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나는 일도 가지가지

by 아녜스

목이 따끔거리고 입술엔 물집이 봉긋하게 솟았다.

며칠 체력을 소모한 탓에 몸 상태가 불량이다.

몸을 조금 혹사시켰다 싶으면 여지없이 반항하듯 반란을 일으키는 몸뚱이인지라

내 몸이긴 해도 이럴 땐 얄밉다.

비실대는 몸의 주기가 예전보다 빠르다.

억지로 버틸 게 아니라 바로 병원으로 가자 싶어서 동네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들어서니 이미 꼬마 환자들과 보호자, 어른 환자로 가득 차 20명 넘게 대기 중이었다. 토요일은 1시까지 진료라서 매번 이렇다는 간호사님의 체념한 듯 익숙한 표정이 안쓰럽게 보여 괜히 왔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비인후과 진료는 먼저 열을 재고, 입 안을 살피고, 콧속까지 진찰한다. 콧속으로 쑤욱 들어오는 진찰 기구는 겁도 나고 불편하여 저절로 오만상을 찌푸리게 만든다. 헉! 이번엔 아프기까지.

의사 선생님의 왜 이렇게 늦게 온 거냐 하는 한마디에 난 멀뚱한 표정이 되어 아픈 건 어제부터인데? 뭔 말씀? 이란 듯 쳐다봤다.

콧속에 염증이 심하니 2주 정도 치료하며 약을 먹으란다. 영상을 보니 콧속이 헐어 있고 염증도 군데군데 눈에 띈다.

보통 땐 멀쩡하다가 유독 아침에만 재채기, 콧물이 나와서 감기 후유증인가 싶었고 알레르기 비염 약도 챙겨 먹긴 했었는데... 어쨌거나.

정작 목 아프고 입술 물집 얘긴 제대로 꺼내지도 못하고 주사 한 대 맞고 병원 문을 나서니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건 뭐여? 치료받으러 왔다가 병 하나 더 달고 가는 이 느낌은...

사실, 이제라도 원인을 알아서 다행이다 싶었지만 몇 번 더 마주할 진찰 기구의 섬뜩함에 다시 겁이 다.


살면서 닥치는 큰일 앞에선 대담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사소한 것에 겁을 내는 것이 우습기도 하지만, 주삿바늘만 봐도 여전히 겁나고 무섭다. 그래서 병원에 가면 두려움에 목청껏 울어대는 아이의 심정을 백번도 이해한다.


아들이 어릴 때 병원에서 주사를 맞을 때도 정작 아들보다 엄마가 덜덜 떨면서 눈까지 질끈 감고 있는 통에 아들보다 못한 겁쟁이 엄마라고 의사 선생님의 놀림+핀잔까지 들었을 정도다. 고맙게도 울 아들은 나의 그런 면은 요즘 하는 말로 1도 닮지 않았다. 아이답지 않게 늘 의젓했고, 진득한 참을성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어린 아들의 기억 속에 난 어떤 엄마였을까? 생각해보니 강한 엄마의 모습이나 모범생 엄마의 모습은 없을지도 모르겠다. 아들은 어릴 때도, 커서도 듬직하고 성실하다. '혼자서도 잘해요'란 제목처럼 나무랄 데 없이 스스로 잘했던 아들에게 새삼 미안한 마음이 든다.

생물학적 나이와 인간적 성숙에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던 말이 떠오른다. 아무렇지도 않을 일에 지레 겁먹고 옛날 기억까지 소환시켜 주절주절 늘어놓은 모양새도 그렇다.

나이 들수록 건강 타령은 만성이 될 텐데 미리 심기 불편해질 이유는 없다. 전신이 무력하고 때맞춰 훌쩍거리는 코가 좀 안쓰럽긴 하다. 부실한 주인 탓이다.

먹는 약 대신 귀에 감기는 음악이래도 들어야겠다. 그래야 둔탁해진 머리가 가뿐해질 기미라도 보일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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