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가족의 추억 쌓기 1
미국 서부 로드 트립
여행을 다녀온 지 1주일이 지났다.
며칠은 시차 적응으로 컨디션이 오락가락했다. 차츰 나아지니 여행에 대한 흔적을 적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막상 시작하려고 보니 벌써 기억의 한계치가 느껴진다.
여행의 즐거움을 나눌만한 이야깃거리도, 쓸만한 정보도, 풍광을 공유할 만한 사진도 특별한 게 없다.
묻는 말에 또박또박 대답만 잘한 무뚝뚝한 두 남자와 다닌 여행에서 재미난 에피소드는 먼 나라 이웃 나라 이야기다. 개성인지, 생각이 깊은 건지 무표정의 대마왕들과 함께 다니니 나만 신나서 조잘대는 것도 사용량이 두 배로 들어 빨리 소진되곤 했다. 한마디로 조용한 가족의 추억 쌓기 쯤으로 보면 그림이 그려진다.
어쨌든, 인터넷을 검색하면 다녀온 여행지에 대한 친절하고 세세한 정보는 차고 넘친다. 그래서 지극히 피상적인 내용의 여행 리뷰임을 먼저 밝히고 시작해야겠다.
박사 후 연구과정으로 미국에 있는 아들이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2주 정도 휴가를 보낼 수 있다고 하여 남편과 나는 연말연시를 아들과 함께 보내기 위해 일찌감치 미국 여행을 계획했다.
차를 렌트하여 서부 로드 트립을 하기로 하고 세부 일정은 전적으로 아들에게 일임했다.
아들은 대학 시절부터 혼자서도 여행을 자주 다녀서인지 기대 이상이었고, 우리는 스케줄에 맞추기만 하면 만사 OK였다.
우리는 주섬주섬 쑤셔서 넣은 한가득 된 짐을 끌고 서울에서 LA로 향했다, 아들은 렉싱턴을 출발하여 신시내티에서 비행기로 갈아타고 LA로 와서 공항에서 우리와 합류하기로 했다.
미국 여행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1997년, 친정엄마, 작은언니와 조카, 나와 아들, 다섯 이서 미국 동부, 캐나다 여행을 마친 후, 그 당시 큰 형부가 위스콘신주립대학교에서 교환교수로 계셔서 큰언니네 가족이 매디슨에서 살고 있던 때라 그곳에 잠깐 머물다 온 적이 있다. 그게 벌써 22년 전 일이 되고 보니 새롭기 그지없었다.
이번 여행 순서는 LA에서 라스베이거스, 그랜드캐년, 샌디에이고, 롱비치, 다시 LA로 돌아와 렌트한 차를 반납하는 것이 1차 일정이었다.
2차는 아들이 사는 렉싱턴에 머물다가 3차는 텍사스주 샌안토니오에 사는 막내 아가씨네 집을 방문하기로 했다. 마지막은 우리처럼 연말연시를 기해 손주를 보기 위해서 달래스에 와 있는 큰언니와 조카랑 만나서 시간을 보내기로 한 빡센 일정이었다.
- 로스엔 젤러스 (Los Angeles, 캘리포니아주 남부) -
12월 23일, LA에 먼저 도착한 아들이 차를 렌트하여 공항으로 마중 나왔다. 날씨는 흐렸고 기온은 영상 10도. 추운 날씨는 아니지만 보통 때보다 낮은 기온이라고 했다. 다운타운으로 가는 길에 아주 가느다란 빗줄기가 차창에 스쳤지만 이내 갰다. 호텔은 할리우드 거리와 가까웠다. 아들은 이곳이 2번째 방문이지만 가이드 역할을 듬직하게 해내고 길도 잘 알고 있었다. 비결은 내비게이션 Google Maps.
-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서 스타들의 별 모양 플레이트를 구경하고, 저녁을 먹기 위해 LA 한인 타운에 있는 북창동순두부 집으로. 소문만큼 기분 좋은 저녁식사를 마치고 그리피스 천문대로 차를 돌렸다.
- 영화 <라라 랜드>, <터미네이터> 촬영지로 더 유명해진 그리피스 천문대(Griffith Observatory).
LA 도심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는 야경을 감상하기 위해서 많은 이들이 찾는 관광명소이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월요일은 천문대가 휴무였다. 일정상 연말연시와 맞물려서 휴관과 관람 제한으로 제대로 보지 못한 여러 곳이 된다. 어쨌든, 천문대 내부를 관람할 수 없어 아쉽긴 했지만, 뒤편 테라스로 돌아가니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수많은 조명과 아름답게 빛나는 천사의 도시 야경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서울과 다른 점은 다운타운을 제외하고 고층빌딩이 거의 없다.
천문대 앞 잔디밭 광장에는 멋진 조각이 탑처럼 세워져 있었다.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오, 캐플러, 허셀, 뉴턴, 히파르코스 위대한 천문학자 6명을 추모하는 조각상이다.
광장의 난간 부근에서 청춘을 상징하는 불멸의 아이콘 영화배우 제임스 딘을 만났다. 비록 청동의 흉상이었지만 반가웠다. 소싯적에 그가 주인공으로 나왔던 3편의 영화를 TV 주말의 명화에서 봤다. 명작이라고 해도 내 취향은 아니었다. 그래선지 24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한 그를 청춘의 우상처럼 치켜세웠을 때도 와닿는 느낌은 별로 없었다. 그랬던 그였는데 여기서 보게 된 흉상이 왜 반가웠을까?
- 부의 대명사가 된 비벌리힐스. 비벌리힐스 하면 영화 <귀여운 여인>의 줄리아 로버츠가 먼저 떠오른다. 대저택들은 눈요기로 드라이브하듯 휘익 지나가는 것으로 족했다. 영화나 매스컴에서 많이 접한 탓인지 느낌도 시각도 익숙했다.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새겨진 스타 플레이트, 그리피스천문대, 야경, 베니스 비치, 베니스 운하- 산타모니카와 연결된 베니스 비치(Venice Beach). 영화 <라라 랜드>의 촬영지로 많이 알려진 곳이다.
서핑을 즐기기에 좋은 해변이라서 서핑을 하는 이들이 많았다. 푸른 바다 파도를 타는 서퍼들의 멋진 모습에서 젊음과 자유분방한 에너지가 흠씬 느껴졌다. 이상한 건 드넓은 바다에 선박도 없고, 고기 잡는 배 한 척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갈매기도 눈에 띄지 않았다. 왜? 궁금하긴 했다.
- 베니스 운하(Venice Canals). 베니스 비치에서 약 5분 거리. 1900년 담배 갑부였던 에봇 키니(Abbot Kinney)가 이탈리아 베니스 운하에 반해서 만들었다는 인공적인 운하이다. 각종 오염과 쓰레기로 인해 한동안 버려진 공간으로 방치되었다가 다시 조성된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고 한다. 고급주택 단지로 도회적이면서 아기자기한 집들이 모여 있었다.
- 에봇 키니(Abbot Kinney) 거리. 현지인들의 핫 플레이스이다. 젊은 층의 트렌드를 알 수 있는 패션거리. 붐비지 않고 한적하여 쇼핑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기에 좋아 보였다.
- 인텔리젠시아 카페. 에봇 키니 거리에 위치한 젊은 층 사이에 인기를 끌고 있는 카페이다. 실내 천장이 높고 구조가 노출되어있어 약간 창고 실험실 분위기도 풍겼지만 벽면에 걸린 그림들이 인상적이었다. 커피는 맞춤형 주문이다. 우리도 부드럽고 고소한 카페라테를 마시면서 잠시 여유를 부렸다.
- IN-N-OUT. 미국에서만 체인점을 운영하고 있다는 수제 햄버거집이다. 아들이 우리에게 미국 전형적인 햄버거 맛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파서 데리고 간 곳이다. 양도 많고, 가격도 착했지만 기회는 한 번이면 족했다.
- LA 다저스 스타디움. 시즌이 끝났지만 혹시 야구장 투어가 가능할까 싶어 찾아갔지만 아쉽게도 시간이 맞지 않아서 경기장 외곽만 바라보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에봇키니 거리, 인테리젠시아 카페, IN-N-OUT, LA다저스 스타디움, 라스베이거스 거리- 라스베이거스 (Las Vegas, 네바다주) -
LA에서 라스베이거스는 자동차로 4시간 남짓 소요되었다. 남동부 사막 가운데 위치해 있다. 도박이 허용된 도시이자 네바다 주 최대의 관광도시 라스베이거스.
어둠이 시작했을 때쯤에 도착했는데 도시 전체가 휘황찬란한 불빛으로 가득 차있어 마치 신비의 세계가 펼쳐질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 벨라지오 호텔 앞 분수 쇼. 세계 3대 분수 쇼 중 하나라고 한다. 밤이 되니 분수대 앞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하고 차조차 댈 수 없을 정도였다. 19시부터 15분 간격으로 음악과 함께 화려한 퍼포먼스의 분수 쇼를 볼 수 있다. 도심을 드라이브하다가 운 좋게도 분수 타임과 맞아서 차 안에서 잠깐 볼 수 있었다. 분수 퍼포먼스도 다양했다.
- 호텔 카지노에서 슬롯머신. 초짜 셋이서 즐겼던 슬롯머신. 투자한 본전은 무시하고 남편이 한번 19달러를 땄다는 것에 싱글벙글. 우리끼리 가볍게 즐기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 글랜 캐년 (Glen Canyon, 애리조나주)
- Carl Hayden Visitor center at Glen Canyon Dam(칼 헤이든 방문자 센터, 글랜 캐년 댐). 글랜 캐년 댐의 규모가 기대 이상으로 거대했다. 콜로라도 강 상류에 이 댐을 건설하면서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인공호수인 파웰 호수가 생겨났다고 한다. 글랜 캐년 댐의 아치형 철교도 인상적이었다. 영화에서 봄직한 멋진 다리였다.
댐 부근에 지질과학과 댐에 대한 안내 전시물, 기념품, 전망대가 있는 센터가 마련되어 있는데 휴일이라 문이 닫혀 있어서 내부는 볼 수 없었다.
-콜로라도 강 물줄기가 협곡 사이로 흐르는 말발굽을 닮은 Horseshoe Bend(홀스슈 밴드)
글랜 캐년의 명물이다. 아름답고도 비현실적인 풍경이 펼쳐져 저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그랜드 캐년을 가기 전에 먼저 들리는 곳이라 인기가 높다고 한다.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산책로를 따라서 약 20-30분을 걸어가야 볼 수 있다. 그곳은 고도가 1200-1300미터나 되었다.
글랜 캐년 댐
홀스슈 밴드 주차장
홀스슈 밴드. 정면에서 보면 말발굽 모양처럼 보인다.-그랜드캐년 (Grand Canyon, 애리조나주)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 4억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콜로라도 강이 침식되어 생긴 거대한 협곡. 애리조나주 북쪽 경계선 근처 파리아 강어귀에서 시작하여 네바다주 경계선 근처 그랜드 위시 절벽까지 이어진 수많은 협곡과 고원지대가 모두 그랜드 캐년이다.
1919년 그랜드 캐년 국립공원으로 지정. 미국인들이 가장 가보고 싶은 관광지 1위. 그랜드 캐년 국립공원 지역에는 다양하고 풍부한 동식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South Rim과 North Rim(5월 중순부터 10월 중순까지 개방) 두 지역으로 나뉘며, 보이는 협곡의 너비는 200m에서 30km라고 한다.
유타 주의 협곡을 지나서부터 날씨가 우중충해지더니 간간이 눈발이 흩날렸다. 드넓은 광야에 아득히 보이는 지평선까지 끝없이 이어지는 직선 도로를 달렸다. 그랜드 캐년이 가까워질수록 엄청난 설경이 펼쳐지고, 서울에서 볼 수 없었던 하얀 눈을 시리도록 봤다. 고도도 2200미터 가까이 올라갔다.
숙소는 YAVAPAI LODGE (야바파이 로지).
성수기가 되면 하늘의 별 따기만큼 잡기 어렵다는 공원 안에 있는 그곳을 숙소로 정해뒀다. 그런데 목적지 20마일을 앞두고 우리는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맞아야 했다. 폭설로 인해 매표소 입구부터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시간은 이미 어둠이 밀려올 오후 5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여기서 다시 3시간 이상 걸리는 150마일을 돌아가야 숙소로 갈 수 있다고 하니 기가 막혔다.
아니 뭐 이런 경우가!! 입구에서 통제할 게 아니라 사전 안내표시를 몇 Km전방에 세워놓든가 해야지 이런 불친절한 xx들. 속으로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애리조나주로 접어들면서 남편이 2시간 정도 운전한 것을 제외하고 오랜 시간을 아들이 운전한 터라 걱정이 앞섰다. 아들은 점점 어두워지니 아예 운전대를 우리에게 넘길 생각조차 없어 보였다.
우리는 초행길의 긴장감과 진한 어둠 속의 눈바람을 뚫고 밤 8시가 넘어서야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로지는 실제 잠자는 장소와 체크인하는 곳이 별도로 떨어져 있었다. 간단한 요기 외는 저녁도 먹지 못했는데 마트가 밤 9시면 닫는다고 했다. 부랴부랴 먹을거리부터 사서 챙겼다.
숙소는 바깥에서 보기와는 달리 아늑했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설익은 컵라면도 그날만은 땡큐였다.
대자연의 웅장함과 경이로운 대협곡 그랜드 캐년의 신비로움과 마주하다.
- 겨울의 그랜드 캐년. 20억 년에 걸친 역동적인 지각활동의 결과인 협곡의 수평단층의 모습은 환상적인 빛깔을 띠고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구름에 가려 일출의 광경은 놓쳤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햇빛과 어우러진 장엄한 협곡은 더욱 선명해졌다. 형용할 수 없는 신비감이 느껴졌다.
경비행기를 타고 상공에서 그랜드 캐년의 웅장함을 제대로 봤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크게 남기도 했지만. 암튼, 어제 눈이 많이 내린 탓에 승용차가 들어갈 수 있는 다른 뷰 포인트들도 입구부터 차단을 시켜놓은 바람에 둘러볼 수 있는 곳마저 제한되어 있었다.
그나마 위치가 좋은 숙소를 잡아둔 덕분에 야바파이 포인트(Yavapaipoint)와 마더 포인트(Matherpoint) 두 군데라도 편히 볼 수 있었던 것이 다행으로 여겨졌다.
다음 기회엔 경비행기를 타고 감상할 수 있기를 기약하며, 우리는 샌디에이고를 향해서 고고씽~.
그랜드 캐년을 출발하여 장장 8시간이 소요된 장거리 운전이었다. 셋이서 교대로 운전은 했지만 이럴 땐 든든해지는 두 남자가 있어서 내 역할은 미미했다.
도로에서 만나는 캠핑카의 행렬은 그들의 여행 문화의 단면을 본 듯 자유로움과 여유를 느끼게 했다. 애리조나주의 사막 같은 삭막한 벌판에는 거목처럼 자란 선인장들이 마치 서부영화의 한 장면을 본 듯 오버랩되었고, 푸석한 노랑 주황빛 땅에 자라는 잡초마저 황량함을 더하고 있었다.
애리조나주에서 흔히 보는 거목처럼 자란 선인장
애리조나주의 소도시에서 점심을 해결했던 Nichols WEST
샌디에이고로 가는 도중에 나타난 모래사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