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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티뷴 Jul 21. 2022

공짜 커피와 공짜 밥

카페 소스페소( cafe sospeso)와 성남 안나의 집

넷플릭스에서 "커피"를 검색하면 나오는 다큐가 하나 있다. "카페 소스페소, 모두를 위한 커피"다. "소스페소(sospeso)"는 이태리어인데, 영어로는 "suspended"로 번역되니, 카페 소스페소는 "(다음 사람을 위해) 보류된 커피" 정도로 옮길 수 있겠다. 카페를 찾은 손님은 바리스타에게,


"소스페소!"라고 주문하며, 커피 두 잔 값을 결제한다. 첫 잔은 그 자리에서 자기가 마시고, 나머지 한잔은 커피 사 먹을 돈이 없는 누군가에게 주라고 맡긴다. 따라서 나머지 한잔은 누가 마시게 될지는 모르는 기부가 된다. 


소스페소가 이태리 나폴리에서 기원한 커피이다 보니, 현지에 다녀온 이야기로 시작해본다. 2016년 여름이다. 가족여행을 3주간 다녀오기로 했다. 행선지가 문제였다. 


"이태리를 다녀오면 다른 나라는 시시해져. 그러니 이태리는 천천히 가."

지인이 말하길, 'save the best fot the last'하라는 조언이었다.


그러나 가족들 생각은 반대였다.

'길게 가는 가족 여행,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 일지도 모르는 데...'

'아끼다 똥 된다.'


결국 의외로 쉽게 이태리로 정해졌다. 다녀와보니 지인의 말이 이해가 되고도 남을 만큼 매력적인 나라였다. 여유로운 일정인 만큼 차를 렌트해서 반도를 남북으로 종단하기로 했다. 참고로, 이태리는 큰 차를 렌트하면 낭패다. 길이 좁기 때문이다. 우리는 로마 공항에 도착해 아담한 A3를 빌려 남으로 향했다. 우리 가족은 말로만 듣던 남부 이태리의 여름 햇살과 따뜻한 지중해 바람을 가득 받았다. 햇살은 눈부셨으나 따갑지는 않았고, 바람은 열감이 느껴지긴 했지만 건조했기에 숨 막히지는 않았다. 이어지는 낮은 구릉들과 사이사이 서 있는 키 큰 사이프레스 나무들이 주는 이태리 다운 풍광은 절로 흥겹게 만들었다. 본토의 대중가요인 볼라레(Volare)를 카오디오에 반복 재생시켜 놓고 따라 불렀다. 아이들과 노랫말인 "볼라~레 오오, 칸타~레 오오오오"하며 신나 했다. 


"날아오른다는 볼라레, 노래 부른다는 칸타레"


 이태리 여행에서 이보다 맞춤인 음악은 없을 것이다. 


포지타노의 아말피 해변을 들어보았는지? 지중해를 바라보는 가파른 절벽에 집들이 붙어있는 해안 마을이다. 풍경이 드라마틱하다. 사진을 보면 아하! 할 만한 곳이다. '폼페이 최후의 날'로 유명세를 탄 화산 유적지 폼페이 를 들어봤을 것이다. 두 곳 모두 나폴리를 경유한다. 기운을 내서 더 남쪽으로 달리면 김영하가 쓴 여행 에세이 '오래 준비해 온 대답'의 무대였던 시칠리아가 나온다. 나는 시칠리아까지는 가보지 못했다.




나폴리는 남부의 대표도시이며 세 번째로 큰 도시이다. 나폴리는 이태리가 통일되기 전 가장 부유한 도시였다. 그러나 로마가 새로운 수도가 되면서 쇠락의 길을 걸었다. 그래서 지금의 나폴리는 로마나 베네치아, 피렌체, 밀라노 같은 도시보다는 많이 낙후되어 있다. 이태리는 로마와 그 북부지역을 중심으로 발전한 국가이고 남부는 여전히 경제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남부는 조직범죄로도 악명이 높다. 시칠리아에 '마피아'가 있다면 나폴리에는 '카모라'가 있다. 


하지만 나폴리는 피자가 탄생한 곳이기도 하며, 파파로티가 불러 유명한 "돌아오라 소렌토로"의 소렌토가 지척에 있다. "오 솔레 미오"라든가 "산타 루치아" 또한 19세기 나폴리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이민자들에 의해 전 세계로 퍼졌다. 북부 관광도시 베네치아에 가면 곤돌라 선상에서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노래를 불러주는 경우가 있다. 종종 우리나라 여행객들은 익숙한 이들 노래를 신청한다. 그러나 나폴리가 출생지인 이들 노래를 베네치아에서 부르면 현지인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수 있다. 


'부산갈매기'를 목포 유달산에 가서 부르거나, '목포의 눈물'을 부산 사직구장에서 불러 제끼는 광경을 상상하기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이다.

나폴리 시내

다큐 "카페 소스페소"로 좀 더 들어가 보자. 


영상은 바로 이 나폴리 골목의 허름한 카페가 새벽녘 문을 여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카페 입구에는 소스페소라고 적힌 입간판이 보인다. 잠시 후 지친 표정의 초로의 남자가 카페를 들어와 바리스타와 안부인사를 몇 마디 주고받는다. 노동의 흔적이 역력한 그의 손에는 에스프레소가 한잔 들려있다. 누군가가 맡긴 소스페소 커피를 얻어 마시는 것이다. 선행을 베풀면서 내세우지 않는 것. 그 선행을 누리는 사람도 굳이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는 것. 멋진 연대의식의 소스페소가 기원한 곳이 바로 나폴리인 것이다. 소스페소는 나폴리 지역에 독특한 유산이다. 커피 마시기가 일상의 중요한 일부분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행할 수 없는 빈곤한 이들을 위한 나눔이라는 점에서 나폴리 지역의 경제적 고단함이 관련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여행책 작가인 릭 스티브스(Rick Steves)는 나폴리에 대하여, 


"마치 뭄바이나 카이로처럼, 쇼킹하면서도 동시에 매혹적인(shocking and captivating at the same time) 곳"이며, "서구 유럽에서 리얼리티 여행(reality travel)에 가장 근접한 곳" 이라고 평한다. 


뭄바이에도 가봐서 무슨 의미인지 이해한다. 이들 도시의 첫인상은 불편함이다. 길거리는 지저분하고, 이전의 여행지에서 느끼던 세련됨이나 말끔함과는 거리가 있다. 사람들이 친절해 보이지도 않는다. 그러니 어쩌면 그곳에서의 일정이 서둘러 끝나기를 바라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의아하게도 며칠 지나면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풍경이 싫지 만은 않게 된다. 그러니 시간이 허락한다면, 아니 시간을 내서라도 나폴리에 들르는 것을 추천한다. 활기찬 길거리에서 조개 모양의 빵 스폴리아텔라(sfogliatella)를 베어 물으며 돌아다녀도 좋고, 끌리는 식당에 불쑥 들어가 정통 나폴리 피자를 시켜 먹어도 만족스러울 것이다. 


반짝거리는 것만이 여행의 즐거움을 주는 것은 아닌 것이다. 


카페 소스페소가 한국에 도입될 수도 있을 까? 


안타깝게도 어려워 보인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커피 사랑은 이태리 못지않다. "커피 한잔 하러 가자!" 우리가 얼마나 자주 하며 또 빈번히 듣는 말인가? 남을 도우려는 선한 민족성 또한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의 커피숍은 대개가 프랜차이즈이고 번듯한 인테리어를 자랑한다. 우리는 커피만 마시러 스타벅스를 가지는 않는다. 이런 환경에서 누군가 소스페소 커피를 마시러 카페 문을 여는 풍경은 쉽게 그려지지 않는다. 


반대로 이태리에서 스타벅스를 찾는 건 매우 어렵다. 스타벅스는 밀라노에서 처음 문을 연 것으로 알고 있으며, 관광도시에 드문드문 있다. 몇 년 전 우리가 이태리를 여행할 때도 스타벅스를 굳이 찾지도 않았지만 눈에 띄지도 않았다. 그만큼 골목길의 로컬 카페가 성업 중인 곳이고, 바리스타와 주민들 간 연대감이 강한 곳이 이태리다.


공짜 커피는 아니더라도 공짜 밥을 나누는 이태리 신부가 여기 한국에 있다. 성남시 하대원동에 위치한 "안나의 집" 대표인 "빈첸초 보르도" 신부다. 젊은 시절 가톨릭 사제가 되어 한국에 왔다. 그가 성남에서 노숙인들과 빈자들, 그리고 어르신들에게 무료로 따뜻한 한 끼를 대접한 지 30년이 넘었다. 허름한 건물에서 시작한 그의 선행이 결실을 맺어 안나의 집이라는 번듯한 쉼터가 생겼다. 한국인으로 귀화하고, 김대건의 "김"과 하느님의 종이라는 의미로 "하종"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는 김하종 신부야말로 가난한 사람들의 종이다. 

김하종 안나의 집 신부

나는 얼마 전부터 성남 신흥동 쪽으로 출근하고 있다. 성남의 오래된 구도심이다. 시내는 재개발로 어수선하고, 언덕배기에 여전히 수많은 빌라들이 붙어 있다. 아침마다 접하는 낯선 풍경이 있다.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리어카에 폐지를 가득 싣고 어디론가 향하는 모습 그리고 부쩍 많이 눈에 띄는 전동 휠체어와 이를 탄 어르신들이다. 코로나 확진으로 일주일 간 방에 강제 격리되니 시간이 많이 생겼는데, 그때 조정래의 대하소설 "한강" 전집을 읽었다. 후반부에 "광주대단지" 사건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장소가 지금의 성남이다. 많은 이들이 성남 하면 한국의 실리콘 밸리인 판교와 시끄러웠던 대장동을 먼저 떠올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성남은 또한 참으로 어렵게 사는 이들이 있었던 곳이고 그런 분들이 여전히 떠나지 못하고 많은 곳이기도 하다. 소설 내내 먹고사는 것 자체가 고단했던 시절의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그중에서도 이루 말할 수 없게 가난에 허덕였던 이들이 1960년대 청계천 판자촌에서 성남에 쫓기듯이 이주했던 분들이다. 소설에는 상하수도 시설도 없이 산등성이에 판잣집을 짓고 살기 시작했는데, 지하수가 오염되어 먹을 수가 없었다는 대목이 나온다. 삶의 기본 조건조차 갖추지 못한 형편에서 광주대단지 소요는 일어날 수밖에 없었고, 그제야 정부는 광주군에서 성남시로 승격시키고 기반시설을 정비한다.  


김하종 신부가 대표로 있는 "안나의 집"은 성남 구도심에 있다. 코로나로 모두가 어려운 요즘도 하루 700여 명에게 무료로 밥을 주고 있다. 작년 터키 이스탄불에서는 어떤 독지가가 소스페소 커피를 500잔 기부하여 화제였다. 이에 견주면 김하종 신부는 매일 같이 700잔이 넘는 커피를 기부하고 있는 셈이다. 하루하루 기적을 일으키며 나눔을 실천하는 김하종 신부가 고맙고 또 그를 응원한다. 액수가 부끄럽지만 나는 안나의 집 후원자이기도 하다.


오늘 하루도 커피든 밥이든 Buon Appeti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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