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방식대로 감정 분리

by 아녜스

감정의 어떤 부분에서 가시가 걸린 듯 불편해질 때가 있다.

상대방의 싫은 모습이 나의 싫은 모습과 닮아있을 때 이유 없는 저항감이 그랬고, 남이 우유부단할 땐 학을 때면서 자신의 우유부단함엔 너그러워지는 이중성이 그랬다. 가당치 않은 오기를 부릴 때도, 오만함을 당당함처럼 굴 때도 칙칙해지는 기분이 그랬다.

방어기제라는 용어를 끌어들이지 않아도 불편한 감정은 통통 튕겨져 나온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비교되는 어느 부분에서 인정하고 싶지 않은 편치 않은 상황과 맞닥뜨릴 때가 있다. 그런 난감한 상황에서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으려면 감정 분리를 잘해야 한다. 자신의 감정을 다스릴 수 있는 피안의 방법을 스스로 찾아 위안받기도 한다.


해결 방법은 내 맘대로

첫째, ‘범사에 감사하고, 서로 사랑하라’는 성경 말씀으로 마음을 다독인다. 둘째, 긍정의 힘을 모으는 마인드 컨트롤로 모든 것은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란 단어를 생각하며 감정에 일희일비하지 않겠다는 맘을 다진다.

한발 더 나아가 셋째, 서양에서도 교양서적처럼 읽힌다는 <법구경>의 구절도 떠올린다.

‘미워하는 사람을 만들지 마라. 미워하는 사람은 만나서 괴롭다. 사랑하는 사람도 만들지 마라. 사랑하는 사람은 못 만나서 괴롭다.’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실생활과 밀접한 좋은 경구로 많이 알려진 <법구경>은 한 번 정도 읽어봄직한 기본 텍스트 같다.

너무 좋아해도 괴롭고, 미워해도 괴롭기에 사랑과 미움의 근원을 애초에 만들지 말라고 한다. 보태고 뺄 것이 없으니 마음의 욕심을 버리면 된다. 감정을 다스리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또 이건 순전히 생각의 자유로움에서 선택하는 내 방식일 뿐, 종교적인 인식과 결부시켜서 예민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살다 보면 인생살이가 동화 속의 왕자나 공주처럼 폼만 나는 일만 있을 수 없다. 느닷없이 걸림돌에 걸려 엉키고 부딪히기도 하고, 외부의 자극으로 욕망이 생기기도 한다. 삶은 그냥 살아지는 게 아니다. 정성을 들여야 한다.

이제는 늙지도 젊지도 않은 나이가 되고 보니 실리적인 측면에서 관대한 편이지만, 여전히 다가올 시간에 대한 기대감은 나만의 멋진 삶을 상상하기도 한다. 그 발칙한 상상력 때문에 맘고생을 할지도 모르지만, 또 한다 한들 그게 무슨 대수겠는가?

기본에 충실한 예측 가능한 상상력의 한계는 뻔하다. 거기에 이유를 달고 토를 달아 인색해질 것 까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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