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문턱에 걸쳐있던 가을 끝자락마저 사라진다.
더 이상 부드럽지 않은 바람은 겨울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가을걷이가 끝난 들녘의 덩그런 볏짚 덩어리의 황량함도, 맨얼굴을 드러내는 나뭇가지의 앙상함도 이별을 실감하지 못하건만, 겨울은 무임승차하듯 불쑥 자리를 틀었다.
언제나 그랬다. 남아있는 운치가 많은 11월의 향기는 여운이었다.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에 따르면 모든 생명체 중 인간만이 유일하게 자신의 존재 의미를 되묻는다고 했다.
이를테면, 하루의 일을 정리한다거나, 흘러간 시간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되짚어 보는 등, 행위에 대한 의미를 찾으려 한다는 것이다.
나도 가끔은 그렇다.
다들 바쁘게 사는 모습을 기웃거리다 보면 문득 내가 누구인지, 내가 서 있는 자리를, 내 마음을, 내 모습을 온전히 들여다보고 싶을 때가 있다.
삶이 가변적이긴 해도 그 속엔 보이지 않는 규칙이 존재한다.
기성품처럼 완성된 삶은 아니지만, 꼴라쥐 같은 삶의 조각들을 펼쳐서 나열해 봐도 별반 달라질 것이 없는 패턴이다.
내가 나를 보면 대충 이러하다.
심플하다는 게 단순함과 일맥상통한다면 난 대체로 심플한 걸 좋아한다. 삭막하고 건조함보다 경쾌하고 밝은 쪽으로.
무겁고 진지한 축엔 끼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깃털처럼 가볍고 부드러운 성향은 아니다.
감수성이 예민한 편도 그렇다고 두루뭉술하지도 않다. 애매하지만 차가움 60%에 따듯함이 40% 정도는 있어 뵌다. 남에게 피해받기도, 침해하기도 싫어한다.
혼자 있는 시간은 자유를 만끽하지만, 지속되면 싫증 낸다.
질투가 날 만큼 서정적이지 않지만, 감성적 분위기에 민감하고 짧은 안목에도 감탄한다.
불평보다는 자부심으로 살고픈 노년의 푸근함은 덤으로 누적시켜가는 중이다.
모든 하루는 삶의 중심이다. 매일매일이 이만하면 괜찮다 싶을 만큼의 만족감이 작은 행복이었다.
하늘 경계선이 종일 모호했다. 비와 바람, 그리고 어둑한 회색빛까지.
계절 끄트머리에선 언제나 이렇게 비가 내렸다. 또 다른 계절을 잇는 클리닝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