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흐르듯 지나간 자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힘들었을 세월은 그렇듯 수월하게 끝을 내고 멈춘 시간은 하얀 천으로 드리워져 막이 내렸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무슨 일이고 한바탕 회오리치듯 휩쓴 자리가 정리되기까지는 시간이 명약이었던 것 같다. 슬픔도, 아픔도, 힘겨움도, 마음속의 상실감도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신기하게도 벗어나 있었다.
93세의 일기로 생을 마치신 시어머니를 보내드리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했다.
노환이었던지라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마지막 임종은 지켜드리지 못했다. 죽음의 시간은 누구도 알 수 없기에 늘 그렇게 갑작스러운 일이 되는가 보다.
고단한 삶을 마친 어머님의 임종 후 모습은 편안히 가신 듯 평온해 보였다. 마지막 가시는 길을 곁에서 지켜드리지 못해 죄스러운 맘은 크지만 짧은 시간의 고통 속에 편히 눈을 감으셨다는 말에 슬픔 앞에서도 안도감이 들었다.
12월 초. 따뜻한 날, 시어머니는 그렇게 먼 길을 떠나셨다.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고 하지만, 난 시어머니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당신의 자랑이요, 자부심으로 여겼던 큰아들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내게도 아들 못지않게 주셨다. 그 흔한 고부 갈등 없이 지낼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심성 고우셨던 어머님 덕분이었다. 나이만 먹었지, 철딱서니 없는 며느리의 부족한 점을 나무란 적도 없었고, 제 잘난 척해대며 당신 아들 흉을 봐도 싫은 내색도 없이 아들 편이 아닌 늘 내 편에 서 주셨다.
지혜로우시고 조용한 성격이셨다. 자그마한 체구에 젊었을 때부터 마을의 큰일을 도맡아 하셨을 만큼 강단지고, 야무진 여장부 기질도 갖고 계셨다. 형편은 그리 넉넉지 않은 고단한 인생살이였지만 자식들에게도, 남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한평생 올곧게 사시다 가셨다. 부디 평안하소서!
어머님을 생각하면 아쉬움과 회환이 밀려오지만, 슬픈 시선의 사이에도 틈바귀가 생기는 것 같다. 정작 보내드린 슬픔이 가슴을 후벼 파는 아픔은 아니었나 보다. 무딘 감정과 무딘 이성이 뒤섞인다.
삶의 여정 속에 의지했던 부모님의 한 세대가 이렇게 지나간다고 하는 인생의 수레바퀴 그 덧없음에 숙연해진다. 이 세상, 우주, 하늘 위의 천체를 생각하면 인간은 작은 모래알에 불과할 뿐이요, 우리의 짧은 삶은 한 번의 단역에 불과하겠지. 그래서 그 어디에서 결론을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비 오는 날, 창밖으로 비치는 토막 풍경에 물방울이 방울방울 달려 있다. 회색과 흰색의 혼합색이다.
완성되지 않는 기억이 옴니버스의 앨범처럼 다가와 내 곁에 머문다.
시부모님의 부재에 대한 알 수 없는 허한 마음을 이제야 서서히 실감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삶을 마치 경주라고 생각하는 듯해요.
목적지에 빨리 도달하려고 헉헉거리며 달리는 동안 ,
주변에 있는 아름다운 경치는 모두 놓쳐버리는 거예요.
그리고 경주가 끝날 때쯤엔 자기가 너무 늙었다는 것,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는 건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지요.
- 진 웹스터의 < 키다리 아저씨>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