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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티뷴 Jul 05. 2022

단테의 쓸모

임윤찬 피아니스트가 대성할 수밖에 없는 이유

최근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북미의 대표적 경연인 Cliburn 콩쿨에서 우승해 화제였다. 그에게 우승을 안겨준 라흐마니노프 3 연주도 좋았지만 나는 경연 중간 곡으로 연주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 연주의 섬세한 터치가  좋았다. 연주 영상을 22분경부터 들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https://youtu.be/eLDc3KRZBfM

그는 놀랍다. 18 최연소 우승에, 나이를 무색게 하는 테크닉과 깊이. 연주 중의 쇼맨십. 여기에 소셜 계정도 지워버리고 산에 들어가 피아노만 치고 싶다는 구도자적인 면모, 우승했다고 실력이  것은 아니라는 겸손함까지 갖췄다.


하지만 그가 대성하리라 내가 눈여겨보는 점은 따로 있다. 귀국 후 기자 간담회가 열렸는데, 바로 단테(Dante)의 신곡(Divina Commedia)을 하도 많이 읽어서 외울 정도가 되었다는 임윤찬의 고백이다. 임윤찬은 리스트의 "단테 소나타"를 연주하면서 신곡을 읽어야 곡을 소화할 수 있겠다 싶어 시작했는데, 그 이후 탐독하게 되었다고 했다. 고전을 가까이해야 한다는 나의 평소의 생각을 임윤찬이 확인시켜준 것만 같아 반가운 소식이었다.


서점가에 부쩍 "쓸모" 시리즈가 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 당신에게 도움이 되고 직접적인 이익이 될 것이라고 강조하는 세태를 보는 것만 같아 씁쓸하다. 쓸모없는(useless) 것들에 당신의 시간과 돈을 낭비하지 말라고도 들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단테의 쓸모"라고 하기엔 낯간지럽다. 우선 신곡을 읽는다고 당장 나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말하기는 어렵다. 더구나 고전은 접근성이 떨어진다. 난해하면서도 지루한 데다 양까지 많다.


해롤드 블룸(Harold Bloom) 예일대 교수가 있다. 그는 "서구의 고전(Western Canon)"의 저자로도 유명하다. 아...캐논은 대포가 아니다. 서구 문명에 있어 큰 영향을 끼친 고전들을 집대성한 목록을 말한다. 그가 단테의 신곡에 대하여 책에서 어떻게 평가했는지 찾아보았다.


"단테는 비범하게 대담하며(extraordinary audacity), 전통 기독교 문학에서 대적할 자가 없으며(unmatched in the entire tradition of Christian literature), 독자로서는 예술의 한계를 경험하면서도 그 한계가 확장되거나 부서져버리는 것을 발견하게 되고, 단테 자신은 셰익스피어보다도 더 개인적으로, 더 공공연하게 모든 한계를 무너뜨린다. (Dante breaks through all limitations far more personally and overtly than Shakespeare does.)" 참고로 블룸 교수는 평가가 신랄한 분이다.


쓸모가 있을까 싶은 신곡의 영향은 사실 우리 주변에 무수히 많다.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로댕의 지옥의 문, 단숨에 읽어 내려갔던 소설 다빈치 코드와 인페르노, JRR 톨킨의 반지의 제왕, 웹툰 신과 함께, 애니 신세기 에반게리온 등이 신곡이 체계화한 지옥, 연옥, 천국의 모습을 재해석하고 있다.


단테는 시인이며, 신곡은 대서사시이다. 지옥의 문을 지나며 나오는 유명한 구절 "여기 들어오는 너희는 모든 희망을 버려라."는 너무나 시적이며 인간적이다.


임윤찬은 이 구절에 매료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너의 별을 따라간다면 영광의 항구에 실패 없이 도달하리."


"너의 길을 따르라, 사람들은 말하게 두라."


단테는 고향 피렌체에서 쫓겨나 망명자 신분이었다. 그는 감시와 추적을 피해 도망 다니는 구도자이자 순례자였다. 그럼에도 고뇌하고 외로워하고 괴로움에 가득 차 있으면서도 신곡을 활짝 꽃 피웠다.


임윤찬이 그런 단테에 매료되었다니 예술가로서의 그의 미래가 어찌 창창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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