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위반 / 이대흠
기사 양반! 저짝으로 조깐 돌아서 갑시다
어칳게 그란다요 뻐스가 머 택신지 아요?
아따 늙은이가 물팍이 애링께 그라제
쓰잘데기 읎는 소리 하지 마시오
저번챀에 기사는 돌아가듬마는 ······
그 기사가 미쳤능갑소
노인네가 갈수록 눈이 어둡당께
저번챀에도
내가 모셔다 드렸는디
투박하고 구수한 사투리가 정감이 간다. 시 속에 스며있는 배려와 정겨움에 몇 번이고 되뇌어서 읽었던 시다. 기억을 못 하는 어르신과 기사님의 실랑이를 마치 보고 있는 듯 생생하게 느껴지면서 어르신을 배려하는 기사님의 따듯한 마음에 나까지 안도하게 만든다. 위반이 위반 아닌 위반이 되는 제목 그대로 아름다운 위반이다.
시에 대한 감상평을 하려고 가져온 것은 아니다. 나이 듦을 생각하다 문득 떠올랐다.
노인들이 흔히 하는 말로 마음은 청춘인데 몸이 젊은 마음처럼 따라주질 않는다는 소리를 하곤 한다. 웃음으로 지나쳤던 이야기에 언제부턴가 저절로 고개를 끄덕거린다.
나이 듦=불편함. 인정하지만 애써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부분에도 동의한다. 흐르는 세월과 함께 신체적, 정신적, 물질적인 변화가 불청객처럼 찾아오고 있음을 실감하는 순간들이 있다.
눈에 보이는 몸의 변화나 행동이며, 평소 느끼고 생각하는 사고방식까지 눈에 보이지 않는 여러 가지를 경험하게 된다.
보이지 않는 것 중에서도 가장 먼저 자각하는 것이 기억하는 것보다 잊는 게 많아진다는 것이다. 방금 보았던 것도 고개 돌리는 순간 잊어버리기도 하고, 말을 하면서도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쩔쩔매는 횟수가 늘어간다. 건망증의 과잉 반응이 머릿속을 휘저어버리는 빈도가 높아질수록 감정조절도 쉽지 않다.
게다가 예고 없이 튕겨 나오는 변덕스러움은 생활 리듬마저 들쑥날쑥 혼란을 주기도 한다. 상대방의 애매함에 장단 맞추기는 더더욱 안 되고, 편한 것, 좋은 것 가리는 게 많아진다.
기분 탓도 해보고 갱년기니 뭐 그런 것도 갖다 붙여보지만 나이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내 딴에는 나이에 무덤덤하고 태연하긴 해도 동시에 머릿속 지우개로 한 살 한 살씩 지워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사실, 난 지금의 내 나이가 좋다.
내가 50대 중반의 나이였을 때 시간을 되돌려 몇 살로 돌아가고 싶은지 물어본 이가 있었다. 나의 대답은 10, 20대로 돌아가서 다시 공부하라면 싫고, 30, 40대로는 직장 생활하랴, 살림하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보냈던 지친 내 모습이 떠올라 싫다고 했다. 50살을 넘기고 보니 나를 돌아보는 여유도 생기고 하고픈 것도 골라서 할 수 있는 편안한 마음이 생긴 50대가 좋다고 했다.
그 질문이 유효하다면 10년이 지난 지금도 대답은 마찬가지다. 특별한 것도, 내세울 것도 없지만 이렇게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이어오고 가는 나이 듦이 좋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늙어가고 있음은 사실이다. 서두른다고 한 살 더해지는 것도 아니고 피해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너나 할 것 없이 공평하게 먹어가는 것이 나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점점 노인이 되어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노인이 되고 싶다고 누구나 되는 것은 아니다. 노인은 나이로 인해 선택받은 사람이고 그 선택은 특별한 선물이다.
나이 든 모습과 행동들이 때론 당황스럽고 황당하여 부정하고 싶겠지만, 그런 변화조차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한다.
지금은 100세 시대이다. 길어진 인생 후반기를 어떻게 보내야 잘 보낼 수 있을까에 대한 것이 요즘의 관심사이고, 더불어 함께 잘 지내는 방법을 알아가는 것이 특급 과제다.
한동안 회자되었던 나이 들어가면서 갖춰야 할 7 UP이 생각난다.
1. cheer up / 즐거운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2. clean up / 나이가 들수록 깨끗하게 하고
3. dress up / 의상에도 신경을 쓰고
4. give up / 웬만한 것은 포기하고
5. show up / 각종 모임은 꼬박꼬박 찾아다니며
6. shut up / 잔소리는 삼가고
7. pay up / 돈 내는 것을 즐길 것.
뭐 하나 뺄 것도 없이 맞는 말이다. 하지만 '7Up'을 실행할 수 있는 전제 조건은 건강과 경제적 여유, 나이에 맞는 품격이 따라 줘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요즘 시니어 트렌드가 뜨는 이유도 7가지 속에 다 포함된 것 같다.
자고 나면 눈이 핑핑 돌아갈 만큼 세상은 빠르게 변해간다. 새로운 것이 늘어가니 알아야 할 것도 많아진다. 무관심하고, 겁내고, 귀찮아하면 점점 세상과의 교류가 어려워질 뿐이다.
스피디한 현실 세계가 두렵지만 어쩌랴.
몸도 맘처럼 따라주지 않고, 듣고도 순식간에 잊어버리는 것이 다반사지만 노익장을 발휘해야 한다. 모르는 것은 알아가며, 이해하고, 몸소 실천해야 하는 세상이다.
결국 시대의 변화에 맞춰가려면 스스로 배워가며 자신을 책임질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배우고 익히는 게 말처럼 쉽다면 오죽 좋을까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