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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ilet Sep 26. 2019

널 왜 이제서야 만났을까

유부남 섹스 사건의 전말

많은 사람들은 삶에 리허설이 없기에 더 흥미로운 것이라 말한다. 나도 어느 정도 동의하는 바지만, 갑작스러운 사건 사고에 대한 대처는 여전히 삶을 살아내는 데 버거움을 주고, 나아갈 길을 잃게 만든다. 후회해도 소용없고 선명한 기억일수록 괴롭다. 그렇지만 어리석은 일에 잇따르는 결과 역시 시간이 지나면 제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끝이 난다. 이것이야말로 리허설 없는 인생의 가장 다행인 부분이며 숙명이라 할 수 있겠다.

그때 내가 몇 살이었을까. 하고 생각해보면 쉽게 대답을 주는 장면이 있다. 입원실 내 침대에 걸려 있는 이름과 나이. 26살 김경희. 지금 생각해보면 26살은 그에게 내 모든 것을 주기에 아까운 나이였다. 7년이 지난 지금, 내가 그의 나이가 돼보니 알겠다. 그는 나보다 나이가 많았지만 어른은 아니었다.(내가 그렇기에) 그는 가장 친한 친구에게 나에 대해 말했다고 했다. 나 7살 어린 애랑 섹스했다고 자랑 비슷하게 지껄인 모양이다. 그 친구 역시 부러워하며, '야 니 마누라는?'이라고 반문했다. 당연히 모르지. 모르면 괜찮아. 그의 대답이다. 그 유부남은 회사 내 직속 팀장이었다. 유난히 야근이 많았던 회사인데, 끝나면 새벽 2시, 5시가 일상이었다. 그럼에도 퇴근하면 시간에 상관없이 둘이 술을 자주 먹었고, 남녀와 술이 만나면 으레 그렇듯 지극히 개인적인 얘기를 서슴없이 꺼내며, 꽤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그렇게 숱하게 취한 밤 중 어느 날, 그는 자신이 부인과 섹스리스라는 얘기를 꺼냈고, 결혼 생활에 대한 불만족스러움을 고백 비슷하게 뱉었다. 난 '이런 얘기까지 하게 되는 건가'라고 속으로 생각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그의 얘기를 들었다. 남녀 관계에서 성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도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물론 나도 당시 남자 친구가 있었고 롱디였기 때문에 몸이 멀어지면 마음이 멀어지는 것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 섹스리스 얘기를 꺼낸 당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저 숱한 밤 중 하루 함께 택시를 타고 집에 가던 중 내가 먼저 그에게 키스를 했다.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술을 많이 마셨었고 우리는 순식간에 엉겨 붙었다. 우리 집 앞에 겨우 내렸을 때 나는 울고 있었다. 아무리 리허설이 없는 인생이라지만, 아무리 술에 취했다지만, 나는 이 만남이 행복과는 정반대의 이야기로 흘러갈 것이라는 것에 직감했다. 울고 있던 나를 한참 달래던 그는 '너네 집에 들어가자'라고 말했고 난 그를 데리고 들어가 섹스리스였던 그와 섹스에이블(able)을 실현했다. 그와의 관계는 꽤 좋은 편이었다. 그는 거의 감동의 상태에 이른 것 같았다. 워낙 오랜만인 데다 젊고, 어리고, 회사 후배인 점에서 더 흥분된다는 건 숨길 수가 없었나 보다. '내가 너무 빨리 결혼했나 봐' 그는 애가 3살이었다. 연극 전공이었던 그는 딱히 직업도 없는 자신과 결혼해 준 부인에게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지만, 성적으로 끌리지 않는다고 투정을 부렸다. 그렇게 한번 관계가 형성된 후 틈만 나면 우리는 밤새 섹스를 즐겼고 그의 만족치는 최고에 달했다. '너를 왜 이제서야 만났을까. 좀 더 빨리 알아서 너랑 결혼했으면 좋았을걸.' 달달한 것을 입에 물려주었지만, 언젠가 사탕이 작아질 것이라는 것을 아는 어린애처럼 울상이 되기도 했다. 그럼 나는 말했다. '시간이 지나고 언젠가 당신이 지하철을 타고 지나가면서 창밖을 보다가 내가 사는 역이 나오면 날 잠시 떠올리겠죠. 그 계집애랑 죽였었는데. 뭐하고 사나. 이렇게 말이죠. 우린 결국 끝이에요. 그러니깐 지금 나한테 집중하세요.'

어떤 사람이 그랬다.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으면 계속 잘해주라고. 그러면 본성이 나온다고 말이다. 3개월도 되지 않아 그는 선을 넘기 시작했다. 용돈을 다 썼다며, 식사 비용은 물론 모텔 비용까지 대부분을 내가 감당해야 했다. 와이프가 카드 내역을 보고 눈치챌 것 같다는 것이다. 참 가진 것 없고 보잘것없는 유부남이라 생각했다. 유부남을 만나는 이유가 뭔가. 섹스와 돈 그뿐이다. 거기엔 사랑이 없다. 난 그렇게 생각했다. 이건 그저 섹스에 환장한 것뿐이었다. 그런데 섹스도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섹스 도중 '어제 나 와이프랑 했는데 네 생각이 나더라. 너라고 생각하면서 했어. 잘했지?' 별로 잘했다 하고 싶진 않았다. 와이프와 했다는 걸 왜 그 순간에 말하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됐다. 그리고 회사에서도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나를 더듬으며 하자고 졸랐다. 결국 사무실에서 해버리기도 했지만, (나도 참 답이 없다. 인정한다.) 자꾸 보채는 통에 그의 매력이 반감되는 건 사실이었다.

한번은 둘만 식사하고 있는 자리에서 급기야 와이프를 불렀다. 난 결국 그녀에게 웃으며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리고 그 둘은 내 앞에서 팔짱을 끼고 걸어갔다. 'x 같네.. 진짜'라고 생각하던 찰나 그 여자가 불쌍하게 느껴졌다. 내가 당신 남편이랑 수도 없이 잤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른 채 저렇게 팔짱이라도 껴주며 걷고 있다니. 사람은 적당히 몰라야 행복하지. 우리 엄마, 아빠도 그랬어야 했는데. 그 여자는 불쌍했고 나 자신은 비참했다. 아빠와 바람났던 여자는 누구였을까. 엄마와 인사를 했을까. 엄마는 아무것도 몰랐을까. 나는 엄마에게 미안해졌다.

난 다음날 퇴사를 하겠다고 했다. 팀장은 따로 얘기 좀 하자며 불러냈다. 나보고 떡볶이를 사란다. 퇴사는 하게 해 주겠지만 빠르게는 안 된다고 했다. 나는 어차피 비딩도 떨어진 상태라 일도 없으면서 그저 욕심에 나를 붙잡고 있는 게 불만이라 화를 냈다. 그는 떡볶이를 찍은 이쑤시개를 던지며, '됐어! 이제 안 먹어. 계산해.'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번째 x같은 상황이다. 난 포장마차를 나와 대로변에 한참을 앉아 울었다. 모든 것들이 다 어리석었다. 내 삶이 두꺼운 가시덤불에 걸려 바둥거리는 것 같았다. 온몸에서 피가 나도 아프지 않았다. 난 집에 가서 소주 네 병을 빠르게 마셨다. 많이 취했고 화장실에서 손목을 여러 번 그었다. 피가 충분히 나오도록 수도꼭지에 물을 틀어 손목을 대고 피가 빠져나가도록 했다. 화장실 바닥이 피로 흥건했다. 세면대는 더 이상 흰색이 아니었다. 화장실 앞에 잠시 몸을 뉘었다. 키우고 있던 새들을 풀어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새장을 열자 차례로 두 마리가 날아갔다. 방 안에 친하지 않은 두 새가 띄엄띄엄 앉아서 날 바라봤다. 정신이 아득했다. 이렇게 밤이 지나면 난 죽을까. 그럼 정말 편안해질 텐데. 무대 위 광대가 아니라 관객석에서 가만히 바라만 볼 수 있지 않을까. 난 핸드폰을 잡고 119를 눌렀다. '제가 손목을 그었는데 피가 많이 나요'라고 말하고 끊었다. 그게 내 기억이다. 어디선가 나에게 다시 전화해서 위치를 파악하고 구체적으로 질문을 한 것 같긴 하다. 몇 분 뒤 주황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어 새가 있어', '코트를 하나 입혀'라고 말하는 소리 등 기억나는 부분이 몇 개가 있다. 나를 들 것에 옮겼다. 내 위에 코트를 용케 찾아서 덮었다. 나는 응급차에 실렸다. 어느 정도 팔을 감싸 둔 나는 벌떡 일어나 응급차 뒷문을 발로 차기 시작했다. 날 꺼내! 가두지 마! 꺼내 줘!라고 소리를 지르며 악을 썼다. 응급대원인 한 남자는 내 어깨를 잡고 진정시키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제발 가만히 좀 있으세요 환자분!

난 응급실로 실려 들어가 침대에 눕혀졌다. 그렇게 잠시 기절했던 것 같다. 눈을 뜨니 깨끗이 닦은 손목이 보였다. 아직 치료 전인 것 같았다. 내가 찢어놓은 손목 안에 아이스크림 바처럼 생긴 흰색 힘줄 같은 것이 보였다. 응급대원이 가져온 코트를 입었다. 난 집에 가야겠다고 일어났다. 응급실을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다시 붙잡아 나를 눕혔다. 급히 치료를 시작했다. 나는 집에 간다고 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간호사는 말했다. '환자분. 들리세요? 상처 난 거 수술해야 돼서 일단 붕대 감고 팔걸이 해드릴 텐데 수술 날짜 잡으러 내일 아침에 다시 오실 수 있겠어요?' 귀찮지만 알겠다고 했다. 그렇게 난 걸어서 집에 갔다. 병원이 바로 옆이다. 그렇지만 슬리퍼를 신겨 데려온 그들 덕분에 발이 너무 시렸다.


다음 날 아침 8시 30분 다시 응급실에 걸어서 갔다. 외과 선생님을 만났다. 손목을 그을 때 힘을 주었는지 안 주었는지 기억이 안 나기 때문에 전신 마취가 필요하다고 했다. 힘줄이 어디로 갔는지 찾아야 한다나. 난 모르겠고 알아서 하라 했다. 그리고 나는 내 친구이자 안내자인 정신과 선생님을 찾아갔다. 내 몰골을 보더니 선생님의 동공이 흔들렸다. 난 그녀에게 이 모든 이야기들을 말하려 했다. 하지만 너무 길었다. 나는 그저 계속 울기만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는 나와의 섹스를 통해 사랑하는 마음과 평화를 앗아갔다. 관계를 끝내고 싶었고 내 삶도 끝내고 싶었다. 섹스 외에 불필요해진 나의 존재를 부정하는 그를 죽이고 싶었다. 부인, 자식까지 불태워 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하고 날 죽였다. 왜 이제야 날 만났냐 묻는다면, 지금은 제대로 대답할 수 있겠다. 당신을 죽이지 못하고 참는 인내를 배우기 위해서 이제라도 나타났다고. 그 내공을 채우느라 내 청춘의 한가운데 26살에 나타났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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