 마음속으로 '퇴사하고 파리 한달살이 하고 싶다'라고 생각하면서, 자기 전마다 파리 에어비앤비를 들락날락하고 있었다. 그래도 휴가 기간 쉬다 보면 2월 말까지는 일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 수도 있으니까 꾸역꾸역 마음을 누르고 있었을 뿐이었다. 휴가를 보내는 동안에도 이 마음은 사라지지가 않았다.
나는 이런저런 이유들을 들어서 9월 추석 정도에는 퇴사하는 것이 '아주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고 부모님께 말씀드렸고, 부모님도 두 손 두 발을 들었다. 사실 부모님만 앞에 앉혀 놓았을 뿐, 내가 설득한 대상은 부모님이 아니라 '내 안의 불안'이었다.
나 자신과의 씨름 끝에,
휴가 마지막 날인 목요일 아침, 나는 9월 추석 무렵 퇴사하기로 결정했다.
남은 것은 회사에 어떻게 말을 하느냐였다. 내가 퇴사를 말씀드려야 하는 분, 바로 우리 그룹장님은 쓴소리를 직설적으로 하는 분이어서 회사에서 꽤나 무섭기로 유명하다. 퇴사를 한다고 하면 곧바로 한 소리 듣지는 않을지 조마조마했다.
휴가 마지막날인 지난주 목요일 오후, 그룹장님께 바로 면담 요청 메일을 보내기에 앞서 일단 그룹장님의 담당 비서님께 메일을 보냈다.
"00 팀장님께, 그룹장님과 면담을 내일 ~ 다음 주 중에 하고자 합니다. 그룹장님 휴정기 휴가 기간이 언제부터 언제까지인지 확인 부탁드립니다."
비서님들은 대개 메일 회신이 굉장히 빠른데 2시간이 지나도록 회신이 없었다. 그리고 2시간 후, "내일 오전 9시에 내부회의 예약했습니다."는 회신과 함께 회의실 예약 알림이 왔다. 퇴사 통보가 24시간 내로 정해졌다.
금요일 아침 9시 그룹장님과의 면담 시간, 무슨 일로 면담을 잡았냐는 그룹장님의 말에 "퇴사하기로 결심했습니다. 퇴사하겠습니다."라고 곧바로 대답했다. 퇴사하고 '싶습니다'라는 말보다 더 굳은 의지를 담고 싶어서 고르고 고른 문장이었다.
잠깐의 정적 후에, 그룹장님이 "이직할 곳이 정해진 건가?"라고 물으셨다.
"아니요, 이직이 아니고, 내년 1월에 개업하려고 합니다. 그전까지는 사람들 만나고 여행도 다니면서 쉬고, 개업 준비할 생각입니다."라고 답했다. 이 역시 전날 밤 고르고 고른 말이다.
그 이후부터는 준비된 답변이 아니라, 그룹장님이 물어보는 이런저런 질문들에 그때그때 대답했다. 같이 개업할 사람은 정해진 건지("아니오."), 개업할 사람은 찾는 중인지("몇 사람 만나보면서, 개업 이야기는 해보고 있습니다."), 휴가기간에 본가를 갔다던데 부모님과 이야기하고 온 건지("예전부터 개업에 관하여는 말씀드려 왔고, 제가 원하는 대로 하라고 하셨습니다.").
어느 정도 사태 파악이 되자, 그룹장님은 "설득의 여지는 있나?"라고 물어보셨다. "오래전부터 고민해 왔습니다. 제가 미혼에 아이도 없는 지금 더 늦기 전에 도전하고 싶습니다."라고 답변했다.
잠깐의 침묵 이후 그룹장님은 "조금 질투가 나네, 젊을 때 무언가 하고 싶은 게 있어서 도전한다는 게. 이 나이 먹으면 뭔가를 하기가 어려워."라고 말문을 열었다. "나가서 더 큰 사람이 돼라"는 덕담까지 해주셨다. 그룹장님께 한 소리 듣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들어갔는데, 따뜻한 말과 조언에 뭉클했다.
문을 닫고 나오니, 대략 20분 정도 지나 있었다. 지난 몇 개월을 상상해 오던 순간인데, 퇴사 통보의 순간은 찰나였다. 그로부터 약 15분 후에 시니어 변호사님들로부터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방금 전 우리 그룹 시니어들을 대상으로 내가 퇴사 통보했다는 내용의 내부 공지 메일이 돌았다고 했다.
퇴사 통보를 한 당일 금요일부터, 나의 퇴사 소식을 들은 주니어, 시니어 변호사님들이 하나둘씩 전화를 하고 집무실에 찾아왔다.
평소 내가 개업에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몇몇 동기들 외에는 말하지 않았다. 선후배 변호사님들 모두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며 놀라는 반응이었다. 사실 동기들도 그냥 해보는 소리인 줄 알았다고 했다. 올 초부터 고민해 오던 것이라고 설명해 주자, '결국 잘할 거다'라면서 응원해 줬다. 그 마음이 모두 진심인 것이 느껴져서 '내가 지난 3년 가까이 이 회사에서 열심히 잘 해왔구나' 싶어 뿌듯했다. 한편에는 내가 아직 회사에 대한 마음이 있을 때 나가서, 그래도 이런 좋은 이별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많은 변호사님들이 '참 용기 있는 선택'이라고 말했다. 물론 용기를 낸 건 맞지만, 내 생각보다도 더 많은 분들이 정-말 용기 있다고 놀라워했다. '아니, 이게 그 정도 일인가?' 싶어서 도리어 덜컥 겁이 나고는 한다. 그럴 것이, 로펌에서 받는 만큼의 월급을 내가 개업변호사로는 벌지 못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꼬박꼬박 월급을 받는 사람이 더 이상 아니니까 불안정할 것이다.
고민이 많은 나에게 친구가 해준 조언이 있다. 스스로를 잘 못 믿겠을 때는, 본인을 믿는 주변 사람들을 믿어보라는 것이었다. 나는 잘할 거라는 친구들의 말, 선배, 후배 변호사님들의 말을 믿어야지. 너무 걱정하지 말아야겠다.
퇴사 후의 계획은 정해진 건 없었다. 어떤 방식으로든 올해의 남은 시간을 오롯이 나를 위해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개업을 서두르고 싶지 않았다. 내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서두르다 보면 어느새 선로 위의 경주마처럼 남들이 보기에 좋은 것들을 다시 성실히 따라가고 있을까봐 두려웠다. 이 분주하고 말 많은 서울을 떠나 잠시 혼자 있고 싶었다. 하지만 10월 중순까지는 나의 두 번째 연극 준비로 인해서 어딘가를 갈 수는 없었다. 고민도 잠시, 마지막 공연 다음날 가장 빠른 비행기로 해외로 나가기로 생각했다. 구체적인 건 그때 가서 생각하자. 퇴사가 확정된 직후, 어떠한 계획도 없이 일단 파리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프랑스 외의 다른 곳은 떠오르지 않았다. 8년 전 교환학생이 끝나고, 프랑스(파리, 니스, 마르세유)를 비롯한 유럽여행을 한 적이 있다. 특히 파리에서 머무르는 내내 몸이 좋지 않아서 제대로 미술관도 들어가 보지 못한(심지어 루브로도!) 아쉬움이 있었다. 그때의 나는 지금처럼 방황하고 있었고, 지금보다도 더 대책이 없었다. 프랑스, 파리를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간 김에 남프랑스까지. 쫓기듯이 여행하고 싶지 않았다. 기왕 가는 것, 길게 가기로 했다.
내 앞에 한달 반의 프랑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 브런치북 연재 1화는 기존 글을 재구성했습니다. 다음 화부터는 기존 글이 아닌 새로운 글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