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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M코칭랩 Feb 20. 2019

내게 맞는 직업 찾기

평생의 이유편

My Career Story


1990년대 캠퍼스 노천 광장.

친구와 둘이서 밤하늘을 올려다 보며


‘우리 10년 후에도 이런 고민 하고 있을까? 그때도 고민하고 있다면 참 불행할 것 같아’


무엇을 하고 싶은 지 무엇을 해야 할 지, 20대 초반의 대학생은 10년 후 자신의 모습에 대하여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이때만 해도 이 날의 고민 해결은 10년이면 충분할 줄 알았지만 현실은 10년에 또다시 10여년을 더하여 그날로부터 20여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서야 스스로에게 잘 맞는 일을 찾았습니다. 그 시간들은 종종 낙심하고 무기력을 느끼고, 구덩이에 빠지는 듯한 느낌의 연속이었으며 늘 가지 못한 길에 대한 그리움과 미련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우스운 것은 내 갈 길도 모르면서 가지 못한 다른 길에 대한 곁눈질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가슴 한 켠에 묵직하게 자리하고 있는 그 ‘모르는 길’ 에 대한 갈망은 끊임없이 결핍감과 불만족을 주었고, 그것들이 종국에는 스스로를 새로운 길로 이끄는 동력이 되었습니다. 


독자 여러분께도 그 실체를 알 수는 없으나 무엇인가에 대한 그리움과 미련이 있다면 그것들이 여러분에게 새로운 삶을 선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현실화는 뜻하지 않은 외부의 변화 또는 충격에서부터 시작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인생 어느 골목에서 맞닥뜨리는 변화는 또다른 나를 찾아가는 기회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꼬꼬마 시절, 필자는 우주와 로봇을 꿈꾸는 소녀였습니다. 


아버지가 사다 주신 망원경으로 밤하늘을 올려다 보고, 흰 도화지에 조종석을 그리고서 그 안에서 우주선을 조종하는 꿈을 꾸곤 했습니다. 한때는 과학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과학자가 되어 ‘냄새가 나는 라디오’를 만드는 꿈을 꾸었습니다. 명화극장을 즐겨 본 소녀는 자리에 누운 채 천정에 매달려 있는 TV를 통해 영화를 보고 싶었습니다. 그로부터 수십년이 지나 소녀의 꿈은 4D 시스템으로, 벽걸이 평면 TV로 현실화 되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소녀는 중학교를 들어가면서 제도권 입시 교육 하에서 더 이상 우주와 로봇과 냄새 나는 라디오를 꿈꾸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그렇게 그렇게 고등학교를 지나 대학교를 들어오고 졸업하고, 졸업을 얼마 남겨 두지 않고서 밤하늘을 올려다 보며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다른 거대 로봇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필자 생각 최강 로보트 우주로봇 킹.. 고유성의 작품으로 꼬꼬꼬꼬마 시절 로봇에 대한 첫 환상을 심어준 만화이다>

해외무역과 국내 마케팅으로 직장 생활을 시작한 필자는 IMF로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은 것이 애니메이션 PD 였습니다. 지금까지 했던 일과는 전혀 다른 애니메이션 PD라! 하지만 어릴 적부터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던 상상 소녀 출신에게는 무척이나 재미있는 일이었습니다. 방송 일정이 목숨 다음 다음쯤으로 중요하게 여겨지는 일을 하면서 처음 3년 정도는 정말 정신없이 일을 헸습니다. 야근은 기본, 밤샘 작업도 수시로 했지만 방송으로 내 이름이 올라가는 짜릿함, 내가 쓴 대본대로 성우가 말하는 그 매력은 꽤나 상당했습니다. 그러나 애니메이션은 아이들이 점점 줄어 드는 인구 구조의 변화와 인터넷, 게임 등의 다른 강력한 경쟁자들의 대두로 점차 시들해져갔습니다. 업계의 파이가 작아져서 비전이 점점 줄어든다는 점도 있었지만,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어떻게 하면 관련 상품을 더 잘 팔 수 있도록 기획하고 시나리오를 쓰고 PPL를 하는가 하는 고민이 저와는 사실 잘 맞지 않았습니다. 


결국 ‘아기공룡둘리’를 거의 끝으로 오랫동안 몸담았던 콘텐츠 업계를 떠났습니다. 솔직하게는 떠나려는 마음은 없었는데 직무 범위를 넓히고자 하는 욕심에 일이 꼬이다 보니 아예 떠나게 되었습니다. 우리 삶이란 것은 뭐랄까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나이 마흔이 되어 뜻하지도 않았고, 준비도 전혀 되어 있지 않은 급(急) 실직자가 되자 저는 방향을 완전히 잃어 버렸습니다. 


아니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살면서 인생의 – 직업적인 – 방향을 가지고 있었던 적조차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고, 넘어진 김에 쉬어 가자 라는 생각과 앞으로의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고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1990년대 캠퍼스 노천 광장에서의 제 모습이 다시 선명하게 떠올랐던 것입니다. 


<미국의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 마지막 부분. 먼훗날 난 어디에선가/ 한숨지으며 이런 얘기를 할 것이다/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그리고 나는…/ 사람이 적게간 길을 택했고/ 그로 인해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그래, 이제 진짜 내가 하고 싶고 잘할 수 있는 일, 그리고 자신을 계속 성장시킬 수 있으며 가치와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일을 찾자! 라는 대전제를 가지고 고민 끝에 분명한 두 가지 기준을 세웠습니다. 1) 하고 싶은 일을 찾게 된다면 나이 탓을 하지 말자 2) 아무리 힘들어도 이전 직업인 콘텐츠 업계로 돌아가지 않는다. 주위에서는 재취업이 힘든데 이전에 하던 일을 다시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특히 예전 직장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최선일것이다 라는 조언을 진심을 담아 해주었습니다. 


어느 날, 이전 직장 동료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기존과 동일한 급여와 조건으로 3개월만 아르바이트를 하면 안되겠느냐? 돌아가지 않겠다는 기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직 기간이 길어지면서 나의 결심을 크게 흔든 달콤한 유혹이었습니다. 고민할 시간 이틀을 원했고, 그 이틀 동안 제 일생의 방향타를 끝내 바꾸게 한 깊은 고민을 했습니다. 비록 지금 힘들다고 하여 나를 끝끝내 만족시키지도, 성장시키지도 못한 그곳으로 돌아가지 않겠다. 


몇 번을 돌이켜 보아도 참으로 잘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실직 후 3개월 동안 방향도 없이, 무엇 하나 제대로 하는 것 없이 이런저런 미련을 가진 채 세월을 보내고 있다가 그제서야 저는 정신이 반짝 들면서 본격적인 새로운 일 찾기 프로젝트에 돌입했습니다. 그것은 배수의 진이었으며, 되돌아갈 배를 불살라 없애 버린 결정이었기 때문에 저는 제로 베이스에서 시작했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지?’

‘나는 어떤 특성의 사람이지? ‘


수십 년을 살아 오는 동안 저 자신에 대하여 그토록 치열하고도 직접적으로 고민하고 탐구했던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진지한 자기 탐구가 정말 의미 있었던 것은 ‘결론’을 도출해냈다는 사실입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은 있지만 결과를 만들어 내지 않으면 그냥 ‘반’ 일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나머지 ‘반’을 만들어 내어 온전한 ‘하나’를 만드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제가 커리어 코치가 된 것은 지루하고, 불안과 의문으로 가득한 인생 전환기의 모호함을 버티고 결국은 포기하지 않고 나머지 반을 이루어 낸 것이었습니다. 


커리어코치가 된 구체적인 과정은 이전 글에서 밝혔습니다만, 중요한 것은 바로 눈앞의 단계에 집중하여 나무만을 보는 행동으로는 실패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방식은 선택의 폭을 꽤나 제한하게 됩니다. 특히 중장년으로 갈수록 연령으로 인한 현실적 제약을 많이 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 꿈이라고 할 수도 있고 장기 목표라 할 수도 있고, 비전이라고 할 수도 있는 숲을 그리는 작업이 가장 중요합니다. 


숲은 단번에 만들어 지지 않지요? 수많은 나무들이 있어야 숲이 되고, 그 나무들은 어린 묘목들로 시작됩니다. 그 묘목들은 연약하고, 상품적 가치도 별로 없어서 물 주고 방역방재도 하며 키워가야 합니다. 어떤 것들은 크지 못하고 도중에 시들거나 뿌리를 굳건히 내리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 그러나 일부를 제외하면 각기 크기는 조금씩 다르겠지만 쑥쑥 성장을 할 것이고, 어느 샌가 숲을 이루고 있을 것입니다. 이 나무들이 자라서 숲이 될 것이라는 비전과 꿈이 있다고 한다면 설사 도중에 제대로 크지 못하는 나무들이 있다고 해도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직업 비전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대학원에 가서 또! 공부를 할 것이라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대학 교육으로 충분하다고 여겼으며, 필요한 대부분의 것을 이미 배우고 알고 있다는 오만이 있었습니다. 커리어 컨설팅 일을 시작하고도 한참 지나서야 진학을 했습니다. 첫학기는 정말 대충 아무 생각 없이 다녔습니다, 2학기째는 조금 제대로 다녔습니다. 3학기가 되어서야 대학원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며 계획하지 않았던 새로운 일들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일들은 저를 또다시 업그레이드 시켜 줄 것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인생은 계획대로 되는 건 아니었다’


영화<당신이 잠든 사이에>는 전철역 매표원이었던 여주인공이 선로에 떨어져 의식을 잃은 한 남

자를 구합니다. 그는 짝사랑 하던 승객이었습니다. 여주인공은 마치 운명처럼 짝사랑 남자와 결혼식장까지 정신 없이 흘러갔지만 마지막 순간에 진짜 사랑을 찾는다는 이 영화는 일단 재미있고 따뜻합니다. 그리고, 인생이란 우리의 계획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도 주고 있습니다. 


<미국. 1995년작. 정말 강추하는 로맨틱 코미디이다. 산드라 블록과 빌 풀만의 ‘당신이 잠든 사이에’ 이 작품과 함께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이 함께 많이 나오는데 나는 개인적으로이 영화를 훨씬 좋아한다.>

무엇인가를 시도할 때, 일단은 처음 ‘반’을 시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다음에는 나머지 반을 채워 가야 하는데, 그 노력은 시도하다 보면 <당신이 잠든 사이에> 처럼 전혀 계획하지 않은 대로 흘러가기도 합니다. 그런데 계획되지 않았던 노력과 시도들이 의미 있는 결과로 우리를 이끌어 갑니다. 우리 인생의 나비효과가 무엇일런지는 모르겠지만 날개짓을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그 날개짓은 우리를 새로운 세상으로 이끌어 갈 것입니다. 


준비 없는 실직자로 인생의 위기를 맞이하여 그때까지와는 다른 태도와 방식으로 맞섰더니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 새로운 일은 자신에 대한 깊은 탐구의 산물이었기떄문에 도중도중의 작은 고난과 부족함은 저를 그다지 좌절시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성과도 비교적 빨리 났습니다. 결핍감과 불만족도 대폭 줄었으며 돈보다 더 높은 직업 가치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공부를 더 하고 싶어졌고 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뒤처지지 않을 정도의 학위를 따는 것이 처음 목표였지만, 막상 공부를 하고, 나보다 훌륭한 사람들, 다양한 생각들을 만나다 보니 저의 생각은 확장을 하게 되었고, 계획하지 않았던 도전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대단한 도전은 아니지만 또다시 묘목을 심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묘목은 어느샌가 자라서 저의숲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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