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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티뷴 Nov 30. 2022

아빠와 아들의 2박 3일

곧 중3이 되는 아들은 일 년 사이 키가 많이 컸다. 십몇센티는 자란 것 같다. 일 년 전의 사진과 비교해보면 너무나 달라져 경이롭다. 더이상 가족 여행을 따라다니던 작고 귀여운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그동안 즐겨하던 '마인크래프트'와 '포켓몬 고'는 이제 거의 접었다. 요즘은 '리그 오브 레전드'라는 게임에 빠져있다. 학원을 다녀오는 시간을 빼고는 방에 틀어박혀 게임만 한다. 밥도 컴 앞에 가져다 놓고 먹는다. 월드컵 보러 거실로 나오는 때만 얼굴을 내민다.


아들과 단둘이 조용히 대화를 해 본 지 오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런 적이 없었던 것 아닌가 싶기도 했다. 게임에 너무 빠져있는 것이 걱정이었다. 친구도 만나고 뛰어놀면 좋으련만, 방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다. 학원도 억지로 다니는 것 같은데, 학원을 다 접는 건 어떠냐고 하면 그건 또 싫단다. 무엇보다도 아들은 요즘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오리무중이었다.


"아들, 아빠랑 제주도에 2박 3일 놀러 갔다 올까? 오래간만에 비행기도 타고, 재밌는 놀이도 하고 말이야."


나와는 정반대로 아들은 내향적이다. 생각해보겠다고 하더니 그날 밤 카톡이 왔다.


"가기 싫어. 그래도 하룻밤만 자는 거면 생각해볼게."


그래, 같이 가주는 게 어디냐. 아들이 좋아할 만한 일정을 만들었다. 카트 라이딩, 서바이벌 게임, 컴퓨터 게임 박물관, 고기위주의 메뉴...살살 꼬드겨 2박3일의 일정을 만들었다. 내가 고집한 건 딱 하나, 회를 싫어하는 아들이지만 대방어 먹어보기였다. 국토 최남단 제주 모슬포 방어축제가 막 시작했다. 대방어의 기름지고 고소한 맛을 보여주고 싶었다.

상대편으로 조우한 부자 (레이저 서바이벌 게임장)

이번 여행은 몇 년 전 회사 선배가 퇴직을 하면서 게시판에 올린 고별 글이 문득 생각나 기획한 것이기도 했다. 이혼 후 아들과 떨어져 혼자 사는 선배였다. 그의 고백은 대략 이랬다.

선배는 마지막 출근날 아침 지하철역에서 어느 부자와 마주쳤다. 아빠는 맹인이었다. 책가방을 맨 아들은 초등학교에 다닐 정도의 체구였다. 아들 손에 이끌려 아빠는 천천히 지하철 역사를 내려왔고, 개찰구 앞까지 왔다. 개찰구를 통과하여 아빠 혼자 들어가자 둘은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아빠는 지팡이를 짚고 지하철을 타러 마저 내려갔고, 아들은 걱정스런 눈빛으로 한참 동안 아빠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아빠는 아들이 그러는지 몰랐을 것이다. 멈춰 뒤돌아 서봐야 아들이 보이지 않을테니까. 아들은 아빠가 사라지고 나서야 왔던 길로 터벅터벅 걸음을 옮겼다.
순간 선배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터져나온 울음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헤어진 아들은 장성한 지 오래였다. 녀석이 잘 지내는지, 사고를 치지는 않는지, 연락 뜸한 무심한 아들을 자기만 걱정한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그날 아침 맹인 부자의 모습은 지금껏 생각지 못한 지점으로 안내했다. 내 아들도 '혼자 사는 아빠는 잘 지내고 있을까?' 하는 염려를 했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맹인 부자와 아침부터 울고 있는 수트차림의 직장인. 출근 시간 지하철 역사에서 벌어진 낯선 두 장면이었을 것이다.


나는 몇 해 전 병원 신세를 오래졌다. 맹인의 아들 또래였을 당시의 내 아들을 생각해본다. 병원에 들어가 한 달이 지나도록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아빠였다. 극히 불안했을 것이다. 아들은 내성적인 만큼 속내를 얘기하지 않지만 심성은 참으로 곱다. 예전의 아빠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소망했을 것이다. 가족들 모두가 아빠에게만 시선이 가 있었을 그때 그리고 그 이후의 시간동안, 힘들어했을 아들을 위로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미처 이 생각을 못했다. 미안했다.  

모슬포 방어식당 돈방석. 아들도 마른김에 밥과 방어, 절인 야채를 올려 쉬지 않고 먹었다. 클리어!

아들과 렌트카 안에서 그리고 숙소에서 별것 아닌 소소한 대화를 나눴다. 아들과 카트 라이딩도 하고 서바이벌 게임에서 총싸움도 했다. 아들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속마음도 살짝 내비쳐주었다. 아들과의 대화를 이곳에 공개할 생각은 없다. 그것은 우리 부자들만의 비밀일테니까.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을 좋아한다. 말 그대로 흐르는 강물처럼 살고 싶기도 하지만, 두 아들의 아버지로 나오는 맥클레인 목사의 대사가 늘 기억에 남는다. 둘째 아들 브래드 피트가 죽고 난 후 였다.


우리는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완벽하게 사랑할 수 있습니다.


아들을 위해 준비한 여행이라고 생각했는데, 되려 아들의 아빠에 대한 사랑과 믿음을 느끼게 된 감사한 여행이었다. 아들! 내 아들로 태어나줘 고맙다.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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