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잔 케인의 책과 내향적인 사람들에 대한 응원
사진은 장삐쭈의 유투브 영상에서 "안기우기!"하는 영업 4팀 만년 과장이다. 신입 안기욱의 고참 선배이기도 하다. 화통*을 삶아 먹은 듯한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앞뒤 가리지 않고 마구 업무지시하는 그를 보면 배꼽이 빠진다. 그러나 저런 사람하고 실제로 일하는 상상을 해보면…그런 일은 부디 없기를.
*증기기관차의 맨 앞칸을 화통이라고 한다. 석탄을 쉴 새 없이 삽으로 퍼 넣어 증기기관차의 동력을 유지하고 머리로는 우레와 같은 소리로 증기를 내뿜으니, 처음 보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괴기스러웠을 것이다.
미국 로스쿨 다닐 때 길 건너편은 경영대학원이었다. 경영대학원은 든든한 재정 후원자들이 많은 것 같았다. 칙칙한 회색 빛의 로스쿨과는 달리 외관은 눈부신 흰 대리석으로 빛났고 건물이 훨씬 더 크고 웅장했다. 경영대학원 앞에는 너른 잔디밭과 열린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그곳에서는 수시로 이벤트가 열리고 분위기는 활기찼다. 일몰이 다가올 무렵 로스쿨 도서관 밖으로 삐죽 엿보이는 그들은 최신 바이브의 팝 음악에 장단을 맞추며, 맥주를 무제한으로 꺼내 마시면서 삼삼오오 떠드는 모습이었다. 다음날 교수한테 "콜드 콜*"을 당하고, 백 명이 넘는 동료들 앞에서 망신살이 뻗칠까 봐 도서관에 처박혀있던 우리로서는 현타가 오는 순간이 자주 있을 수밖에 없었다.
*cold call: 수업 중 교수가 무작위로 학생을 지정해서 판례의 내용을 물어보는 로스쿨 만의 수업방법을 말한다. 재수 없으면 수업시간 내내 물어본다.
로스쿨에는 변변한 카페조차도 없어서 경영대학원 1층에 있는 카페 겸 식당에서 나 역시 종종 모닝커피나, 점심을 해결했다. 카페에 들어오는 경영대생들의 모습은 걸음걸이도 더 빠르고 당당하며 힘차 보였다. 그들은 눈빛도 확신에 차 보였으며 다들 자기 생각을 앞다투어 떠드느라 바빴다. 로스쿨 학생들이 탁자에 책을 펴놓은 채 허겁지겁 밥을 먹고서는 고개를 수그리고 조용히 갈길만 가는 모습과는 달랐다.
우리는 평소 "외향성"에 대한 선호를 자주 접한다. 세상의 반은 내향적인 사람들(introvert)이고 나머지 반은 외향적인 사람들(extrovert)일 텐데도 말이다. (수잔 케인에 따르면 미국인구의 최소한 3분의 1은 내향적인 사람들이다.) 이 선호의 핵심은 내향적인 사람이라 할지라도 바로 이 “외향성”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인데, 미국에서는 그런 강박이 더욱 심해 보였다. 말을 잘하거나 토론을 잘하는 능력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자질이었고 이를 잘하는 이는 특별히 환영받았다. 미국은 또한 긍정을 강요하는 사회였다. 슬퍼하는 모습을 남에게 보여주어서는 안되었다. “오늘 어때?”하는 의례적인 질문에 모두가 “더할 나위 없이 좋다.”고 밝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처세술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데일 카네기"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호감을 살 수 있게 말을 할 수 있는 가에 대하여 오래전에 설파한 바 있는데 지금도 많은 이들이 그의 책을 찾아본다. MBA 스쿨에서는 외향적인 화법과 카리스마를 리더십의 필수 자질이라고 가르친다. 내가 목도한 경영대생들도 말했둣이 다르지 않았다. MBA 학생들이 모두 외향적일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그들은 학교와 사회가 요구하는 롤 모델에 가까워지고자 애쓰고 있는 것이었다.
로스쿨도 법정에 나서기 좋아하고 말 잘하는 변호사를 선호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로스쿨 졸업시험 중의 하나가 공판실무(trial technique)였다. 졸업을 앞두고 일주일 간 집중적으로 진행된다. 간단히 말해 졸업을 앞둔 학생들이 원고나 피고의 변호사가 되어 모의재판을 이끌어가는 시험이다. 실제 실무에서 일하는 미국 전역의 판검사들이 와서 가르치고 동시에 참관한다. 시험 당일은 대학교 근처의 고등학생들이 스쿨버스를 타고 와서 배심원으로 앉아있는다. 각자 변호사가 되어 학생들 앞에서 구두변론을 하는 것이다. 내가 얼마나 잘하느냐에 따라 유무죄 평결이 달라진다. 말 잘하는 미국 친구들이 로스쿨에 널렸는데, 유학생이 변호사가 되어 몇십분을 떠든다는 것은 정말이지 쉽지 않았다. 생각나는 친구가 있다. 중국에서 유학온 여학생이었다. "펭"이라는 젊고 똘똘하게 생긴 그 여학생은 내향적 기질의 소유자임이 한눈에 보였다. 눈 마주치는 것도 힘들어했다. 그래도 같은 동양인이자 자기보다 더 버벅대는 나를 만나서 안심이 되는 모양이었다. 나에게는 편안한 웃음을 보였고 나 역시 그녀를 살갑게 대해주었다. 베이징대를 나왔다는 그녀는 시험을 통과하기 위하여 매번 심호흡을 가다듬으며 최선을 다했다. 그랬던 펭이 정작 시험이 열리는 마지막날 안보였다. 나중에 알고보니 구급차에 실려갔다고 했다. 시험을 앞두고 갑자기 호흡곤란이 왔던 것이다. 그녀가 겪었을 심리적 압박감이 얼마나 컸을까에 생각이 미치니 너무나 안쓰러웠다.
수잔 케인(Susan Cain)의 신간 "비터 스위트(Bitter Sweet)"와 "콰이어트(Quiet)"를 읽고 있다. 수잔 케인은 유태인으로 엄격한 가정환경에서 자랐다. 내향적인 성격이었으나 공부는 매우 잘했다. 그녀는 명문 프린스턴 학부를 졸업하고, 하버드 로스쿨에 진학하여 뉴욕 월 가의 변호사가 된다. 그러다 변호사는 정말이지 자신과 안 맞는 직업이라는 점을 깨닫고 전문 작가로서 변신한다. 그녀의 히트작이 콰이어트이고 비터 스위트는 신간이다. 비터 스위트를 읽다 보니, 콰이어트를 먼저 읽어야겠다 싶었다. 인간의 내향성과 외향성에 대한 탐구, 그중에서도 내향성의 힘이 콰이어트의 메인 주제다.
외향적인 사람들의 특징은 자신감 있고, 지배하려 들고, 사람들과 함께 있기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생각나는 대로 말해버린다. 듣기보다는 말하기를 좋아하고, 결코 말하려고 하지 않은 얘기까지 불쑥 내뱉어버릴 때가 있다. 갈등은 괜찮지만 고독은 힘들어한다. (콰이어트 32면)
왠지 작금의 정치상황이 겹쳐지는 대목이다. ‘그분’에 대하여 검색해봤더니, 스스로 본인의 MBTI 유형을 밝혀놓았다. ENFJ였다. 여기서 E는 바로 Extrovert, 외향성을 뜻한다.
마크 저커버그와 일론 머스크 이전에 "잭 웰치(Jack Welch)"라는 경영자가 있었다. 그도 외향적인 경영자였다. GE의 회장이었던 그의 책들은 한동안 경영학계에서 필독서였다. 그의 경영은 카리스마와 가차 없음을 기반으로 한다. 단기성과 주의자로서 정리해고로도 악명이 높았다. 모든 임직원을 성과로 줄을 세워 하위 10퍼센트는 정기적으로 해고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칼럼에서 내향적인 이들에게 "내면의 외향성을 발산하라"고도 충고했다. 그랬던 GE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자 속절없이 무너져 버린다.
외향성만이 롤 모델인 세상, 그래서 자기주장과 사교성만이 중요한 가치로 인정받고 목소리 큰 사람이 승리자가 되는 공동체나 사회는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내향적인 사람과 외향적인 사람은 외부 자극에 대한 반응의 정도가 다르다. 내향적인 사람은 훨씬 적은 자극 그러니까 가까운 친구와 와인을 한잔 홀짝이거나, 가로세로 낱말 맞추기를 풀거나, 책을 읽는 수준에 만족한다. 그들에게는 수많은 사람들 앞에 서는 것 자체가 공포이지만 동시에 섬세하고, 풍성한 내면세계를 지니고 있다. 자기 자신에 대한 탐구에도 열정적이다. 그들은 사색적이기도 하고, 진지하고, 수수하며, 혼자 있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외향적인 사람들은 원기 왕성하고, 말이 많고, 사교적이며, 사람을 좋아하고, 흥분을 잘하며, 지배적이고 얼굴이 두껍고, 느긋하면서도 대담하고, 스포트라이트 앞에서도 편안하다. (콰이어트 412면)
세상은 두 가지 유형의 하모니를 필요로 한다. 나와 내 아내만 봐도 그렇다. 우리의 유형은 다르다. 나는 외향적이지만, 아내는 내향적이다. 그것도 각자 기질의 스펙트럼 끝단에 있다. 연애할 때는 그 다름에 이끌려 사랑을 불태웠지만, 아이들을 낳고 키우며 오랜 시간 지내오면서부터는 대화하는 법을 종종 잊어버렸다. 다투는 일도, 서로에 대하여 실망하는 일도 많아졌다. 그리고 연이어 닥친 사건사고와 질병을 통해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상대방의 다름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면서, 경청해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사실 내향적인 아내는 늘 경청할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 같다. 그러지 못했던 내가 바뀔 차례였다. 나는 목소리만 컸지 나 자신이 문제의 원인이며 나도 틀릴 수 있다는 점을 이제는 인정한다. 그리고 최대한 빨리 사과하고 다음 날을 맞이하려고 애쓰는 편이다.
나는 우리 공동체를 더 살만한 곳으로 만들어주는 이들이 누구인지에 대하여 잠시 생각해본다. 일견 화려한 불꽃놀이를 벌이거나 내가 밖에 나가 무얼 하고 왔다고 말의 성찬을 늘어놓는 이들이 먼저 주목과 환호를 받아왔다. 그러나 오늘도 누군가는 밤하늘의 별을 홀로 하루 종일 바라본다. 하루 이틀된 것이 아니다. 또다른 누군가는 깜깜한 밤바다에 말없이 나가 오징어 잡이 배에 올라탄다. 나는 그러지 못한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 없으면 안된다는 점 그리고 내향적인 기질이 대다수일 그들이 마침내 다양성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환하게 밝혀준다는 것을 안다. 마지막으로, 내향성의 전형인 내 아내, 섬세하고 창의적인 그녀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