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라디오
라디오를 듣다가
눈 감고 라디오를 들으시던 아빠가 떠오릅니다.
저는 라디오 듣는 걸 참 좋아해요.
아침에 눈뜨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휴대폰에서 앱을 켜서 라디오를 트는 거예요.
제 휴대폰이 가장 열심히 하는 일이 저에게 사람의 목소리와 사연을 전달하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저는 극 I 성향이라 사람을 만나면 오히려 에너지가 소모되기 때문에 정말 편한 사람 아니면 제 시간을 내어주기가 싫어집니다.
그래서 저는 주로 라디오를 들으며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능력을 키우는 것 같아요.
또 라디오에 나오는 사연은 익명의 보장 때문인지 더 솔직하게 자기의 감정이나 상황을 자세하게 말하는 것 같아요.
라디오를 들으며 많은 위로를 받기도 하고, 때론 웃기도 하고, 정보를 얻기도 해요.
내 라디오 청취의 기억을 거슬러 가다 보면 아빠를 만납니다.
서울에 올라와 무료한 나날을 보내시던 아빠의 유일한 친구는 라디오가 아니었을까 싶네요.
엄마는 장사하러 나가시고 언니 오빠들은 다 학교로 직장으로 나가면 집에는 나랑 아빠랑 단 둘이만 남았어요.
그땐 티브이가 아무 때나 시청 가능하지 않던 시절이라 아빠의 시간을 때울 수 있는 재미거리는 오직 라디오겠지요.
아빠는 ‘싱글벙글 쇼’나 ‘제5공화국’(?) 같은 류의 라디오소설을 애청하셨어요.
저는 그때 라디오 사연에 아무 관심이 없었지만, 그게 그 시절 아빠의 루틴이었기 때문에 제가 라디오를 듣다 보면 자연스레 아빠가 떠오르네요.
모르겠어요.
그때 아빠의 마음은 어디에 머물러 있었는지.
라디오를 들으시며 마냥 재미있기만 하셨을지 아니면, 가장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잠시 생각을 다른 곳에 두고 싶으셨던 건지 그때의 저도 지금의 저도 여전히 아빠를 몰라요.
아빠가 살아계실 때보다 아빠가 안 계신 지금이 아빠에 대해 더 궁금하고 알고 싶네요.
아빠가 살아계실 때 아빠한테 관심 좀 갖고 이런 대화를 조곤 조곤 나눴다면 이렇게 아빠에 대한 기억이 안개처럼 흐릿하진 않을 텐데 말이죠.
아빠에 대해 아는 게 참 없네요.
특히 아빠가 무슨 생각으로 사셨는지 참 알고 싶어요.
내가 기억하는 아빠의 미운 모습이 다는 아닐 텐데요.
내가 아빠를 미워했다고 아무리 되뇌어봐도 왜 아빠를 생각하면 마음이 이렇게 가라앉을까요.
화장대 제일 가운데 자리에 자리 잡고 있는 아빠의 사진에 눈을 맞추는 일이 참 힘겨워요.
아빠가 우리한테 잘해주신 것 없다고 미워했기에 나도 자식으로서 아빠한테 잘해드린 게 없었네요.
이제야 그런 죄책감이 들어 사진 속의 아빠를 차마 쳐다보지 못하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