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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티뷴 Oct 17. 2022

반 시게루, 톰 메인 그리고 자하 하디드

책 "건축가, 프리츠커상 수상자들의 작품과 말"

건축계에도 노벨상이 있다. 바로 프리츠커상(Pritzker Architectural Prize)이다. 1979년 하얏트호텔의 회장 제이 프리츠커(Jay A. Pritzker) 부부가 제정하였고, 프리츠커 가문이 세운 하얏트재단(Hyatt Foundation)이 운영한다. 특정한 건축물이 아니라 해당 건축가의 건축세계를 평가하는 상으로서 국제적으로 권위를 인정받아 흔히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린다. 수상자도 문자 그대로 Recipient라고 하지 않고 노벨상 수상자와 같은 Laureate라고 한다. 궁금한 이는 다음의 공식 웹사이트를 참고하시기 바란다.  https://www.pritzkerprize.com/


그간 일본 출신 건축가들은 심심치 않게 상을 받았으나, 아직까지 우리나라 건축가들의 수상은 없다.


책과의 만남은 우연이었다. 자동차를 고치러 성수동 현대차 센터를 방문한 적이 있다. 제네시스 라운지를 안내받았는데 항공사 비즈니스 라운지와 비슷하게 꾸며 놓았다. 제법 널찍한 공간에서 커피 한잔 하며 느긋하게 기다릴 수 있게 꾸며놓았는데, 한쪽에는 인문학이나 예술과 관련된 책들이 수십 권 진열되어 있었다. 여기서 눈이 간 책이 바로 이 "건축가, 프리츠커상 수상자들의 작품과 말"이었다. 40년 전통을 자랑하는 프리츠커상 수상자들의 건축물과 그들의 생각이 담겨있다. 책은 컬러 양장판으로 책의 사이즈도 크고 두께도 460 페이지가 넘는다. 정가 45천원. 휴대하면서 볼 만한 책은 아니다.


프리츠커상 발표가 있으면 우리나라는 왜 한국인 수상자가 없냐는 구태의연한 기사들이 쏟아진다. 나라의 수도에 한강과 같은 너른 강은 세계 어디를 다녀봐도 흔치 않다. 그런데 한강변의 스카이라인은 어떤가? 근사한가? 아파트 공화국에, 건축물의 진정한 아름다음과 쓸모보다는 부동산 투자가치와 공시지가에 목매는 나라에서 과한 기대 아닌가 싶다.


책은 컬러 양장본이다 보니, 건축가를 잘 모르더라도 여러 모던한 건축물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눈이 호강하는 것이다. 일본인 건축가 "반 시게루" 편이 인상적이었다. 시게루는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에 지진이 일어난 후 폐허가 된 곳에  임시 성당을 지었다. 특이하게도 지역에서 조달할 수 있는 종이튜브를 사용하여 지었다. 그리고 이 성당은 뉴질랜드 재건의 상징이 되었다. 성당이 문을 연 이후 종교행사 외에 음악회와 디너파티가 열리는 지역사회의 집회 장소가 되기도 하는 등 쓰임을 확장하고 있는 중이다.



시게루는 재난 구조물에 관심이 많고 유독 많이 지은 편이다. 일본 지진 이후 오나가와 임시 컨테이너 주택과 커뮤니티 센터를 지었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영구적으로 살고 싶어 한다는 말을 듣고 반 시게루는 매우 행복했다고 한다. 특히나 "건축가의 일은 건물을 짓는 것이겠지만, 결국 진정으로 가치 있는 일은 사람들을 돌보는 일이라고 믿는다."는 그의 말에 공감한다.


"톰 메인"의 건축도 인상적이다. 내가 미국에서 법률을 공부했다 보니 더욱 눈이 간다. 그의 주요 프로젝트로는 미국 웨인 L 모스 법원 건물이 있다. 미국 유진이라는 도시에 있는 이 법원 건물이 너무나 근사하다.


법원은 강철 띠를 두르고 있다. 단단한 외관에서 법원이라는 정체성을 감추지 않는다. 꼭대기의 쌀짝 튀어나온 구조물에서 휘날리는 깃발이 느껴지기도 한다. 동시에 곳곳에서 곡선미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유머나 역동성이 엿보이는 건축물이다. 판결을 내림에 있어 고리타분하지만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만 같다. 우리들 중 법원이나 검찰에 방문할 때 즐거운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올려다보면 숨 막히면서도 위압적인 분위기의 우리나라 법원과는 많이 다르다.  


책장을 넘기며 드는 생각은 수십 명의 건축가들이 지은 제각각의 건축물을 만나게 되는데 주변의 공간과 부조화스러운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분명 있다. 2007년인가 동대문야구장을 헐고 지금의 동대문디자인플라자를 설계하기 위한 공모를 했다. 그때 "자하 하디드"의 당선에 뒷말이 많았다. 그녀는 2004년의 프리츠커상 수상자이다. 출품작이 주변과 전혀 조화룰 이루지 못하는 외계 건축물 같다는 비난이었다. 내가 존경하는 승효상 건축가도 이에 대해 박한 점수를 준 바 있다. 그래도 당시에는 그렇게나 부조화스럽던 건축물이 지금은 나름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고, 또한 서울의 다이내믹한 이미지에도 기여하는 바가 크다. 주변과의 조화를 접어두자면, 수상작들을 보면 어떻게 저런 건축물을 상상했을 까 싶을 정도로 창의적이다. 아울러 빛에 대한 관심은 모든 건축가의 화두로 보인다. 건축의 핵심으로는 구도 재료 색감 양식 등 다양하겠지만 나에게는 빛이라는 생각이 든다. 빛이 들지 않는 건축물은 죽은 건축물일 것이다.


한국에서 프리츠커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으면 어떤가? 다만, 건축물에 있어서 인본주의와 창의성을 넘치게 지켜볼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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