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도 분위기를 탄다

- 굿바이 가을

by 아녜스

이도 저도 별 뾰족한 수가 없는 오후 시간이면 산책 삼아 아파트 단지를 돌곤 한다.

멀리 나가지 않아도 아파트 단지 한가운데에 계절을 만끽할 수 있는 멋진 장소가 있음에 새삼 감동한다.

보기엔 좋았어도 무심결에 지나쳤던 조경들이 오늘따라 오색 파노라마를 연출하고

나를 반기고 있었다.

멀어질 수도, 가까워질 수도 없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조근조근 이야기 나누 듯 한참을 마주했다.

손을 뻗으면 바람에 나부끼는 갈대의 촉감이 느껴진다. 알몸을 드러낸 바위폭포는 말라버린 바닥의 빈자리가 허전해 보이고, 길섶의 빛바랜 꽃들도 지쳐 보인다. 앙증맞은 키 작은 나무들의 잎새 틈새로 살랑거리는 바람이 힘없이 다가와 내 곁에 머문다.

가을과 겨울이 교차하는 길목엔 바람도 분위기를 탄다.

옷깃을 여밀 정도의 스산함은 저무는 가을과 딱 안성맞춤이다.

풍경은 나를 바라보고 나는 풍경을 감상한다.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던 화려한 날은 짧았다.

붉게 물든 단풍들의 유희는 잔상을 남기고 이별을 재촉한다.

산책길에 만난 낙엽들은 바스락거리며 신음소리를 내고, 깊어진 가을은 떠날 채비를 끝낸 듯했다.

가고 오는 계절의 질서는 이렇듯 미세한 떨림 속에서 어김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벌써 입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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