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깝고 또 아쉬운 마음으로 애틋한
퇴사는 생각보다 바쁜 일이었다. 얼추 끝나가던 사건들은 내 선에서 마무리해야 하기에 꽤나 미리 서면을 작성해야 하고, 한창 진행 중인 사건들은 새로운 주니어* 변호사가 곧바로 수행하기 어려우니 내 선에서 퇴사직전 마지막까지 붙잡고 있게 되었다. 이 와중에 선후배, 동기 변호사님들과 송별 식사는 점심과 저녁으로 이어지니, 나머지 시간에 일을 하는 것이 꽤나 빠듯했다.
로펌 변호사는 크게 (i) 주니어 혹은 어쏘 (ii) 시니어 혹은 파트너 변호사로 나뉜다. 주니어 변호사 8~10년 차 정도에 시니어 변호사로 승급하는 구조다.
퇴사를 앞둔 시점에, 퇴사 외에 또 다른 과업이 하나 더 있었다. 그것은 바로 퇴사일 2주 후 예정된 연극이다. 연극은 나의 퇴사 결정에 큰 영향을 주었다. 마치 영화 <인셉션> 마냥 내 안에 퇴사 씨앗을 심고 무럭무럭 자라나게 했다.
나는 작년 여름부터 취미로 연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친한 선배들과 재즈 공연을 본 어느 날, 한 선배가 춤 배우기에 푹 빠졌다고 이야기했다. 부러움을 느꼈다. 그 당시 나는 공허함과 싸우고 있었다. 오랜 공부 끝에 좋은 로펌에 잘 적응하기까지 나름 많은 것을 잘 해냈다 싶으면서도, 정작 '나'는 채워지지 않았다. 열심히 살아왔지만 방향을 잃은 느낌이었다. 아니, 내가 어디로 가고 싶은지도 모른 채 사람들이 뛰어가는 곳으로 무작정 따라간 것 같았다.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해서 제대로 답할 수 없었다. 그런 나에게 자기가 좋아하는 취미를 가진 선배의 이야기는 꽤나 부러운 것이었다.
그날 밤 집에 돌아와 재즈공연과 함께 한 술에 알딸딸하게 취한 상태로 인터넷검색을 시작했다. 나도 알록달록한 취미를 하나 가져보자는 마음이 들었다. 뭐라도 해보자. 조금이라도 달라져보자. 나는 한때 영화 제작이나 PD 진로에 관심이 있었다. 자연스럽게 취미연기를 검색했다. '나를 찾아가는 연기'라는 모토를 가진 취미연기클래스를 발견했다. 딱이었다. 재즈 공연과 달달한 술의 여운을 빌려서 곧바로 그다음 달에 열리는 클래스를 결제해 버렸다.
연기는 내 생각보다 나랑 잘 맞았다. 생각보다 나를 표현하는 것 그자체가 굉장히 즐거웠다. 연기를 하다 보면 가끔 부끄러운 순간들도 있었다. 나 방금 오버했나? 하면서 귀가 빨개지기도 하는데, 그 부끄러운 순간에도 선생님과 동료들은 '괜찮아요, 더 해도 돼'라는 눈으로 바라봐주었다. 그 과정을 수개월 거치다 보니 '여기서는 내가 어떻게 해도 괜찮구나'라는 마음이 들었다. '조금 부끄러우면 어때, 그냥 부끄러운 거지 뭐. 이상할 것 없어' 이런 마음. 오랫동안 스스로 검열하며 살아온 나에게 이건 정말 큰 한걸음이었다. 수용받고, 또 스스로를 수용하는 일.
연극을 하면서, 고등학교, 대학교, 로스쿨, 로펌을 거치면서 정말 좁아진 나의 우물 밖의 세상을 만났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순수하게 좇는 마음과 열정들은, 그게 취미이건 업이건 상관없이, 인상깊었다. 남보기 그럴듯하게 사는 것보다는, 그만 스스로 검열하고 솔직하게 살고 싶다는 마음이 점점 커졌다.
나는 주 1회 연기 수업을 받으러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꾸준히 연기 수업을 듣다 보니 지난 2월에는 소극장에서 첫 공연 <안네의 일기>를 올렸다. 그리고 공연을 마치고, 나는 울었다. 온전히 '나답게 살아있다'라고 느꼈다. 뭘해도 채워지지 않고, 어떻게 채워야할지 몰랐던 내가 어느새 채워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을 마치고서 함께 공연한 사람들 앞에서 '저 조만간 퇴사를 해야 할 것 같아요'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수개월 지나지 않아 두 번째 연극을 준비하기 시작했고, 두 번째 연극을 준비한 지 한 달째 되던 8월경 회사에 퇴사 통보를 했다.
연극 일정이 퇴사 2주 후로 잡혔고, 파리행 비행기표는 연극 바로 다음 날로 잡았다. 퇴사부터 여행까지 2주 정도의 시간이 있었다. 꼼꼼하게 여행 계획을 세울 시간은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연극 준비가 코앞에 다가오자 대본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이번 연극은 나에게 조금 더 특별했다. <바다와 양산>은 일본 소도시에 사는 요지, 나오코 부부를 중심으로 그들과 그 이웃들의 이야기를 잔잔하게 담아내는 장막극이다. 내 역할은, 병에 걸렸지만 밝은 아내 '나오코'다. 첫 연극 <안네의 일기>에 비해서 비중이 많이 커졌고, 나오코는 나와 결이 잘 맞았다. 딱 맞는 배역을 연기할 기회를 가지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어쩌면 나오코는 내 인생 배역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해내고 싶었다.
이 연기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 중에 하나가 시선이었다.
나오코는 왜 그렇게 집에 사람들만 오면 좋아할까, 공원에서 마주친 귀여운 아이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눈물이 나온 이유는 뭘까, 나오코가 집에 약을 전해 주러 온 간호사 '미나미다'에게 계속 식사를 권하고 앞으로도 자주 놀러 오라고 말하는 마음은, 나오코가 죽기 전 남편의 외도를 눈치채고 한바탕 소동 후 가고 싶었던 바다에 가지 못하게 되었을 때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그러던 중 마당 위에 무지개를 발견한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나오코가 다시 집에 돌아온 요지에게 "나 지금 무지개 안에 있어요. 안 보여요? 그럼 당신도 무지개 안에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안 보이는 거예요. (사이) 저기, 나 잊으면 안 돼요. (웃음)"라고 말할 때 그 마음은 뭘까, 나오코는 이 못난 남편 '요지'를 어떤 마음으로 품어주는 걸까. 그 마음이 이해가 되어야 어떤 눈, 시선을 가져야 할지 알 수 있었다. 나오코가 가진 어떤 이야기들이 나오코의 시선을 만드는 걸까.
결국 죽음을 앞둔 사람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관한 것이었다. 연극 선생님이자 연출님의 설명을 들어도 이 부분이 처음에는 잘 와닿지 않았다. 대략 흉내는 냈지만 그 마음을 깊이 알 수 없었다. 그러다가 퇴사를 하면서, 예전처럼은 만나기 어려울 사람들을 만나면서 어렴풋이 느꼈다. 평소에 흘려버렸던 눈인사, 점심 식사, 수다, 산책, 회의 모두 정말 생생하게 느껴졌다. 어떤 대화는 녹음기를 켜두고 두고두고 남겨두고 싶었다. 퇴사를 기다리면서, 회사에서의 이런 날들이 하루하루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 내심 아쉬웠다. 이 마음이 새삼스러워서 어색할 정도였다. 이 작은 이벤트에도 이런 마음이 드는데,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나오코에게 마당 위 무지개는 마치 처음이자 마지막 같은 반짝거리는 순간이겠지.
가수 김광석이 어느 프로그램에서 쓴 표현을 빌리자면, '아깝고 또 아쉬운 마음으로 애틋한' 마음이었다. 그 시선을 가지고 연기할 수 있게 되자, 연극 무대가 드디어 정말 즐거웠다. 이 사람들과 함께 하는 순간들이 아깝고 아쉽고 애틋했다. 내가 나오코를 연기하고 있다는 사실, 아니 그보다도 우리들이 이렇게 만나 함께 연극하고 있다는 사실에 행복했다. 우리들 모두 같은 마음으로 서로를 믿고 의지하면서 만들어 내는 순간들이 순간 순간 즐거웠다.
지난 연극에서 '수용'을 배웠다면, 이번 연극에서 내가 배운 건 '시선'이다.
매 순간을 아깝고 또 아쉬운 마음으로 애틋하게 살아가야지. 나의 프랑스도, 귀국 후의 앞으로의 삶도 그랬으면. 매일매일 이 마음과 시선은 무뎌지려 하겠지만, 그럼에도 나오코처럼 부단히 노력하는 마음, 시선을 가져야지.
나는 다시 무뎌지고 싶지 않다.
P.S. 3일간의 연극을 마치고, 마지막날 새벽까지 뒤풀이를 했다. 술자리가 길어질 것에 대비해서 연극하는 틈틈이 집에서 짐을 싸두었다. '10시까지만 있다 갈게', '아 딱 12시까지만 있을게!' 하면서 한 시간 두 시간 미루다 보니 새벽 2시 뒤풀이가 파할 때까지 마셨다. 아침 6시 반부터 7시까지 알람을 맞춰두고 잠들었다. 5시간도 자지 않고 겨우 일어나서 대충 싼 캐리어와 여권을 들고 시간 맞춰 비행기를 탔다. 정신줄과 여권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