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빛이 곱다.
햇살은 살금살금 다가와 반짝이다 부서진다.
나무 잎새의 흔들림은 바람결 따라 순간 멈추기를 반복한다.
삶의 속도를 잠시 머뭇거리게 하는 가을은 이렇게 다가왔다.
세상만사가 빠르다. 세월이 나이를 먹게 하더니 돌아보니, 이미 어른이 되어 있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순수함을 잊지 않고 살기를 바라지만, 삶은 인생의 더께로 얼룩덜룩 변해있다.
인생은 드라마나 소설처럼 쉽게 전환되지 않는다.
삶의 테두리가 질서 안에 있기 때문일까?
유감스럽게도 삶엔 공식이 없다.
우리는 삶 속에서 지혜를 터득하기도 하고, 세상 일이 마냥 순조로울 수도, 아름다울 수도 없다는 것도 알게 된다. 거기엔 모순과 갈등이, 시기와 질투가, 고난과 역경이, 행복과 불행이, 사랑과 이별이, 기쁨과 희망이 공존한다는 것도 함께.
누군가는 말했다.
'삶은 그 특별한 매력을 나타내기 위해 굴곡이 있는 것'이라고. 곱씹어보면 멋진 말이다.
그런즉, 그간의 복잡다단했던 굴곡진 경험들은 삶이 주는 매력이었다고 치자. 긴 서사가 한 줄로 요약되듯 삶의 의미가 간결해진다. 이것이 명쾌한 답은 아닐지라도 인정하면 그걸로 족하다.
삶은 하루하루의 연속이었고, 평범하고 사소한 것으로 채워지고 있으니까 사족을 달아서 어렵게 만들지 말자. 하고 보니 이 대목에서 생각난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석학이자, 극작가이며, 비평가였던 영국의 조지 버나드 쇼.
이름만큼 유명한 그의 묘비명에 적힌 문구이다.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우리말 번역은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원문대로 번역하면 다르게 표현되는 해석이 있지만 어쨌든, 그는 어떤 의미로 이런 말을 했을까?
삶이 허망해서? 아니면 때를 놓쳐서 후회하는 우를 범하지 말라는 경고를 하고 싶었을까? 해학적으로 해석하기에는 아쉽고, 뭉클해지는 뭔가가 있을 것 같은데 알 수 없다. 다소 엉뚱하지만 상상력과 미스터리한 여운을 주는 명언이다.
암튼, 인간의 공통적인 생각을 기준해서 한 번뿐인 인생, 무의미하게 보내지 말고 열정을 다하라는 말이라고 내 나름대로 풀어본다.
다른 이에게 좋은 에너지를 주는 사람은 인생을 잘 사는 사람이다.
긍정의 에너지를 지닌 사람을 만나고 나면 그 에너지가 전염된 듯 마음도 가벼워지고 즐겁다.
머리 좋고 똑똑한 사람은 매력적이다.
하지만 똑똑한 티를 내고 남용하는 사람을 보면 순식간에 매력이 떨어진다. 똑똑하고 머리 좋은 쓰임새를 유익하게 활용하여 능력을 발휘할 때면 돋보이지만 그 적정선을 넘기면 오히려 반감이 된다.
진정성과 인간미가 넘치는 사람에게는 울림이 있다. 꾸밈이 없는 자연스러움에서 드러나는 좋은 에너지가 푸석해진 마음까지 토닥거려줄 것 같은 포근함이 전해진다.
살다 보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성격도, 감정도 조금씩 변해가고 바뀌기도 한다.
예전에 나는 호불호가 분명해서 얼굴에 금방 티가 나는 통에 불편했지만, 언제부터인지 굳이 표정 관리를 안 해도 될 만큼 내색함이 자연스러워졌다. 나이 듦에 낯가림도, 까칠함도,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감정의 굴곡도 서서히 마모되어가고 있었다.
어쩌면 삶에 긴장감이 없어지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긴장감이 없으면 무슨 재미로 사나? 그래도 잘 산다.
한 템포 느린 우물쭈물한 아날로그적 사고가 녹록지 않아 애로사항이 발생하긴 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