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역 메가박스 아트나인에서 영화 "이터널 메모리"를 봤다. 영화는 칠레에서 제작했고 다큐형식이다. "아우구스토"와 25년 나이차가 나는 아내 "파울리나"가 주인공이다. 둘 다 나이를 한참 먹고 20년 열애 끝에 결혼에 이른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 아우구스토는 알츠하이머에 걸린다. 아우구스토 공고라는 칠레의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에 대한 고발 글을 썼던 유명 저널리스트였다.
피노체트는 간단히 칠레의 전두환이다. 내 석사 논문의 주제이기도 하다. "전직 국가원수의 국제범죄에 대한 보편적 관할권과 국가면제에 관한 연구 : 피노체트 사건을 중심으로". 그의 악행은 전두환의 그것을 훨씬 초월할 정도로 광범위하고 악랄했다. 납치, 고문, 살인사주, 테러...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저널리스트 아우구스토 공고라는 피노체트 정권을 기록과 책으로 고발했다. 남편의 숭고한 노력을 기억해 주려는 아내 그리고 그 기억을 잃지 않으려는 남자의 몸부림이 안타깝지만, 알츠하이머로 어쩔 수 없이 기억들은 망각되어 간다.
그러나 영화는 아내 파울리나의 헌신적이고 무조건적인 사랑이 결국 또 다른 기억과 유산을 남겨 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씬이 바로 부인의 손이다. 따스한 손길로 남편의 얼굴을 어루만지고 그의 머리를 감겨주고, 몸을 닦아주는 장면이 반복된다.
아우구스토는 영화 개봉 전 올해 결국 죽었다. 살아생전 그의 글과 책에 대한 기억도 희미해져 갈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영화 이터널 메모리의 탄생으로 두 사람의 이야기는 기억할 만한 유산이 되었고, 강렬히 기억될 수 있게 되었다. 지구 정 반대의 우리나라에서 내가 지금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말이다.
5년 전 2018년 설 연휴 이틀 전날, 나는 야근 중에 뇌출혈로 쓰러졌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8시간 머리를 여는 수술을 받고, 중환자실에서만 2주, 한 달 넘게 병원에 있었다. 영화를 보며 아내의 손길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었다.
-휠체어에 앉은 나를 뒤에서 천천히 밀어주던 손
-누워만 있던 나를 씻겨주고 내 생리현상을 말없이 치워주던 손
-회사로 돌아갈 수 있을까 걱정하던 내게 그만둬도 괜찮다며 내 등을 두드려 주던 손
-머리를 빡빡 민 채 병원 밖 산책을 나가면 두상이 못생겼다며 놀리던 그 손
그때 아내의 그 손이 없었더라면 나는 지금 여기 이렇게 글을 쓸 수 없을지도 모른다.
메멘토 모리. 모든 사람은 죽는다. 우리 인간의 삶은 유한하다. 그래서 우리의 기억은 기억하려는 의도적이고도 지속적인 노력으로 지켜질 수밖에 없다. 기억하지 않으려는 이에게 기억은 의미가 없다. 그래서 시작한 게 소박하지만 이 브런치이기도 하다. 남편과 아빠의 생각을 내 가족들에게 남겨주고 싶었다. 내가 계속해서 글을 쓸 수 밖에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