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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티뷴 Jul 02. 2023

이스탄불: 니똥꼬 택시기사의 추억

이스탄불은 지금껏 4번 갔다. 터키가 막 끌렸던 것은 아니다. 처음은 그저 회의 때문에 다녀와야 하는 곳이었다. 서구여행에만 익숙해서 그랬나보다. 방문지에 대한 기대가 크지 않았는데, 가보면 생각보다 좋은 경우가 있다. 이스탄불이 그랬다. 거대한 "아야 소피아 성당(사진)"에 놀라고, 건너편의 블루 모스크에서 한번 더 놀랐다. 그 옆 지하에는 로마제국이 건설한 저수조가 있다. 영화 "인페르노"의 피날레에서 로버트 랭든 교수가 찾아가는 곳이다.


여행은 걸어야 제맛이다. 밖으로 나와 천천히 걸어 보스포러스 해협 쪽으로 내려갔다. 풍경이 근사했다. 시간을 돌려 19세기 인상파 화가들의 풍경 그림을 보는 듯 했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오리엔탈 특급 살인사건"의 바로 그 기차역도 있었다. 한때 이스탄불을 출발해 거의 보름에 걸쳐 유럽까지 달리는 고급 관광열차가 있었다. 오리엔탈 익스프레스였다. 식자재들을 기차에 싣던 영화의 첫 장면이 기억난다. 보스포러스에서는 유람선을 한번쯤 타보는 것을 권한다. 마르마라 해와 보스포러스 해협 그리고 흑해 입구까지 짧은 시간 안에 돌아볼 수 있고, 배 위에서 한쪽을 보면 유럽, 고개를 돌려 반대편을 바라보면 아시아라는 점도 남다르니까.

뚜르욜 유람선. 저보다 큰 유람선도 많다.


배에서 내려 이스탄불 북쪽의 "베벡"이라는 동네를 가보자. 한적하면서도 부자동네라는 느낌이다. 그곳에는 특별한 스타벅스가 있다. 테라스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 밖에서 커피와 디저트를 먹으며 바다와 요트들이 주는 차분하면서도 호사스러운 풍경을 누릴 수 있다. MZ친구들이 가만 있을리가 없다. #베벡스타벅스.

베벡 스타벅스 입구. 안에 들어가면 반대편에 전망이 펼쳐진다.




아이들에게 너희가 아는 이슬람은 편견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이스탄불로 고고! 아빠가 가이드가 되어 구시가를 돌아보았다. 아이들도 생각보다 구경거리도 많고, 밥도 맛있으니 좋아했다. 지중해 쪽 나라들이 그렇듯 제철 식재료가 풍부하고 신선하다. 케밥, 올리브, 유제품 등 식사들은 저렴하면서도 만족스러웠다. 더구나 아이스크림 사 먹는 재미도 있다. 아이스크림 가게에서는 콘에 그냥 퍼주지 않고 줄듯 말 듯 온갖 장난을 친다. 배도 부르고 아이스크림도 먹었겠다. 택시를 타고 이스탄불의 명동 "탁심"으로 가기로 했다. 창경궁에서 명동을 가는 느낌?


택시들이 줄지어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맨 앞 택시를 타려고 했더니, 기사가 엄지로 뒤쪽을 손짓했다. 다음 택시를 타라는 것이다. 별생각 없이 중간에 있는 택시를 탔다. 기사는 한쪽 팔에 온통 문신을 새겨 넣었다. 수염도 덥수룩한 게 호감 가는 인상은 아니었다. 그는 친절하게 말을 걸어왔다. 관광객들에게 늘 물어보는 질문, 어디서 왔냐 뭘 하느냐? 탁심으로 향했다. 그런데 왠지 느낌이 싸했다. 그동안 잦은 방문으로 거리감이 이미 있는데, 뻔한 길을 가지 않고 빙빙 돌아가는 것이었다. 목소리를 깔고 한마디 했다.


"나 여기 4번째인데, 왜 돌아가는 거야?"

"(흠칫 놀라며) 아... 지금 길이 너무 막혀서 돌아가야 해요. 빨리 갈 테니 걱정 붙들어 매슈."

택시 미터도 이상하게 빨리 올라간다. 기사는 목적지인 탁심에 가지 않고는 근처의 인적이 드문 굴다리 같은 곳에 차를 세웠다. 길이 막혀서 여기서 내려줘야 한다며 말이다.


그러더니 내가 요금을 내려고 하자, 내 지갑을 슬쩍 보더니


"그 고액권(우리 돈으로 5만 원 정도 했던 것 같다)으로 줘요. 내가 거슬러 줄게요." 하는 것이었다.

별생각 없이 내어준 내 돈을 넘겨받고는 갑자기 기사의 태도가 돌변했다. 자기한테 5백 원 정도밖에 안 주었으니, 요금을 더 내야 한다는 것이다.


'응? 흥! 너 사람을 잘못 봤어.'


그가 한쪽 팔 전체에 문신을 했다 한들 겁먹지 않았다. 택시를 세워놓고 말싸움이 시작되었다. 아내와 아이들은 혹시 몰라 차에서 내리게 했다. 한창 싸우고 있는데, 어디선가 큰 소리가 들려서 돌아보니 아내였다. 아내가 아이들의 고사리 손을 양손에 잡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Call the police!" 하면서 말이다. 싸우다 말고 먼저 아내를 진정시켜야 했다.


그래서 사태의 마무리는? 돈을 돌려받고, 미터기에 나온 요금만 지불했다. 물론 미터기 요금도 터무니없었지만 말이다. 아이들은 호텔에서 저녁내내 자기들끼리 오늘 일을 떠들었다. 분노에 차 있었다.


“아까 그 택시기사 정말 나쁜 아저씨다 그치?“

“응, 그…니똥꼬 택시기사. 생긴 것도 이상하고 냄새도 났어.“

택시기사 이름을 모르니 "니똥꼬 택시기사"라고 부르고 있었다. 아내도 많이 놀랬는지 이스탄불이 정 떨어지는 모양이었다.


그래 그놈의 "니똥고 기사" 때문에 터키 여행은 망해버렸다. 아이들은 다시는 터키에 오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검색해 보니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택시 사기가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었다. 그러니 지나가는 택시를 손을 들어 세우는 것은 오케이지만, 먹잇감을 찾아 기다리고 있는 이런 택시에는 타지 말지어다. 아무리 택시기사가 형제의 나라 터키 사람이라도 말이다.


터키는 왜 형제의 나라일까? 6.25 참전 동맹이어서? 터키와의 역사는 꽤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구려 역사 수업 때 들어본 북방 민족이 있을 것이다. "돌궐"이다. 고구려가 멸망한 후에 돌궐은 고구려 유민 약 20만 명을 받아들여 몽골지역에서 세를 떨쳤다. 돌궐(突厥)이라는 한자는 투르크를 중국어로 독음화한 것이고, 우리는 그 한자를 우리 식으로 읽어서 돌궐이다.


투르크 족의 나라이니 튀르키예라는 바뀐 국명이 더 정확한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터키가 여전히 편하다. 니똥꼬 기사들만 조심하면 매력 있는 관광지 터키 이스탄불. 터키는 얼마 전 일어난 대지진으로 여전히 신음하고 있다.


밉상 니똥꼬들도 부디 무사하기를.

해 질 녘의 풍경이 인상적인 이스탄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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