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oilet Sep 06. 2019

같이 술 드실래요?

이제 저 정말 아무 짓도 안 합니다.

그날도 술을 많이 마셨다. 옛날에 이효리가 이상순을 만나기 전에 그랬다지. 오늘만 산다는 생각으로 죽어라, 정말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마셨다고. 옛날 그 시절 나도 그랬다. 어렸을 때부터 술버릇이 나빠 기물 파손은 물론, 모르는 사람에게 시비 걸기, 도로 뛰어다니기, 멈추지 않고 계속 먹기 등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마셔댔다. 하지만 그날, 이제 나는 더 이상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20대 후반 어느 정도 사람다워 졌을 거라 착각을 했었던 것 같다. 난 이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울적한 맘을 달래러 집 근처 친한 언니를 불러 곱창과 함께 소주 두 병을 마셨다. 그리고 술집으로 가 본격적으로 마시기 시작했고, 나의 에너지는 극에 달아올랐다. 한동안 잠재되어 있던 미친년의 파워라고 해야 할까. 그날 많은 것들이 내 몸을 통해 폭발되었다. 우선 우리 테이블 담당이었던 아르바이트생을 보니 이상형이라 내가 집적대기 시작했다. 나보다 5살이나 아래라길래 괜찮으면 번호 달랬더니 순순히 주더라. 그게 나의 마지막 기억이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던데, 인간은 분명 잊고 싶으면 잊을 수 있는 기능이 있는 것 같다. 난 그날 밤의 모든 일을 잊었다. 지금부터는 모두 내가 들은 기억이다.

나는 3층짜리 술집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약이라도 빤 사람처럼 휘청휘청 벽을 잡고 사람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심지어 뒤로 넘어지면 그대로 추락사할만한 3층 난간에 앉아 고갯짓을 하며 리듬을 타고 있었다. 아르바이트생은 나에게 애원하며 자리로 돌아가라고 했고, 나는 돌아가는 척하다가 직원들만 들어가는 술 창고에 따라 들어가서 나가지 않겠다고 소리쳤다. 물론 기쁨과 환희의 모습으로 말이다. 참 내가 즐거워 보였다고 한다. 테이블에 앉아서는 안주를 손으로 집어서 던졌다. 아르바이트생에게뿐 아니라 친한 언니에게도. (지금도 그 언니는 나와 같이 곱창을 먹어주는 사이다. 고마워서 절을 해야 할만하다.) 참다못한 가게 사장은 동영상 찍은 것을 보여주며, 지금 경찰에 신고할 테니 당장 나가라고 했다. 난 싫다고 발길질을 하기 시작했다. 사장은 분노해서 나를 밀쳐내고 내가 집적대는 아르바이트생까지 퇴근시켰다. 다 나가라는 조치였다. 난 나와서 아 시발시발거리며, 그 알바생에게 담배 있어요? 하며 하나 받아 피기 시작했다. 그러나 거꾸로 물었다. 아 시발 왜 불이 안 붙어. 짜증 섞인 말에 알바생은 아무 말 없이 내 입에 물었던 담배를 다시 올바로 물려줬다. 아 고마워! (씽긋) 하며 한 대 피고 집에 갔다.

여기까지 망각의 일이고 이제부터 나의 기억이다. 눈을 뜨니 난 침대에 거꾸로 누워있었다. 아..... 아직 내가 살아있구나. 세상에 존재해서 눈을 뜨고 쉼을 쉬는구나...천천히 다가오는 비릿한 깨달음에는 언제나 피 맛이 난다. 그리고 핸드폰을 보니 언니의 한탄 서린 안부. 잘 들어갔니. 일어나면 연락해. 그리고 새 친구로 등록된 이름이 있다. 아 그제서야 생각이 난다. 알바생! 나는 톡으로 사죄의 메시지를 보냈다. 일하시는데 방해해서 너무 죄송합니다. 정말 민폐 끼친 것 같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너무 죄송합니다. 그리고 금방 답변이 왔다. 미안하면 밥 사세요^^. 이를 들은 언니는 말했다. 이렇게 너는 또 이 일에 대해 반성하지 않겠구나. 나는 알바생을 1년 정도 만났다. 그 지독한 이야기는 추후 기록하련다. 몇 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 어떤 주사도 사라졌다. 개에서 어느 정도 사람의 수준에 도달했다고 봐야 할까. 아 주사까진 아니고 아직 남아있는 건 있다. 술집 사장님한테 그렇게 친한 척을 한다. 그래서 예쁨받는다. 이제 저 민폐 끼칠 짓 따위 안 하는데. 같이 술 드실래요?

이전 08화 저 애 안 낳을 거예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