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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끼와 핫도그 Oct 27. 2020

숨쉬기 운동러에서 벗어났다

몸을 쓸수록 더 운동하고 싶어지는 마법

작년 초까지 나는 숨쉬기 운동을 주로 하는 사람이었다. 여지껏 숨만 쉬어도 잘 살았는데 30대가 되자 슬슬 체력이 떨어지는 게 몸으로 느껴졌다. 언젠가 동네 뒷동산 산책 코스를 두시간 정도 걸었다. 그날 저녁에 바로 몸살에 걸리고 나서야 체력꽝'이 된 걸 알았다. 이런게 노화구나. 위기감이 싸악 나를 감쌌다. 불안은 잠시 뿐이었다. 말로만 운동을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 움직이지 않았다. 간간히 운동하려는 시도를 했지만 대체로 돈을 날리고 끝났다.


누구나 운동 학원에 조공을 바친 돈지랄의 역사가 있는 것처럼 나에게도 학원 등록 후 그만두기의 역사가 있다. 5대 1로 진행되는 필라테스에 등록해서 두번인가 세번인가 가고 더이상 나가지 않았다. 왕초보인 내가 적응하기에 반에 고인물이 너무 많았다. 존버했으면 결과가 달라졌겠지만 유연성이라고는 0에 수렴하는 초보에게 버틸만한 멘탈이 없었다. 처음 낸 돈 50만원을 그대로 센터에 헌납했다. 그 필라테스 학원에서는 최근까지 할인 홍보 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했다. 나같은 회원들이 많아야 센터가 굴러가겠지 생각하면 웃프다. 킥복싱도 조금 다니다가 오래 못가 그만두고, 수영은 더 짧게 다녔다. 시립 체육관에서 운영하는 헬스장은 등록해서 잠깐 기웃기웃하다가 멈췄다. 뭐든 하다 마는 병이 있다면 나는 중증 환자로 중환자실에 입원해야 한다.


쭉 숨쉬기 운동만 하고 살았다면 이 글을 쓸 일이 없었을 거다. 지금은 다행스럽게 운동이 일상으로 들어왔다. 작년에 신년 계획 세울 때 처음으로 '운동'이 목표 한자리를 차지했다. 계획 덕분인지 정말 꾸준히 운동하는 사람이 되었다. 헬스라는 운동에 정착하면서 가능했다. 헬스는 진입장벽이 높은 운동이라 꿈도 안꿨는데 이미 여러번 피티를 받았던 동거인 S의 권유로 헬스 피티를 시작하면서 운동의 참맛을 느꼈다. 1년 남짓 받았던 피티가 끝나고 나니 이제 운동을 하지 않으면 좀이 쑤셔서 견딜 수 없다.


트레이너가 없이 혼자하는 운동의 문제점은 꾸준히 하기가 어렵다는 거다. 굳이 비싼 돈을 내면서 피티를 받는 이유가 자세를 제대로 배우기 위해서도 있지만, 강제로 운동하기 위해서이다. 일단은 나를 믿고 트레이너 없이 운동하기로 했다. 재밌는 운동을 찾으면 자발적으로 하고 싶어지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그렇게 찾은 꾸준히 하게 된 운동들이 '등산'과 '링피트'이다.


등산은 단점이 거의 없다. 가성비가 좋고 전신을 쓰는 유산소 운동이다. 김밥이랑 물을 챙겨서 산에 오르면 3시간~5시간 정도는 땀을 뻘뻘 흘릴 수 있다. 계절의 변화를 몸으로 느낄 수 있고 좋은 공기도 마실 수 있다. 요즘엔 젊은 사람들도 산에 많이 오른다. 인스타를 둘러 보면 등산이 유행인 게 실감난다. 아직까진 산에서 마주치는 어른들이 우리를 보며 기특해하는 걸 느낄 수 있다. 그분들에게 몇 번 물이나 음식을 얻어먹기도 했다. 하산해서 동네 맛집을 찾아가는 것도 즐겁다. 등산에 재미를 붙이니까 어른들이 왜 그렇게 등산 타령을 하셨는지 이해가 간다.


친한 친구들과 등산 모임도 결성했다.


등산의 유일한 단점 하나는 날씨를 타는 운동이라는 거다. 비가 오면 못가고 눈이 오면 장비를 따로 챙겨야 한다. 나는 너무 추워지기 전까지만 열심히 산에 오를 생각이다. 겨울 산행의 즐거움을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쫄보는 미끄러운 산을 타는게 무섭다. 등산 고수이신 부장님이 눈 덮힌 산에서 죽을 뻔한 이야기를 들려주신 뒤로 겨울 산은 무섭다가 머릿속에 박혀 버렸다. 나중에 산에 오르는 게 자신이 있어지면 겨울 산행을 위한 짐을 챙기고 있겠지만 아직은 아니다.


'링피트'는 닌텐도에서 발매한 게임형 운동이다. 등산이 공짜인데 반해 링피트는 초기 비용이 들어간다. 닌텐도 스위치 본체가 필요하고 링피트 게임을 실행할 수 있는 팩과 기구를 사야 한다. 프리미엄이 붙지 않음 정품 가격으로 도합 46만 3천원이다. 게임에 흥미가 없는데 순전히 운동을 위해서 닌텐도를 샀다. 남들은 홈트 기구를 산다는데 나는 게임기를 샀다.


사진에 보이는 링콘으로 상체 운동을 한다.


게임의 구성은 단순하다. 처음에 주인공이 등장하고 몬스터를 잡으면서 퀘스트를 깨나간다. 일반 게임과의 차이점은 보통 손가락의 움직임으로 몬스터를 때려 잡는다면, 링피트는 전신 동작의 움직임으로 몬스터를 때린다. 자세가 정확하지 않으면 타격률이 떨어지거나 공격이 안 먹힌다. 땀을 흘려가며 동작을 했는데 타격이 best가 안 나오면 서운할 때가 있다.  


게임기로 운동을 해봤자 뭐 얼마나 운동이 되겠냐는 의구심이 무색하게 굉장히 운동이 된다. 헬스장에서 격하게 운동하면 가끔 이명이 들렸는데 그 정도 수준까지 운동할 수 있다. 플랭크, 스쿼트, 마운틴 클라이밍 같은 대표적인 맨몸 운동 몇 십 가지가 타격 스킬로 들어가 있고, 기본 주행이 제자리 뛰기라 끊임없이 뛰어야 한다. 고작 제자리 뛰기인데 숨이 차서 헉헉 거리는 나를 발견하면 반성하게 된다. 링콘을 이용해서 상체 운동을 할 때 상체 근력이 없어서인지 생각보다 몹시 힘들다.


링피트의 단점은 크게 두 가지다. 끝판이 있는 것과 무게를 칠 수 없다는 것. RPG 게임이니 끝판이 있다. 23개의 월드를 깨고 나면 스토리는 다 본 셈이다. 익스트림 모드로 들어가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지만 아무래도 처음 만큼의 재미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다른 단점으로 운동에 익숙해지면 무게를 늘려가는 방식으로 부하를 높여가야 하는데 그게 불가능하다. 게임 내에서 운동부하를 30까지 높일 수 있지만 무게와는 관련이 없다. 무게 운동을 하고 싶으면 다른 홈트 기구를 사서 병행해야 한다.


보통 실제 시간으로 1시간 반씩 게임을 진행하면 120번 정도에 끝판을 깰 수 있다고 한다. 90분이면 게임 상에서는 40분 정도 플레이 한 걸로 기록이 나온다. 나는 한번 플레이하면 게임 기록으로 20~30분 정도씩 하니까 끝판을 보려면 아직 멀었다. 최종 보스 깨기 전에 링피트 2가 나올테니 할 운동이 무궁무진하다. 링피트를 다 하면 닌텐도 피트니스 복싱으로 넘어가서 운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운동이 재밌어진 다음에야 숨쉬기 운동러에서 벗어났다. 어떤 운동이든 자기에게 재밌는 운동을 찾는 게 중요하다. 운동이 즐거워지고 체력이 붙으면서 새로운 종목을 배우고 싶어졌다. 다음에는 배구나 풋살 같은 구기 종목에도 도전해 보고 싶다. 숨만 쉬던 시절에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운동들이다. 운동을 하면서 내 세계가 넓어지는 걸 느낀다.


written by 토핫 (핫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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