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 즐거운가

-착한 프레임은 이제 그만

by 아녜스

-특별히 내세울 만한 것은 없지만 그래도 쉽게 넘보지 못할 장손에 맏며느리의 자리를 꿰차고 있다. 자리가 자리인 만큼, 때 되면 싫은 내색 없이 제 역할은 제대로 해야지 싶어서 나름 한다고 해본다. 뭐든 생각하기 나름이란 말을 믿으면서. 명절 차례 준비며, 이것저것 맘 쓸 일도 많아서 힘들다고 생각하면 힘들지만, 특별한 날 특별하게 하는 일이라고 치면 준비하는 과정들이 달리 보인다. 즐기는 마음은 임팩트가 세다. 내가 즐거워하면 옆 사람도 즐거워한다. 스트레스받으며 하는 일은 비능률적인 데다가 불편함을 사서 하는 꼴이 되니까.-


2009년. 설 연휴를 보내고 나서 쓴 글의 일부이다. 다시 읽으니 피식 헛웃음부터 나온다.

10년도 훨씬 지난 일이다. 저 때만 해도 며느리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는 생각과, 규범을 거스르지 못할 바엔 순리를,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를 외쳤던 마음이 분명하다.

그 분명함 속에는 마음 한쪽에서 일렁대던 명절 노동에 대한 불편한 마음도 ‘그까짓 것 뭐’, ‘그냥 내가 하고 말자’ 하는 착한 프레임의 주문에 눌려서 적당히 타협하고 묵인했던 것 같다.

굳이 10년도 넘은 지난 글을 옮겨 온 이유는 이제는 그리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예전이나 별반 다름없는 며느리의 운명이지만, 어영부영 끌려서 역할극을 하듯 하는 것은 맘도 편치 않을뿐더러 어렵게 입을 뗀 만큼 변화를 줄 타이밍도 지금이 적절하다고 생각해서다.

사실, 명절을 쇠지 않는다고는 했지만 아직은 넘어야 할 단계가 남아있어 편히 말하긴 이르다.

왜냐면, 남편이 시댁 식구들에게 명절문화를 바꾸자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쉽지 않을 테고 또 동의를 구하기 위해 여러모로 신경 써야 할 문제도 있다.


남편의 입장

남편은 형편이 어려운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개천에서 용 났다는 말을 들을 만큼 남다른 아들이었다. 보통 그렇듯이 잘나고 똑똑한 큰아들에게 올인하는 부모님의 관심과 사랑은 너무도 당연했다. 거기에 남은 형제들은 가정 형편상 여러 면에서 희생과 양보를 감수해야만 했다. 그로 인해 남편이 감당해야 할 책임과 의무는 커졌고, 형제들에게는 늘 빚진 마음을 갖고 있어야 했다.

남편은 평소 남녀 평등주의자이며, 불편부당한 일은 과감하게 개선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시댁의 대소사의 일이며, 문제로 인한 다툼이 생겨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연약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아마도 장남이라는 타이틀의 무게가 크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거나, 남편은 아직 시댁 식구들과 의논하고 타협을 봐야 할 일이 남아있지만 우리는 이번 추석 때부터 바꾸자는 의견에 합의를 본 상태다.


차례와 제사

엄격히 말하면 차례나 제사란 것이 인간이 만들어 낸 하나의 약속에 불과하다. 제사는 돌아가신 조상님을 자손이 잊지 않는 공경심과 효심의 마음가짐이면 충분하다. 명절 차례는 조상에게 달과 계절이 바뀜을 알리고 새로 나는 음식을 조상에 올리는 의례로, 본시 차례상은 간소하게 하고 형식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전통의 긍정적인 의의를 살리는 것이라고 한다.


명절 쇠는 것은 선택

대를 잇고 자자손손 제사와 차례를 지내야 명절을 잘 보내는 것이라면 요즘처럼 후세가 없는 비혼 자식들은 어쩔 것인가. 솔로 사회로 치닫고 있는 현실적 문제를 보자면 앞으로의 명절은 의미조차 퇴색될 것은 뻔하다.

우스운 얘기로 ‘조상 덕을 못 본 사람들이나 조상 모신답시고 상 차리고 절하고 있고, 조상 덕을 본 사람들은 그럴 시간에 해외여행 간다.’는 말도 있더라만...

명절은 흩어져 사는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가족애를 확인하고 혈연관계 유지를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지금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대부분은 생각이 사뭇 다르다. 혈연관계 확인을 굳이 명절에 해야 하는지, 경조사 외엔 볼 수 없는 친인척 관계 유지를 위해서 내키지 않아도 당연한 의무처럼 해야 하는 명절이 그다지 달갑지 않다는 것이다.

지금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시대이다. 예전에 당연시했던 것들이 달라지고 다양한 변수들이 새롭게 등장하고 있다. 명절 문화도 마찬가지다.

명절이 불편하다

나는 명절이나 제삿날이면 동서들과 함께 준비하는 걸 그다지 반기는 편이 아니다. 그들은 내가 살갑지 않은 형님이고 편하게 대하지 않는다고 여길지 모른다. 하지만 평소에 왕래도, 대화도 없이 데면데면 지내다가 음식 준비하자고 와라 마라고 말하는 것도 내키지 않는다. 그들이 보이는 자발적 부담감도 그렇거니와 모처럼 만나서도 매번 토씨도 같은 반복되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편치 않다. 그래서 기꺼이 도움을 사양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몇 년 전부턴 차례상에 올릴 음식 중 각각 3가지씩 만들어 가지고 오고 있다. 어떻게 보면 편하게 하자고 주도적으로 바꾼 것도 있지만, 동서들도 나름 내게 덜 미안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한편으로는 바로 아래 동서는 며느리, 사위도 봤고 손주들도 태어나 가족 관계도에 변화가 생겼다. 이제는 명절 준비도 달리하고 변화를 줘야 할 때가 된 것 같아서 앞으로의 명절은 편하게 각자의 가족끼리 지내든지, 명절을 나눠서 하든지 결정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명절을 큰집에서 쇠지 않으면 안 된다는 원칙은 없다. 명절을 쇠지 않는다고 옳고 그름을 따져가며 풀어야 할 문제는 더더구나 아니다.

무엇보다 내 아들 세대는 지금의 명절 문화와는 다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 나는 서두르고 싶어질 뿐이다.

내 아들의 아내가 될 누구 집의 귀한 딸까지 내가 겪은 명절의 의무를 그대로 답습시키고 싶지 않다.

혈연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전통과 가부장제를 명분으로 내세운다면 건강한 관계의 유지가 아니라 문제의식만 키우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미리 공 드려서 말하고 있는 나의 의지에는 시댁 식구들의 서운함과 왈가왈부를 사전에 사절하겠음이 내포되어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마냥 기다려주는 시간은 없다. 세월은 너무나 빠르고 세상은 또 다른 버전의 트렌드가 쉼 없이 업데이트되어가고 있다. 앞으로 내게 얼마만큼의 시간이 주어져 있을지는 모르지만 남은 시간도 유일무이한 것이고 그 의미도 특별하다.

난 내 삶의 무게가 좀 더 가벼워지길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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