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몰랐던 51명의 충청도 할매들이 한글학교에 다녔다. 글을 깨우치니 하고픈 말이 봇물 터진다.
무엇보다 할머니들이 한평생 해 드신 요리 비법이 날개를 단다.
그래서 나온 책, "요리는 감이여". 고맙게도 성인 봉사자와 사서들은 할머니의 인생을 채록해 주었다. 손주 같은 자원봉사 청소년들은 일러스트를 그렸다.
얼마 전 아내에게 물었다.
"나랑 결혼한 게 잘했다 싶은 때가 언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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뜸 들이던 아내는
"... 요리해 줄 때?"
라고 한다. 생각지도 않은 답이었다. 하나라도 있다니 다행이다.
나는 요리를 좋아한다.
대단한 건 아니다. 내가 즐겨 만들어 먹는 메뉴는 쭈꾸미 삼겹살 볶음, 제육볶음, 명란 계란찜, 양식으로는 라구소스를 얹은 리가토니, 봉골레 스파게티다. 만들기 쉬운 메뉴다. 여러 번 해봤는데 다행히 아내나 아이들이나 잘 먹는다.
내 첫 요리는 소고기 미역국이었다. 아내에게 미역국을 끓여주고 싶었다. 요즘은 유투브에 온갖 레시피들이 많다. 따라 하면 그다지 실패할 확률은 없다. 해보고 놀란 점이 있다.
'아니, 소고기 미역국이 이렇게 간단한 것이었나?'
35년생 충남 예산의 송명예 할머니의 레시피도 특별할 것이 없다.
미역국은 역시 소고기 미역국이여. 옛날에는 생일 아니믄 고기는 눈 씻고두 못 봤지. 옛날에 이렇게 소고기가 어딨었어. 소 하니께 생각이 나는디, 우리 집 소가 한번은 새끼를 낳았는디 남편이 션찮아서 내가 끌고 가서 5만원에 판 적 있어. 돈은 물러. 으른들 드렸으니께 어따 썼는지는 모르지. 그 생각만 허면 웃음이 나. 영감생일, 손주 생일, 식구들 생일 때마다 정성스레 미역국을 끓이지만 질리지 않어. 미역 조물조물 빨아서 듬성듬성 썰어서 기름에 볶아. 내가 혼저되서 나와 사니 수수하게 먹고 살어. 미역국을 요즘 잘 해 먹지. 제일 편혀. 한 이틀은 먹어. 신경 쓸 것도 아무것도 읎서. 아무거나 늫고 끓이면 맛있어.
재밌는 건 미역을 주물러 빨아야 한다는 주문이다. 물에 건미역을 불리는 건 해도, 주물러 빠는 이유는 뭘까? 아마도, 하얀 거품이 나도록 씻고 또 씻으면 미역에서 나는 비린 맛이 없어지고 담백한 맛이 더 느는 탓이겠다.
송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던진 '요리는 감이여' 이 아리송한 한마디는 무슨 뜻일까?
나도 잘은 모르지만, 요리는 해보면 결국 '간' 맞춤이라는 생각이다. 식당에서 사 먹는 요리의 간은 쎄고, 집에서 해 먹는 요리는 슴슴하다. 인공조미료와 소금, 설탕을 에라 모르겠다고 잔뜩 치는 엄마는 없으니까. 문제는 간이다. 간이 맞지 않으면 도무지 맛이 나지 않는다. 유투브 레시피를 보면 조그만 그릇 들에 온갖 양념재료들을 그램으로 적어 놓고 올려놓는 경우가 많다. 그대로 하면야 맛은 나겠지만 실전에서 그렇게 요리하는 경우가 몇이나 될까?
결국 여러번 시도해봐야 성공할 수 있는 게 요리이기도 하겠다. 그래야 감이 생기는 것일 테니까.
충청도 고향에는 또 한분의 47년생 할매가 있다. 내 어머니다. 아버지는 십년 전 3월에 돌아가셨다. 봄 볕 좋은 날 간만에 아버지 산소에 함께 들러야지. 어머니께는 아들이 미역국 끓여드려야겠다. 준비물은 이렇게.
자른 미역, 한우 양지 넉넉히, 마지막으로 아들의 "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