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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티뷴 Sep 02. 2022

슈퍼 거북 vs 슈퍼 토끼

그림책에 대한 짤막한 생각

아이들이 어릴 때 그림책 읽어주는 것이 좋았다. "사과가 쿵"부터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 그리고 "강아지똥"까지. 지금도 그림책이 좋다. 집 근처 도서관 1층에 어린이 코너가 있다. 꼬마들을 위한 작은 책상과 의자들이 옹기종기 모여있고, 도서관에서는 유일하게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그런 공간이다. 가끔 나는 아이들 틈바구니에서 거기에 웅크리고 앉아 그림책을 본다. 그림책은 아이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어른들을 위한 치유가 될 수도 있다.


우리나라 유설화 작가의 그림책으로 "슈퍼 거북"과 "슈퍼 토끼"가 있다. 익숙한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를 소재로 한 우화를 비틀어 만든 스토리다. 토끼를 앞질러 결승점에 들어온 거북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여기서 그림책은 시작한다.


"동물 사이에서 거북이는 영웅이 된다. 토끼를 이긴 거북이는 분명 재빠를 거라고 온 마을이 기대한다.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거북이는 비장한 표정으로 '빠르게 살자'라고 쓰인 하얀 띠를 머리에 두르고, 빨라 지기 위한 각고의 노력을 한다. 번아웃이 될 때까지 이를 악물고 자신을 몰아붙인다. 이 이야기에서 승리는 좋은 사건일까, 나쁜 사건일까?
반대로 거북이에게 진 토끼가 있다. 내상을 입은 토끼는 달리는 법을 잊어버리기 위해 온갖 훈련을 한다. '달리면 끝장'이라는 띠를 머리에 두르고 가부좌를 틀고 달리지 않기 위한 수련을 한다. 귀가 축 늘어지고 털에 윤기가 사라지고, 배가 나올 때까지 뛰고 싶은 욕망을 옭아매다가 우연히 휩쓸린 달리기 대회에서 전력 질주를 하고 만다. 그리고 깨닫는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자신을 달려야만 하는 존재이며, 앞으로는 타인의 인정과 상관없이 마음껏 달리고 싶다고." 최혜진, '한국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122면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하여 오늘도 우리는 많은 에너지를 쓴다. 인정욕구라고 하는  말이다.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 우화에서는 다들  듯이 거북이가 정말 빨라서 이긴 것이 아니다. 우승후보였던 토끼가 잠들어 버려서, 자만해서였고, 거북이는 포기하지 않고 완주했을 뿐이다. 토끼나 거북이는 똑같이 시상대에 서고 싶어했다. 그곳에는 스포트라이트가  화려하게 비추며, 박수와 환호가 있다. 그곳에 올라서는 순간은 달콤하다. 하지만 우리의 인생에서 시상대의 기억은 순간에 불과하다. 내려오면 지루할  있는 일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유설화의 책에서 다시금 깨닫는다. 클리셰이긴 하지만,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다. 또한 살면서 결과에 관계 없이 꾸준히 밀어붙여보는 체험을 해보는 것이 결국은 내 삶에 도움이 된다. 한편 내 안에 있는 내면의 본성은 무엇인지 스스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본성을 거슬러 사는 것은 때로는 필요할 수도 있으나 많은 경우 후회스러운 결과를 낳는다.


덤으로, 최혜진의 같은 책에서 이수지 작가에 대한 인터뷰가 인상 깊어 소개한다.


"남편이 저를 하루살이 인생이라고 불러요. 계획을 거의 세우지 않고 재미있겠다는 느낌을 쫓아서 현재만 살기 때문이지요. 저는 늘 현재에 관심이 많고, 과거를 후회하거나 미래를 걱정하지 않아요. 어차피 미래를 걱정한다 한들 달라지는 건 없고, 원하는 방향으로 가려면 결국 오늘의 내가 뭔가를 해야 하잖아요. 그렇다면 오늘 마주한 상황에서 가장 최선의 것을 선택하는 데에 에너지를 쓰는 게 낫죠. 저에겐 원대한 계획 대신 순간의 절실함이 있어요. 순간에 온 마음으로 머물다 보면 하루살이처럼 살아도 방향성이 생겨 있을 거라 기대해요. 받을 수 있는 공만 받고 칠 수 있는 공만 친다는 생각으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해요." 책 104면


마지막으로, 내가 재밌게 본 책을 몇 권 더 소개해본다. 참고로, 도서관에 가서 직접 페이지를 넘겨가며 보기를 권하지만, 어렵다면 유투브로 검색해도 볼 수는 있다.


[추천 그림책들] 국내 작가들: 파도야 놀자(이수지), 가드를 올리고(고정순), 시저의 규칙(유준재), 지혜로운 멧돼지가 되기 위한 지침서(권정민), 으리으리한 개집(유설화) / 해외 작가들: 뛰어라 메뚜기(다시마 세이조), 백만 번 산 고양이(사노 요코), 아벨의 성(윌리엄 스타이그), 아나톨의 작은 냄비(이자벨 까리에), 사과나무 위의 죽음 (카트린 셰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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