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와 무더위가 시작되었다. 쉽게 우울해지고 지칠 수 있는 때다. 눈덮인 캐나다 로키 사진으로 잠시나마 청량감을 느껴보았으면 한다.
"레이크 루이스"라는 피아노 음악이 있다. 유키 구라모토가 작곡한 곡이다. 루이스 호수는 캐나다 밴프에 있다. 9월말이었다. 캐나다 로키를 갔다. 차를 빌리고 이 음악을 무한반복 재생했다. 루이스 호수를 만나면 형용하기 어려운 고요함이 있다. 빙하가 녹아서 만들어진 호수이기에 푸른 물감을 풀어놓은 듯하다. 바람에 찰랑거리는 수면을 바라보면 하루종일 있어도 지루하지 않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쉽게 말할 수 없는 이 풍경”을 유키 구라모토가 아름다운 선율로 담았다.
레이크 루이스에 가면 고풍스러운 외관의 크림색 호텔이 있다. "페어몬트 샤토 레이크 루이스"다. 쉽게 투숙할 수는 없는 곳이다. 주식투자자 ‘앙드레 코스탈리니’가 쉬러 오는 곳이라고 스스로 말한 바 있다. 비싸다. 그래서 우리는 호텔 기념품 점에 갔다. 캐나다의 9월 말은 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하다. 그래도 여행하기에는 참 좋은 날씨다. 우리 부부는 겉에 입을 풀오버를 사고, 아이들은 인형을 골랐다. 딸이 고른 인형은 뿔과 생김새가 특이해 동화에도 많이 나오는 캐나다 무스. 아들이 고른 건 뭐였더라?
기념품 점 주인이 말을 건다.
"라치보러 오신 거죠?"
"네? 라….뭐요?“
주인이 한국분이었던 것이다.
처음 들어본 말이었다. 루이스 호수 말고 내가 모르는 호수 이름인가 싶었다.
"그게 뭐예요?"
"여기 침엽수가 노랗게 물드는 거. 그걸 라치라고 해요. 요맘때만 볼 수 있어요. 한 열흘? 모레인 호수를 꼭 가세요. 저도 내일 올라갑니다."
우리는 당연히 라치를 모르고 갔다. 한 여름에는 너무 비싸서, 그저 성수기를 피해서 지금 로키에 온 거니까.
‘지금 아니면 다음은 없다’
우리가 언제 라치를 보러 시즌을 맞춰 캐나다를 또 오겠는가? 당연히 여행 일정은 급 변경. 다음날은 모레인 호수 트레킹 고고!
모레인 호수는 키큰 봉우리 들에 둘러싸여 있어서 장엄하면서도 원시적이다. 호텔도 없다. 호수 입구에서 라치를 감상할 수 있는 정상까지는 구불구불한 길을 6킬로 정도 올라간다.
등산스틱을 아이들에게 하나씩 나눠주었다. 이야기를 나누며 중간중간 사진을 찍으며 올라갔다. 작은 계곡들이 이어져 있었는 데 손을 데어보니 물이 시리도록 차가우면서도 너무나 맑았다. 길은 좀 긴 듯했으나, 돌부리도 없고 평탄해서 아이들도 올라가기 어렵지 않았다. 제법 올라갔다 싶은 순간, 드디어 탁 트인 곳이 나타났다. 기념품 샵 주인장이 말한 그곳이었다.
사실 라치가 없는 풍경이라도 캐나다 로키는 충분히 멋지다. 여름이라면 이만한 피서지도 없을 것이다. 그런 로키가 라치로 더욱 특별해졌다. 소나무는 사시사철 푸르지 않은가? 그런데 침엽수들이 노랗게 물들어 있으니 비현실적이다. 영화 인터스텔라를 보면 지구가 아닌 듯한 풍경들이 나온다. 아이슬란드라고 들었다. 라치로 물든 캐나다 로키도 비슷한 느낌이다. 정상에는 꽤 너른 공간이 나오는 데, 많은 이들이 각종 포즈를 만들며 인증샷을 남기느라 여념이 없었다.
우리는 로키에 머무는 동안 캠핑카에서 잠을 잤다. 캐나다 로키는 밤이 되면 지구에서 가장 어두운 곳의 하나라고 한다. 그래서 밤하늘의 별이 수없이 많다. 바비큐로 저녁을 해먹고, 캠핑카 밖에 담요를 가지고 나와 네 식구 모두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내와 나는 모레인 호수 방문을 기념하는 와인을 한병 사와서 마셨다. 별을 그렇게 많이 보기는 처음이었다. 특히 별똥별이 쉼없이 떨어졌다. 하나가 떨어지면 다른 곳에서 또 휘익~하고 별이 떨어졌다. 아들은 처음 보는 광경에 무척이나 흥분했다. “아빠 저기! 별똥별! 아니 저기 또!" 하며 뛰어다니는 모습을 하하 호호하며 바라봤다.
루이스 호수의 기념품 샵 주인장님. 올해도 라치보러 가시겠네요? 잘 지내고 계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