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쿨란스키, 우유로 읽는 1만 년 인류 문명사
* Cover : 베르메르, "우유 따르는 여인", 암스테르담 국립박물관 소장
나는 요거트를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걸쭉한 플레인 요거트에 블루베리를 넣어 휘휘 저어 숟가락으로 떠먹는 게 제일이다. 사실 유제품은 가리지 않고 찾아 먹는다. 차가운 우유는 고구마와 궁합이 그만이다. 치즈도 좋다. 요리에 치즈를 마지막에 토핑하면 풍미가 좋다. 파스타나 떡볶이, 쭈꾸미 삼겹살, 닭갈비 등 안 어울리는 음식이 없네? 우유로 거품을 내어 커피와 함께 만드는 따뜻한 카페라테는 어제도 오늘도 출근 후 습관처럼 마셨다.
버터를 빼면 서운하겠다. 잠봉 뵈르(Jambon Beurre)라고 들어보았는지? 불어로 잠봉은 햄이고, 뵈르는 버터다. 바게트 빵을 반으로 갈라, 햄을 충분히 올린 후 가염버터를 넉넉히 토핑 해서 샌드위치를 만든다. 너무나 간단한 레시피인데 좋은 재료로 만들면 프랑스에 온 것 같은 느낌이다. 그만큼 맛있다. 정말 쉬우니 한번 쯤 시도해 보기를 권한다. 다만, 바게트, 잠봉, 버터의 품질이 좋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최근 몇 년 간 인도 식당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거기서 즐겨 마시는 요거트로 "라씨"가 있다. 라씨라고 별거 아니다. 플레인 요거트에 설탕과 소금이 들어간 것이다. 아직 먹어보진 못했지만 이란에서 해먹는 요거트는 "두그"라고 부른다. "보로 마스테토베잔(Boro mastetobezan)"이란 아랍어가 있다. 언젠가 중동 지방에 갈 일이 있으면 써봐야 하는 문장인 데 또 함부로 쓰면 안 되는 문장이기도 하다. "네 요거트나 드세요"라는 뜻이다. "관심 꺼주세요"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우유는 아버지와 형과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음식이기도 하다. 겨울이 되면 아버지, 형 그리고 나는 정기적으로 동네 목욕탕에 갔다.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면서 아버지가 내는 "어으~~ 시원하다"를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추운 겨울날 목욕 가자고 하면 제일 먼저 앞장섰던 이유는 목욕이 끝나면 병에 담긴 우유를 사주셨기 때문이다. 유리병에 담긴 우유는 이렇게 생긴 종이 뚜껑으로 포장되어 있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으나, 우유 옆에는 소금통이 있었다. 우리는 난로 위에 있던 따뜻한 우유에 소금을 한 티스푼 타서 마셨다. 그걸 한잔 마시고 밖으로 나오면 아직 덜 마른 축축한 머리카락이 차가운 겨울바람과 만나 순간 소스라치게 놀라곤 했다. 그래도 우유를 한잔 마셔 속은 든든하겠다, 추위를 기분 좋게 느끼며 집까지 걸어왔던 기억이 난다.
생각해 보면 성인이 되어서도 다른 동물의 젖을 음식처럼 섭취하는 동물은 인간이 유일하다. 우유의 역사는 생각보다 꽤 길고, 전 세계에 걸쳐있다. 마크 쿨란스키의 이 책은 바로 이 우유의 역사에 집중한 독특한 책이다. 책을 읽으며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을 몇 가지 소개한다.
내가 와인 안주로 곧잘 페어링 하는 치즈 중 고다치즈가 있다. 고다치즈는 네덜란드가 유명한데, 네덜란드 말로는 하우다라고 읽는다. 이 치즈를 팔던 시장이 있던 마을 이름이다. 카이사르는 기원전 57년 로마군을 이끌고 네덜란드 땅을 밟았다. 그제서야 로마인들은 네덜란드 인들이 치즈를 먹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로마와 그리스 등 풍토와 기후가 좋았던 남부 유럽에는 올리브 등 영양 공급원이 풍부해서, 우유나 치즈에 대하여 목말라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추운 지방의 북유럽인들에게는 우유와 치즈가 풍부했고 이것이 중요한 영양 공급원이기도 했다. 로마인들의 눈에 북유럽인 들은 야만인이었다. 특히나 유제품을 야만적으로 먹어치우는 종족들이라고 흉봤다. 그중에서도 네덜란드인들은 우유, 치즈, 버터를 끊임없이 먹어대는 아둔하고 우스꽝스러운 사람들도 놀림받았다. 그러니 "플란다스의 개"에서 네로가 파트라슈와 우유를 배달하고 다닌 것은 배민 라이더스만큼이나 흔했던 일이었다. (플란다스는 플랑드르 지방을 말하는 데 지금의 네덜란드와 벨기에다)
신선한 우유를 인류가 소비하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우유의 위생에 대한 문제가 해결된 것이 백 년이 갓 넘었기 때문이다. 방금 짜서 양동이에 받은 젖에는 몇 분 안에 치명적인 박테리아가 자란다. 1893년 뉴욕의 헨리 대처라는 약제사는 우유를 사려고 줄을 섰는데, 그의 앞에는 더러운 인형을 손에 쥔 소녀가 있었다. 소녀는 실수로 인형을 우유통에 빠트렸다. 친절한 행상은 얼른 인형을 꺼내 우유를 털어서 소녀에게 건네줬다. 행상은 다음으로 약제사 차례가 돌아오자 바로 그 우유를 퍼줬다. 이 일을 계기로 대처는 일 년 뒤에 뚜껑이 있는 우유병으로 특허를 받았다.
전 세계 대다수 농부에게 최고로 인정받는 젖소가 무어냐고 묻는다면 다시 플란다스의 개로 돌아와야 한다. 바로 네덜란드의 "홀스타인-프리지안" 종이기 때문이다. 커다란 몸집에 흰색과 검은색이 섞인 소다. 인공 수정으로 슈퍼스타 젖소를 개발한 것이다. 대량의 우유를 생산하는 데 최적이다. 엄청난 양의 사료가 들지만 그만큼 생산량도 막강하다.
아쉬운 점도 있긴 하다. 중국의 분유산업에 대하여는 비판적으로 소개하면서도 막상 미국의 거대 낙농업계가 어떻게 시장을 지배하고 미디어와 연을 맺고 있는지에 대하여는 일절 이야기가 없다. 우유는 과연 완전식품이고 우리 인간에게 좋은 것인지, 인간만이 다른 동물의 젖을 먹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궁이다.
그래도 "우유"라는 한 가지 단어를 이렇게까지 넓고 깊게 쫓아가는 작가의 용맹정진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유제품은 맛있지 않은가? 보로 마스테토베잔(Boro mastetobezan)! 요거트나 한번 더 먹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